제국대학의 조센징 -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정종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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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설립한 제국대학은 근대 일본의 엘리트(Elite) 교육기관으로 일본 뿐만아니라 조선의 식민지 엘리트도 같이 양성하던 기관이었습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한 이후 미군정에 의해 '제국대학'제도가 폐지되기 이전까지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제국대학은 일본제국의 대학에서 가장 뛰어난 대학으로 군림하였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가장 뛰어난 수재들이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서 최신의 '근대학문'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 철저한 차별교육을 행했던 일제는 조선 땅에서 사실상 '고등학교 교육'을 시키지 않아 배움에 목마른 젊은이들은 보통 10여년 넘는 기간동안 일본에서 지내면서 중학교-고등학교- 제국대학의 모든 과정을 배워야 했습니다

10대 감수성이 어린 시절 일본에서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일본어를 통애 시와 소설을 읽게 되니 사실상 이들의 정체성 (identity)는 일본인으로 만들어 집니다.
모든 사고를 일본의 시각을 통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땅과 조선인들을 철저히 '타자'로 인식하는 경향을 띠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금도 일제 식민 말기 교육을 받았던 원로라고 불리는 고위 관료 출신들이 아직도 일본을 어려워하고 일본어가 편하다는 발언을 하는 경우를 접하게 됩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소위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정계 원로라는 분들을 청와대에서 모아 의견을 듣는데 일본의 애로사항을 '일본어'로 청취하고 논의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단지 대법원이 의도적으로 개입해 '강제징용' 관련 판결을 늦추고 행정부와 거래한 사법농단만이 문제가 아니라 원로라는 분들의 이런 태도는 다분히 일제 강점기의 교육이 한국에 남겨놓은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입니다.

협상이 내용도 중요하지만 태도 (attitude)가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면 한국의 소위 원로들이 보여준 지나치게 협조적인 태도는 일본이 한국을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식민지 조선의 엘리듵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제국대학 (帝国大学)은 1886년 근대 일본의 초대 대각 출범 당시 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에 의해 일본제국대학령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총 9개의 학교 (도쿄, 교토, 홋카이도, 규슈,도호쿠,나고야,오사카,타이코구 그리고 게이조 혹은 경성)가 세워졌는데, 대만에 설립되었던 타이코구제국대학과 조선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을 제외하고 모두 일본 본토에 세워졌습니다.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가 헌법 연구를 위해 프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고 이토 히로부미 개인적으로 당시 수상이던 비스마르크를 존경하였기 떄문에 초기 프러시아의 제도를 많이 받아 들이는데, 대학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즉 제국대학들은 모두 프러시아의 대학을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은 조선에 철저하게 차별적 교육정책을 시행했는데 유일한 제국대학인 경성제대를 제외하고는 연희전문, 보성전문으로 대표되는 전문학교들이 최고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일본의 조선 유학생들 중 이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제국대학으로 유학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영화 '동주(2016, 이준익 감독)'으로 잘 알려진 송몽규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교토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제국대학 출신 조선 유학생들은 한국에 크게 두가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번째는 현대 한국의 근대적 헌정질서 (憲政秩序)를 수립한데 기여한 것입니다.
한국 '제헌헌법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 유진오 박사는 경성제대를 졸업한 인사입니다.
한국의 제헌헌법(制憲憲法)은 유진오 박사와 조선 총독부에서 근대적 행정을 경험한 제국대학 졸업생들이 같이 초안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당시 근대적 행정을 경험한 이들은 모두 조선총독부의 관료들 밖에 없었고 임시정부 인사들도 일단 이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에 공화국 정체 ( 政體, forms of government)를 구상할 수 밖에 없었다는 현실적 사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이들이 근대 한국의 한국과 지식사회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남한과 북한에 동일하게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상당수의 제국대학 출신 조선 유학생들은 졸업 후 조선 총독부의 관료가 되거나 각급 학교의 교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초기 한국의 지식사회는 이들 제국대학 출신들에 의해 주도됩니다.

예를 들어 역사학계에 식민사관을 정립시켰다는 평을 듣는 이병도부터 한글학회를 만들어 국어학의 기틀을 잡은 외솔 최현배 선생까지 모두 제국대학 졸업생들입니다.

한국은 '근대 (Modern)'의 개념을 서양으로보터 직접 들여온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왔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어의 흔적과 일본식 번역에 의한 용어들이 일상생활에 존재합니다. 교육을 통한 일제의 영향력은 아직도 그 꼬리를 한국에 그대로 드리우고 있습니다.

최근 기존의 전형적인 역사해석 (conventional interpretation)을 배격하고 좀더 독창적인 방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학자들으 그저 학문의 소명이란 서양학문 또는 일본으로 들어온 서양학문의 수입으로 알았습니다.
제대로된 번역본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고, 그나마 해제가 제대로 달린 책들이 나오기 시작된 지는 얼마되지 않습니다.

제가 접하게 되는 영어권 학자들의 책을 보면 우선 분량에서 기가 질립니다. 한 주제에 대해 800-10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즐비하고 그중 약 200 페이지는 주석과 참고문헌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책을 저렇게 읽을 수 있을까 경외심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 학자들의 책들은 그런 정도의 심도와 근거를 가진 책을 보기 힘듭니다.

한국의 연구환경이 아직 영어권에 비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외부인로서 추정하게 될 뿐입니다.

두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마무리 하려 합니다.

하나는 어릴 적 보았던 기억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초만 해도 잡지와 책은 모두 일본식으로 출판되어 있었습니다.
책은 모두 세로쓰기가 되어 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문고판과 유사한 작은 문고판 책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 기억에 남겨졌던 이런 것들이 모두 일본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일본에 가보고 알았습니다.

두번째로 이책의 성격입니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이책은 '제국대학 출신 조선 유학생'의 행적을 연구한 첫 연구서로 주로 도쿄/교토제국대학 졸업생들을 위주로 쓰여졌습니다.
한국의 지식인/기득권 층의 기원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시작을 한 것으로 앞으로 후속연구가 필요한 것이지요.

요 근래 조국 전 법무장관을 둘러싼 공방으로 한국에서 '엘리트'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엘리트들이 국민을 계몽대상으로만 여기고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주무른다는 사실이 어느정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당연히 이 책에서 언급된 인사들과 맞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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