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 Prime Mortgage) 대출회사의 파산으로 시작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서술한 책입니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필자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으로서 경제위기를 대처하는 미국의 정책라인의 제일선에서 일했기 때문에 제3자가 해석이 아닌 직접적 증언 ( first hand account)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전임 앨런 그린스펀( Alan Greenspan) 연준 의장 재임시 유지된 저금리 정책과 그로인해 촉발된 부동산 가격 의 폭등이 2007년 부동산 가격의 하락과 더불어 부동산을 담보 (collateral)로 설정되어 있던 모기지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시작된 경제위기 입니다.

특히 신용상태가 좋지 않았던 저소득자들은 부동산 버블시기 생애 처음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아용해 주택을 구입했으나 주택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대출 원리금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상환불능 상태에 빠지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부실화되어 모기지 대출회사는 파산을 신청하게 됩니다.

이에 더해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포함해 다른 여러 대출을 섞어 증권화(securitization)시켜 자본시장에 팔던 거대 은행들도 자산이 부실화되면서 유동성위기에 처하게 되어 1929년 대공황이후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economic crisis)에 처하게 됩니다. 이 2007-2009년 세계경제위기는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전설적인 마이스트로 ( the legendary maestro)로 알려져 있는 앨런 그리스펀 전 연준 의장의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버블을 촉발시켜 그가 이 경제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앨런 그린스펀의 통화정책과 그의 연준 재임 시절의 이야기는 그의 회고록, The Age of Turbulence (Penguin, 2007)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저도 밴 버냉키 ( Ben S. Bernanke) 의장의 책은 처음 보는데 이분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2007-2009년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The Federal Reserve Board)에 위원으로 임명되기 전에 이 분은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에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경제학자였습니다.

그러니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해야 할일과 하면 안되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요.

책의 초반에 이 분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조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출신이고 조모는 폴란드 출신으로 1940년대 초 뉴욕을 거쳐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딜런 ( Dillon, South Carolina)에 정착했습니다. 유태인으로 1960년대 흑백분리정책이 시행되던 남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분이시지요. 이후 하버드와 MIT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스탠퍼드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합니다. 1960-70년대 수리적 경제학을 완성시킨 폴 사무엘슨 (Paul Samuelson)의 영향을 몸소 체험하며 주류경제학계에 몸담아 온 인물입니다.


이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핵심은 2부와 3부로 각각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발발 이후의 경제 위기 대처 과정을 담은 부분과 그 영향력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책에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전통적인 정책 결정방식과 미국 의회에서의 정치 과정이 상세하게 나오지만 그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것은 2007-2009 세계경제위기를 계기로 고안된 새로운 정책 수단입니다.

이 책에는 두가지가 나옵니다.

첫번째는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 QE)입니다.
이 글의 처음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단기금리는 부동산 버블 당시 이미 낮은 상태였지만 미국의 경기 침체로 인해 지속적으로 금리인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의 단기금리는 거의 0에 가깝게 유지되게 됩니다.

전통적인 통화정책인 이자율 조정을 통한 정책을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연준은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고안해 냅니다. 연준은 미국의 TB (Treasury Bill) 뿐만 아니라 정부보증의 모기지 채권 등을 매수함으로서 경제 전체의 통화량을 늘려갑니다. 정식명칭은 대량 자산 매수 ( Large Scale Asset Purchase)라고 알려져 있지만 당시 언론에서 ‘양적완화’라는 용어로 사용되어 정착된 말입니다.

처음으로 이루어진 정책이고 전례가 없어 미 의회는 이 정책이 미국인들의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을 했습니다.

미국은 이런 예외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불황 ( Recession)과 디플레이션 ( Deflation) 위협에서 서서히 벗어났으나 문제는 경기 회복이 실업률 감소를 동반하지 않고 일어나는 고용없는 성장( Jobless Recovery) 의 경향을 보여 상당기간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시 정권에서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저자는 이후 오바마 정권에서 다시 지명을 받아 두차례 연준 의장을 역임합니다.
오바마 정권 초기 미국의 상하원은 모두 공화당이 장악합니다. 민주당 정권인 오바마 행정부와 미 의회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연준은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라는 예외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미 의회가 균형재정 정책을 고수하며 재정정책의 확장을 거부하여 상당 기간 미국의 경기 회복이 늦어집니다.

연준의 두가지 정책적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여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 Financial Stability), 동시에 최대 고용 유지 (Maximum Employment)을 유지하는 것이었으나 2007-2009년 경제 위기를 거치며 약간의 수정을 거칩니다. 두가지 서로 모순적인 두 정책을 같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Balanced Approach).

화폐경제학자(Monetary Ecomonist)로서 정체성을 고백한 저자는 하지만 디플레이션 위협에 처한 미국과 세계 경제는 단순히 연준과 같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 정상궤도에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정부의 자정확장을 통해 교육과 의료 보험등 복지 분야에 대한 투자가 뒤따라야 국민들의 복지가 향상될 수 있다는 지적은 공감이 됩니다.

두번째 양적완화를 조정하기 위한 정책으로 양적완화의 축소 (Tapering)가 소개됩니다.

이 말은 이제까지 연준이 모기지 채권을 비롯한 채권을 사들여 통화량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장기금리의 낮게 유지해왔던 기조를 서서히 바꾸어 점진적으로 연준의 채권매수 규모를 줄이는 것을 말합니다.

경제위기 이후 고용없는 경기 회복기조를 이어가자 양적완화기조는 2009년 이후 거의 5년간 지속됩니다.

지속된 양적완화가 금융시장에 지속적인 저금리 기조를 암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고 , 이 기조 아래에서 금융기관이 또 다시 고수익은 위해 위험 자산에 투자할 요인이 생길 수 있었고, 경제 안정성 확보를 위해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하는 연준 입장에서 테이퍼링 (Tapering)은 반드시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정책이었습니다.

책은 하지만 저자가 연준에서 퇴임하고 후임 자넷 엘렌 ( Janet Yellen) 의장이 자리를 이어가 양적완화의 축소는 후임 의장이 완결지어야 하는 정책으로 결론 짓습니다.

본문이 총 579 페이지의 책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정책결정 과정을 서술한 책이라 최소 거시경제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 한 이해가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으로 평가된 2007-2009년의 경제위기 이후 주류 경제학 , 특히 시카고 학파 위주의 신자유주의 경제학 ( Neoliberal Economics) 이 제대로 된 유용한 경제학이 맞는지, 이들의 경제학이 너무 수리 모형에 치중하고 이론에만 치중하고 실제 경제를 도외시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바로 경제학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제공한 이 경제위기는 분명 다시 한 번 복기하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최고위 상류층에 속해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언급이 군데군데 나옵니다. 예를 들자면 본인이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모임에 멤버로 나가고 일종의 멤버십 클럽같다는 표현이 나올 때 저자가 미국 사회의 주류라는 본인의 사회적 지위를 상당히 인식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책에서눈 미국의 주류( Mainstream) 에서 통화정책과 경제위기에 대응하는의사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지켜보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친구( Friends)와 동료 (Colleagues) 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들 관계의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책의 중간 중간 대공황을 전공한 학자답게 과거 미국이 겪었던 경제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1907년의 경제 위기 이후 1913년에야 설립되었고 연준은 미국의 정부기관으로 민관 양쪽에 걸쳐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초기 금융계는 JP Morgan 이라는 카리스마 있는 은행가 한명에게 좌우되었고 1907년 경제 위기를 구출한 이도 사실 중앙은행이 아니라 JP Morgan이라는 금융업자라는 사실은 사실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JP Morgan 의 후계자 중 한명인 Benjamin Strong 은 초기 연방준비은행의 설립에 관여해 현재의 Wall Street의 현재를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영미권에서는 2009년 영국 여왕이 유명한 경제학 대학인 런던경제대학 (London School of Economics)에 방문해서 명망있는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경기침체 ( Recession) 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질책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똑똑한 경제학자들이 곧 닥칠 경기침체와 신용경색 ( credit crunch)를 예측하지 못했냐고 말입니다. 여왕이 특정 이슈에 대해 콕 찝어 발언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문 경우이고 질문은 경제학이 왜 존재하는지를 묻는 핵심이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학계에서 여러번 인용되었습니다. 경제학의 이제까지의 방법론에 회의가 든 것입니다.

http://www.theguardian.com/uk/2009/jul/26/monarchy-credit-crunch

재무쪽에서 오랜기간 일해 오면서 또 경제학을 공부해 왔고 경제에 관련된 여러 책을 읽어 오면서 많은 이들이 경제가 숫자를 다룬다고 수학과 유사한 어떤 체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경제는 숫자가 아니고 매일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인 기반입니다.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는 것이죠. 이 책에서 보이듯 모든 경제정책과 돈을 쓰는 모든 일은 또한 그 자체로 정치적입니다.

따라서 현재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체계는 사실 ‘정치경제학 ‘ 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고 최초에는 또 그렇게 불리기도 했습니다.

경제학 커리큘럼에 따라서 경제체계의 역사적 시각을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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