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대청제국 전문 역사학자가 쓴 청나라 건국기이자 청 태조 누르하치 평전입니다.
역자는 역사학자가 아닌 중국전문 저널리스트로 베이징에서 중국 정치 경제를 커버하시는 분으로 여겨집니다.
청나라의 건국초기는 고려 및 조선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조 때 일어난 병자호란입니다.
인조는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공성전을 벌이지만 결국 삼전도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 ( 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에게 항복의 예를 행하는 치욕을 당합니다.
이 책을 읽은 동기는 당연히 병자호란의 적국이었던 청나라가 어떻게 성립되어 왔는가를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더구나 대청의 성립에 조선이 미친 영향은 컸습니다. 조선이 일본과 임진왜란을 맞아 싸우게 되자 명은 속방인 조선에서 일본의침략을 저지하려 했고 원군을 파견 할 수 밖에 없었고이런 상황 때문에 조선의 북쪽 요동에서 힘을 키우던 건주여진의 확장을 저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누르하치가 요동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초기 누르하치는 명나라의 신하로서 조공관계를 철저히 지켜 명나라 조정의 여진의팽창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켰습니다.
2. 누르하치는 이길 수 있는 전쟁만 참여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공략해야 할 적진에 대한 정보를 첩자를 이용해 모두 알고 있었고 적진을 교란시키는 계략에 능했습니다.
3. 명나라 진공을 시작한 이후 후방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몽고와 조선과의 관계에 매우 공을 들였습니다.
4. 자신에게 투항하는 자와 반항하는 자들을 엄격히 구별해 반항하는 자들에게는 용서가 없었습니다. 그는 반항하는 자들을 모두 처형했고 이것은 한족과 여진족간의 불화의 원인이 됩니다.
5. 자신의 수하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확실히 했습니다.
누르하치 자신이 병법에 능할 뿐 아니라 일정부분 한족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부분 역시 그의 청나라 건국에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지껏 중화사상의 영향으로 변방의 오랑캐로만 알던 여진족의 역사에 대한 입문서로는 크게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서임에도 본문의 사서인용을 제외하고 출전에 대한 서지목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중국어 원저작도 그렇게 서지목록이 없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번역과정에서 누락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