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s of Finance: The Bankers Who Broke the World (Pulitzer Prize Winner) (Paperback)
Liaquat Ahamed / Penguin Group USA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투자은행가 Liaquat Ahamed가 2009년 쓴 책으로 2010년 퓰리처 상(The Pulitzer Prize)을 수상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미국,영국, 프랑스, 독일 소위 서구 4대 강국의 중앙은행장들이 통화금융정책을 통해 어떻게 1929년 세계대공황을 촉발시켰는지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1910년대부터 대공황이 촉발된 1929년 그리고 그 이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40년대까지 이들 4개국은행장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기회에 중앙은행장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책은 서구 4대 강국의 통화 금융정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이들 중앙은행장들의 인생을 정리하는 평전이기도 한 것이지요.

이 책에는 당시를 주름잡았던 중요한 경제학자가 한명 등장합니다. 바로 존 메이나드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입니다.
이 유명한 경제학자는 직접 통화 금융정책을 집행하는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특히 영란은행과 영국 재무부, 그리고 영국 수상에게 직접 조언을 하면서 통화금융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물론 이 경제학자는 1929년 대공황과 그 여파로 금본위제 (Gold Standard)가 흔들리자 새로운 국제경제체제를 논의하기 위한 브레튼우드 협정에도 적극 참여해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드는데 공헌합니다.

책 제목을 다시 보면, 'Lords of Finance'로 이는 우리말로 ' 금융의 지배자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Lords라는 말이 귀족이나 지체높은 사람들을 의미한다면 이정도의 번역이 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는 2009년 '금융의 제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제가 'The Bankers Who Broke the World', 즉, '세계를 망가뜨린 은행가들'입니다.

즉 이 책 제목으로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책은 서구 4대 강국의 중앙은행장들의 통화금융정책에 대한 잘못된 결정으로 세계를 유래가 없는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으로 몰고 갔다는 의미입니다.

 

이들 중앙은행장들의 과오는 이 책의 맽음말(Epilogue)에 저자가 친절하게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읽기 편한 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살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각국의 중앙은행은 설립 초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즉 각국 중앙은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는 것이죠.

두번째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어떤 통화금융정책적 실수를 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이 이렇게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그 근거가 된 당시의 경제상황을 살펴보는 것이지요.

 

우선 첫째, 각국의 중앙은행의 기원을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우선 미국의 경우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는 19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07년 미국의 경제공황을 JP Morgan의 도움으로 막은 이후 중앙은행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1913년 최초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설립됩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실권이 없는 상태였던 실제적인 권한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산하의 연방준비은행 중 가장 규모가 큰 New York Fed가 행사했습니다.

이 New York Fed의 수장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중 한명인 Benjamin Strong으로 이 사람 역시 JP Morgan 출신 은행가입니다.

 

영국의 경우 잘 알려진 영란은행 (The Bank of England)가 이미 대영제국 시기이던 18세기 설립되어 있었고 이 은행은 1차 세계대전이전까지 사실상 전세계 금융의 마지막 보루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세계졍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금본위제(Gold Standard)유지를 정책의 죄고목표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중앙은행 (Banque De France)의 경우 독립된 금융기관이라기 보다는 부유한 프랑스귀족들의 사교모임과 같은 조직이었고 이런 조직의 형태는 심지어 프랑스혁명이후에도 지속되었지만 1910년대 대대적인 조직개편으로 당시 이 은행 이사회를 장악하던 프랑스 귀족들을 축출하는 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독일의 중앙은행 (Reichebank)는 프랑스의 중앙은행보다는 관료조직에 가까운 조직으로 독일 재무부의  하부조직으로 기능했습니다.

 

이들 중앙은행의 정책결정을 보려면 이들이 처한 처지를 우선 살펴보아야 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후 미국은 채권국이었고 영국,프랑스, 독일은 모두 채무국이었습니다.

미국은 1919년 체결된 파리강화조약이후 채권국으로 전쟁채무의 변제를 요구했으며, 이는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 (Gold Bullion)의 불균형을 가져오게 됩니다.

 

즉 미국으로 많은 양의 금이 유입되면서 유럽제국들은 금 보유량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금유입에 따른 통화팽창, 즉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었고, 영국 프랑스 독일은 통화량의 낮아져 불황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영국은 불황을 감내하는 정책을 택하게 되고 독일은 인위적인 통화팽창정책을 취하게 됩니다.

 

영국의 불황감내정책, 즉 디플레이션(Deflation)을 감내하는 정책은 영국 산업의 위축을 가져왔으며 이는 더 더욱 영국의 금보유량을 축소시켜 불황의 악순환을 자초하게 됩니다.

수백만의 영국인들이 실업자 신세가 되었지만 영란은행장인 Montague Norman은 대영제국시절부터 지켜온 금본위제를 사수하고자 가격 상승을 용인하는, 즉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는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를 용인하지 않는 정책을 폅니다.

이 결정적인 정책실패로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압도적 금융제국의 지위를 내려놓게 되고 금융의 헤게모니는 미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반면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전쟁채무국인 독일은 그들이 감당하기 힘든 전쟁채무의 부담을 금태환과 관계없는 화폐발행으로 대응하게 되고 이는 1920년대 독일은 최악의 하이퍼인플레이션 (Hyperinflation)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아직 금본위제아래 있었지만 금 보유량과 상관없이 마구 발행된 독일 마르크화는 그 가치가 폭락했고, 사실상 마르크화로 빵과 생필품을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화폐가치가 사실상 무의미하게 된 1920년대 독일은 빈부격차도 심해져 하층민은 더 더욱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반면, 프로이센 제국이 무너진 이후 혼란기에 돈을 번 부자들은 수도 베를린에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즐기는 휘황찬란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미국은 앞서 말하대로 유럽의 금이 미국으로 대량유입되면서 통화팽창에 의한 인플레이션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전통적으로 국내정책에 더 우선을 두는 미국정치인들은 유럽, 특히 영란은행의 Montague Norman과 지나치게 밀착한 관계를 보여주는 Benjamin Strong에 대해 불편함을 내비쳤습니다.

국내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에 비해 New York Fed라는 사실상의 미국 중앙은행을 이끄는 이 은행가는 보기 드믄 국제주의자로서 유럽의 국가들, 특히 같은 앵글로 색슨 국가인 영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했습니다.

 

1920년대 영국은 조선업, 철강업 등 사양산업이 대부분인 영국이 디플레이션 정책으로 대량실업과 경기 침체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당시 새로운 산업이었던 자동차, 전화, 텔레비전, 가전등의 등장으로 산업적으로 대단한 성장을 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제호황은 1929년 대공황을 만나 상당부분 쇠퇴하게 되지만 이때의 산업적 기반 확립이 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이 세계를 주도해 나가는데 발판이 되었다는데 의의를 제기하기는 힘듭니다.

 

프랑스의 경우,1차 세계대전의 채무국임에도 영국과는 조금 다른 정책을 썼습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금보유량이 부족했던 프랑스는 금 보유량을 늘리기 위해 통화의 평가절하(devaluation)을 용인했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면서 상품가격을 끌어올렸고, 시장이자율이 낮아지면서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의 주변국들로부터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금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금 본위제하에서 중앙은행의 일방적인 통화 평가절하는 사실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프랑스는 금본위제 유지보다는 경제활성화를 택했고, 이미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중들에게 실업과 고율의 세금을 부담하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약간의 트릭으로 프랑스는 경제적 이득을 보았고 주변국인 영국과 독일은 더 깊은 침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프랑스의 자뭇 이기적인 이런 경제정책은 안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은 영국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계기가 됩니다.

 

주의할 점은 이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모두 아직 금본위제라는 국제경제체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1920년대를 통과하면서 1차 세계대전 이전 무리없게 작동되는 금본위제는 사실상 작동이 불능이 되었고, 중앙은행이 통화가치와 페그시켜야 하는 금괴는 대부분 미국과 프랑스에 몰렸고, 독일과 영국은 만성적인 금 부족에 시달렸고, 따라서 통화가치의 하락위험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앞서 말한 하이퍼인플에이션의 시기를 지나 결국 통화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종이와 같은 구 마르크로는 도저히 경제를 지탱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Hjamar Schacht 는 새로운 마르크화를 도입하면서 부족한 금을 대신해 영국 파운드화에 마르크를 페크시킵니다. 그리고 그의 솜씨로 마르크화는 점차 안정화되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후 독일경제가 활성화 되지 않아 만성적인 금부족에 시달리고 따라서 독일은 대규모의 해외차입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독일은 미국과 영국에서 대규모의 해외차입을 합니다.

미국과 원인은 다르지만 독일의 이런 대규모 해외차입도 마찬가지고 통화팽창을 가져오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독일은 1930년대까지 해외 차입에 의존해 경제정책을 유지해왔고,이를 통해 전쟁채무를 갚아왔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파운드화에 페그된 마르크화는 영국의 경제가 침체된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미-영-드-독 4개국 중앙은행장들의 통화금융정책 논의에도 한발 물러서 있을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영국은 프랑스의 과도한 금보유로 인한 자국 경제의 침제에 과민한 반응을 보였지만 자신들이 대영제국을 이루었던 근간이 금본위제의 기본을 무시할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도 했습니다

 

19세기까지 영국은 식민지 수탈과 대외무역으로 전세계의 외환보유고 (금보유고)를 독점하다시피하고 이를 기반으로 런던의 금융시장을 발전시켰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후 더이상 전쟁이전의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가 없는 상황임에도 영국은 대영제국의 기반이던 금본위제에 집착하게 되지만, 인플레이션 유발정책보다 디플레이션을 통한 경기침체정책을 택하고 경제가 반등하기를 기다렸지만 이미 미국의 신산업(자동차, 전기, 가전 등)에 밀린 영국의 사양산업(철강업, 조선업 등)으로 인해 더이상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이 서구 4개국 중앙은행장들의 경제정책의 실패과정을 살펴보면 나타나는 중요한 배경은 바로 금본위제(Gold Standard)라는 제도에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가장 귀한 금속인 금을 통화에 페그시켜 금의 가치에 따라 통화가치를 평가해왔습니다.
이 시스템은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별 어려움없이 작동했으나 이 전쟁이 남긴 전쟁부채로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미국이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하는 채권국이 되었고, 프랑스가 자국 프랑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키며 금보유량을 늘리는데 앞장선 반면, 영국은 디플레이션 정책을 취하면서 금본위제를 지키려 했지만 실패했고, 독일은 마르크화 과다 발행으로 인한 통화증발로 지독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고 이후 해외차입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금본위제가 작동하지 않게 되자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서구 4대 강국은 1943년 미국의 브레튼우드에 모여 논의를 시작합니다.

 

결국 이책에서 미-영-프-독 4대강국 중앙은행장들의 정책실패를 이야기하려면 1차 세계대전이 어떠 유산을 남겼는지 살펴보아야 하고,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금융제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단순히 1929년 미국의 주식시장 대폭락으로부터 시작된 대공황시기를 미국내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단순한 설명이고, 이 책이 4개국 중앙은행장의 정책적 실패의 시각에서 대공황을 바라본 것은 상당히 신선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책적 실패를 바라다 보려면 또한 은행가 뿐만 아니라 각국의 정치인들의 생각도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에 당시 정권을 잡았던 정치인들이 어떤 경제정책을 펼치려고 했는지 어떤 논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했는지 여러 에피소드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역사서를 읽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미국 국내적 요인과 더불어 국제적인 요인을 같이 살핀 드믄 시각의 책이기 때문에 퓰리처상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대학때 국제금융 교과서에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던 금본위제라는 제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리고 금본위제에서 달러본위제로 가치의 기준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변화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에 대해 몇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1. 거시경제학이나 국제경제에 대해 공부를 하신분들이 보기 편하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경제학의 기초가 없이는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2. 이책이 한국어로 2009년도에 번역된것으로 아는데 600페이지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원서로도 본문만 507페이지에 이릅니다. 꼬박 한달을 읽었으니 1930년대 대공황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면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3. 원서에는 영어뿐만 아니라 독일어와 불어도 같이 나옵니다. 해당언어를 같이 이해해야 좀 더 이해가 빠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4. 하지만 경제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2008년 촉발된 경제위기를 비롯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기침체의 원인과 과거의 공황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과거의 대공황, 특히 1930년대의 대공황과 그 이전 1907년의 경제위기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합니다.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위기의 원인에 대해 경제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투자은행가 출신 저자가 상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줍니다. 경제가 오히려 숫자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