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박의 여름』

학교에 대한 추억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엄청나게 내성적이어서 친구 사귀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나였기에 그럴싸한 추억이 별로 없다. 초등 1학년 때긴 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의 전학은 충격의 도가니였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을 향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던, 4학년 때였던가? 1학기 내내 한 친구밖에 몰라 2학기 때 다른 친구들도 많았구나 놀라기도 했던, 아이들 틈에 자연스럽게 끼지 못하던 내가 걸스카우트나 아람단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이 떠나는 캠프를 그렇게 부러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 <호박의 여름>에는 비록 잊히긴 했지만 '즐거웠다' 생각하는 기억을 가진 변호사 곤도 노리코가 있다. '다나카'라고 소개한 여성이 속해 있는 '미래 학교' 터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고 어렸을 때 헤어진 후 생사 확인도 되지 않는 손녀가 아닌지 확인해 달라는 노부부의 요청으로 관계자를 만났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미래 학교'에서의 추억이 떠오르고 그곳에서 함께했던 미카의 사체가 아니길 바라며 그때의 기억 속으로 빠져드는 노리코다.

공부 잘하는 것 외엔 사교적이지도 못했던 노리코는 인기 많은 친구 유이 어머니의 권유로 여름 방학을 이용해 한적한 시골에 있는 '미래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아이들이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있었고 여름 방학을 이용해 외부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노리코는 4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3년을 참가했고 배움터에 온 외부 아이들을 도와주는 '미카'를 만나게 된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매일 외로운 나날을 보내는 미카에겐 자신에게 다가와 준 노리코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많은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미래 학교 아이들, 숲속 깊은 곳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와 청소를 하는 것도, 빨래를 하고, 문답을 나누고, 자습실이라 불리는 곳에서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 모두 아이들이 직접 하는 것들이었다. 함께 하는 일주일의 시간 동안 집이 그립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던 노리코. 그렇게 즐거웠던 기억으로 가득했던 '미래 학교'가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엔 정제하지 않은 생수를 판매하는 이상한 단체, 신흥 사이비 종교 같은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노부부가 의뢰한 백골 사체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사건에 한 발 한 발 다가갈수록 엄마와 같이 살고 싶다던, 노리코와 친구라고 했던, 자신을 잊지 말라던 미카의 말이 떠오르는 노리코. 백골 사체에 가려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한창 어리광 부리고 한없이 기댈 수 있는 부모와 떨어져 자립적으로 살아가야 했던 미래 학교 아이들. 아이를 돌보기 싫어서 어른들이 만든 곳인지, 자연과 가까이에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자립적인 아이로 자라길 바라서 만든 곳인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 남겨진 아이들이 의지할 곳이라곤 함께하는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렇게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적응하며 잘 살 수 있었을까 의문만 남았던 <호박의 여름>은 나에게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과 숙제를 남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인의 초상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31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인의 초상(하)』

통통 튀는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던 이사벨은 자유의지를 한없이 드러내며 런던 귀족 워버턴 경과 미국 사업가 캐스퍼 굿우드를 차례로 뻥~ 걷어찼다. 결혼에 대한 의사가 없었고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 하던 그녀였다. 그랬기에 반듯한 청년처럼 보이던 워버턴 경과 굿우드의 청혼을 거절했을 땐 아쉬움이, 의도가 뻔히 보이는 애 딸린 이혼남 길버트 오즈먼드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수녀원에서 교육을 맡아 하고 있던 길버트 오즈먼드의 딸 팬지가 등장했고, 길버트 오즈먼드에게 재산이 갑자기 많아진 이사벨을 잡으라고 권하는 마담 멀. 마담 멀과 오즈먼드 사이에 뭔가 있어 보이는 껄끄러움을 던질 수 없었던 이야기 속에서 역시나.. 하고 이마를 턱~ 치게 만드는 장면에선 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 오즈먼드 접근은 이사벨의 재산을 노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녀의 이모 터치트 부인과 아들 랠프 터치트. 이사벨에 대한 사랑보다는 뭔가 다른 목적을 가진 이의 접근은 달갑지 않았고, 그녀를 위한 조언은 사랑에 눈이 먼 상태라 당연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길버트 오즈먼드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 아무래도 이사벨에겐 오즈먼드에 대한 모성본능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녀가 그에 대해 모르는 무언가는 있었으니.. 나중에 알고 난 후에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독자들도 함께 가슴 아파하며 지켜봐야 하는 문제였다. 오즈먼드와 이사벨의 결혼 생활은 크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자신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듯한 집안 인테리어 하며, 팬지의 장래 반려자에 대한 언급 자체에 발언권이 없어 보이는 이사벨의 모습,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오즈먼드 가족 사이에 끈적하게 녹아 있는 것 같은 마담 멀 등.. 이해하려고 해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던 <여인의 초상>이다. 제발 아니길 바랐던 그녀의 결혼 생활이 갑작스레 진행되고 병색이 완연히 짙어진 랠프의 모습을 보면서 이사벨과 더불어 독자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 컸을 거라 생각된다.

많은 부분 억압된 상태로 생활하는 이사벨을 보면서 랠프를 처음 만났던 당시 당돌해 보이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랠프가 세상을 떠나던 순간, 그의 곁으로 가려는 이사벨을 통제하는 오즈먼드가 너무 미웠다. 모진 수모를 겪으며 랠프에게 향했지만 모든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오즈먼드에게로 향하는 이사벨의 발걸음을 막고 싶었던 마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랠프 터치트, 터치트 부인, 마담 멀, 워버턴 경, 캐스퍼 굿우드, 헨리에타 등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너무 확실하게 드러나 읽는 재미를 더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남들과 일반적인 선택을 했더라면, 아니 조금 더 영악한 선택을 했더라면 그런 생활은 없었을 것 같은 이사벨이 안타깝기만 했던 <여인의 초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
양승욱 지음 / 오렌지연필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

하루에 하나씩, 잠들기 전 인문학을 만나자! 10분만 투자하면 일곱 가지 분야의 지식을 쏙쏙~ 챙길 수 있는 책 <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다. 언젠가부터 1일 1페이지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래서 몇 권 만나본 적 있는데 지금까지 만났던 1페이지 책 중에 이번에 만난 인문학 365가 제일 두꺼운 것 같다. 그만큼 알려줄 게 많았다는 얘긴가?

<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는 매일 다른 분야의 인문학 주제를 만날 수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총 7가지의 분야를 다르고 있는 이 책에서 월요일엔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대표 작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을 만나는 문학화요일엔 세계 역사의 분기점이 된 핵심 사건들을 만나는 세계사수요일엔 동서양의 대표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철학목요일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로 이끌어 줄 신화금요일엔 각 종교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종교토요일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음악의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음악일요일엔 미술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거장들을 만날 수 있는 미술까지. 10여 분 투자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애매한 지식을 확실하게 정리해 주는 핵심만 담아 놓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매일 한 분야 몰아서 읽고 싶을 정도로 재밌기도 하다. 신화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면 목요일 신화 부분만 모아서 읽으면 더욱 좋은 <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 인문학 하면 '어렵다'라는 생각부터 떠오르는데 그런 생각을 한 번에 깨줄 책이라 말하고 싶다. 모든 분야에 깊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딱 이 책이 알려주는 정도만 알아도 어디 가서 아는 척 쯤은 거뜬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문학, 신화, 미술 분야도 관심이 많지만 특히나 음악 쪽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음악 분야를 더 집중해서 펼쳐봤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교회나 궁정, 살롱, 콘서트홀 등에서 연주된 유럽 음악을 가리키는 '클래식 음악'. 라틴어 클라시쿠스에서 유래된 클래식은 '최고 계급에 속한다'는 뜻이라고. 모든 음악의 시작이며 끝이라는 '바흐', 평생 독신으로 살며 음악에 모든 삶의 에너지를 쏟은 '헨델', 오페라를 제외한 모든 장르에 걸쳐 최고 수준의 작품을 남긴 '브람스', 모차르트에 비교될 만한 신동이라는 극찬을 받은 '리스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음가가부터 처음 들어보는 음악가의 이야기, 음악 장르에 대한 이야기 등 나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 안에 있는 내용만으로 깨알 지식도 챙기고 재미도 챙겨보자. 날마다 10분 투자로 일 년 후엔 '인문학? 별거 아니네~'하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순한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9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순한 이야기』

18세기 영국 사회에서 신분 종교 성별의 제약에 맞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엘리자베스 인치볼드의 대표작 <단순한 이야기>. 사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다룰지 궁금함이 더욱 컸다고 하겠다. 농부의 아홉 자녀 중 여덟째로 태어난 엘리자베스 인치볼드는 혀가 짧은 신체적 약점에도 런던으로 가 극단에서 활동했고 결혼 7년 만에 남편이 돌연사한 후 재혼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단순한 이야기>는 그녀의 절친 시든스 부인의 동생을 모델로 한 작품으로 여성의 욕망과 주체성이라는 주제로 출간 한 달 만에 중쇄를 찍을 만큼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라고 한다.

<단순한 이야기>는 총 4부의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1, 2부는 밀너 양의 이야기가, 3, 4부는 밀너의 딸 머틸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초반 내용을 읽을 때만 해도 가톨릭 신부와 통통 튀는 아가씨의 사랑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연결될 때까지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딱.. 그렇게 기분 좋은 내용만 나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사랑의 결실을 맺은 이후로 앞서 보였던 모습은 볼 수 없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신부의 행동에 화가 나기도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밀너 씨는 진실한 우정을 맺었던 가톨릭 사제 도리포스 신부에게 후견인으로 자신의 딸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온화하고 이해심 많은 신부 도리포스는 신중, 정의 용기, 절제의 기독교 4대 미덕을 실천하며 아름다운 밀너 양과 함께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런던에서 생활하면서 즐거움을 최대한 만끽하려는 것 같다. 걱정이 이어지고 주의를 기울이던 도리포스는 잔소리를 하기에 이르렀고 프레더릭 경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밀너 양을 데리고 시골로 가기에 이르렀다.

시골에서 생활하던 중 프레더릭 경은 그곳까지 찾아왔고 그와 결투를 벌이려는 도리포스 신부를 위해 프레더릭 경을 사랑한다는 거짓 고백을 하는 밀너 양.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향한 곳은 프레더릭 경이 아닌 도리포스 신부였는데 그가 알 턱이 있나. 자신 때문에 신체적 상처를 입은 도리포스 신부를 위해 그를 떠나 친척의 집에 머물기로 결정한 밀너 양은 도리포스의 사촌 엘름우드 경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고 마음의 병을 얻어 앓아누운 그녀를 찾은 새로운 엘름우드 경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사제직을 내려놓은 도리포스였다. 그렇게 밀너 양과 도리포스의 사랑은 결실을 맺게 되는데...

"도리포스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천성에는 악의 그늘이 있었다."라고 하는 대목으로 알아봤어야 했다. 자상하고 이해심 많았던 도리포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변했고 폭군 그 자체의 엘름우드 경만 존재했다. 밀너 양을 이랬다저랬다 변덕이 심하고 남성들과의 추문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던 샌퍼드 신부는 밀너 양을 엄청 싫어했지만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준 이가 샌퍼드 신부였다. 뭔가 발랄함이 느껴졌던 초반부를 지나 엘름우드 경과의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엔 우울함이 가득했던 <단순한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동정심 많고 감정이 풍부하고 정의로웠던 엘름우드 경의 변화된 모습,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묵묵히 받아들였던 딸 머틸다. 엄마 밀너 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던 딸이 더 가슴 아프게 기억에 남는 <단순한 이야기>는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수의 시대』

순수함을 의미하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표지가 예뻐 보였다.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이디스 워튼은 '버너 자매'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는데 그 후 그녀의 작품 중 '석류의 씨'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순수의 시대>는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1870년대 뉴욕 상류층 사회를 배경으로 그 시대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디스 워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여성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 같은 행동을 보이는 뉴런드 아처, 발언은 그렇게 했음에도 그는 뼛속까지 뉴욕 사회의 규범과 그 틀에 갇힌 사람이다. 순종적이고 관습에 얽매인, 뉴욕 상류 사회의 '순수'한 여성의 기준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여성 메이 웰런드는 아처와 약혼한 사이다. 이런 이들 사이에 엘런 올렌스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처와는 어렸을 적 친구였던 엘런은 올렌스카 백작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남편과 별거 상태로 뉴욕으로 돌아왔다.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엘런은 뭇 남성들뿐만 아니라 아처에게도 흔들림의 대상이었다.

메이와 다른 모습의 엘런에게 점차 빠져드는 아처는 위험함을 느끼고 메이와의 결혼을 서두른다. 하지만 뉴욕의 관습대로 약혼 날짜는 줄어들지 않았고 아처는 변호사로써 엘런의 이혼 사건을 담당하며 엘런을 향한 아처의 마음을 깨닫는다. 메이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아처, 결혼을 서두르려 할 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결혼을 승낙하는 메이. 엘런을 가슴에 품은 채 메이와 결혼한 아처는 메이와의 결혼 생활이 즐거울 리 없었다.

이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당시 사회 규범에 맞게 올렌스카 백작 부인 역시 이혼을 포기했고 엘런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아처의 모습을 보며, 마침 돌아오라는 올렌스카 백작의 편지에 엘런을 떠나보내려는 사교계와 메이였다. 메이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엘런에게 전하며 아처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끊어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런은 금전적 지원을 끊겠다는 백작의 편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곁을 떠나긴 했지만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 엘런을 가슴에 묻고 메이의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살아간 아처는 메이를 먼저 떠나보낸 후 엘런과 재회할 기회가 생기지만 끝내 돌아서고 만다.

"미국 사회의 건전한 분위기를 잘 그려내고, 최고의 습속과 남성상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야 한다."는 당시 선정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이 작품 안에 녹여낸 당시 상류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처를 사랑하지만 사촌 동생의 행복을 위해 떠나는 엘런, 자신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엘런을 적극적으로 쫓아낸 메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려 했지만 아내의 임신 소식에 사랑을 가슴에 묻어버린 아처. 묘하게 모두가 다 이해되고 순간순간 아슬아슬함을 느낄 수 있었던 <순수의 시대>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