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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의 거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미래를 본다고 해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걸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기도 하고,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으로부터 밀려남으로써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그들에게 정해진 루트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또 어떤 시련이 다가올지도 알지 못한다. 고대 트로이의 카산드라 공주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폴론의 저주를 받아 어떤 사람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미래를 보면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미래를 모른다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마치,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게 되어 받는 고통과 같은 것이다.
부모로부터 실험 대상으로 쓰인 카산드라 카첸버그는, 임의적으로 부모로부터 능력을 주입받는 실험을 받게 된다. 이 실험은 그녀의 오빠에게도 행해졌으며,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주어졌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뇌의 기능이다. 뇌는 두 개의 반구로 이루어져 있다. 우뇌와 좌뇌가 있으며, 우리의 삶은 대부분 좌뇌에 의해 지배당한다. 규칙을 만들고, 법칙을 설계하는 것이 좌뇌의 역할이며, 이 폭군같은 좌뇌는 창의적인 우뇌의 활동을 제한한다. 우리고 우리 삶 속에서 가끔씩 발견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바로 이 좌뇌의 기능이 원활하지 못해 우뇌가 활성화된 경우다. 과거의 수많은 천재들은, 바로 이 우뇌의 작용이 월등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좌뇌가 하지 못하는 독특한 상상을 해내며, 규칙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작은 불편만으로 전 인류가 편안할 수 있는 엄청난 발견들을 속속들이 해낸다.
카첸버그 가에서 행해진 실험이 바로 이러한 내용들이다. 이들은 실험 대상들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일부러 자폐아로 만들었다. 그들만의 세상에 갇힌 이들은, 그 세상 속에서 특별한 발견을 해낸다. 그리고 이들이 성장하였을 때, 사회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서 그들의 능력을 완벽하게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다니엘 카첸버그, 카산드라의 오빠는 확률론의 대가가 되었으며, 이 확률론을 이용하여 미래에 대한 예측을 했다. 그리고 카산드라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닌 미래 '자체'를 보게 되었다. 이것이 그녀가 카산드라란 이름을 갖게 된 이유이다.
사회 부적응자 카산드라는 쓰레기장속에서 살고 있는 네 명의 주민과 함께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이 사회에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카산드라가 본 미래는 모두 테러에 관한 것이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테러란 것에 대해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가족이 희생되기 전에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테러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별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카산드라의 미래는, 결국 소비자 없는 상품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능력이 이 사회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게 하였다.
카산드라가 보는 미래가 어떠하든지 간에, 미래를 본다는 능력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에 점성술사나 점쟁이들의 말에 의존하였다. 심지어 대통령들도 대부분 그들만의 미래 예측 전문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미래를 본다는 것, 이것은 아마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점쟁이들이 하는 말이 거짓일지라도, 그들이 하는 말에 끼워 맞추는 삶을 살다보면, 결국 인생은 바뀌게 되어 있다.
5초 후 사망 확률을 예측해내는 다니엘과 미래를 보는 카산드라. 이들이 예견하는 미래란 것에 대하여, 다양한 생각이 들게 한다. 노자는, 미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믿고 있는 미래는 결국 확률의 문제일 뿐이다. 카산드라가 예견한 미래도 결국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