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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문 2 - 고려시대(901~1392) ㅣ 역사신문 2
역사신문편찬위원회 엮음 / 사계절 / 1996년 1월
평점 :
고려는 어떠한 곳이었는가? 고려는 혼란의 시기에 태어났고, 혼란의 와중에 사라진 국가였다. 후삼국 시대에 승기를 잡은 후고구려의 왕건으로부터 탄생한 이 국가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성장해 나갔으나, 결국 다른 왕조와 다르지 않게 군사 정권의 쿠데타를 통하여 다른 이에게 왕조가 넘어갔다. 그 다음 세대가 바로 조선이다.
통일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을 거치면서 이어온 우리나라의 통일 왕조 이야기는, 어찌보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평화로운 나라의 모습이었지만, 반도라는 특성에 의하여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와야했던 삶을 살아야 했다. 고려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초기에는 요나라가 고려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으며, 여러 차례에 걸친 침략을 막아낸 이후에도 세력을 확장시킨 원나라에서 공격해왔다. 그 지역을 완전히 박살내버리는 몽고 군의 전술에 의하여 우리 나라가 완전히 황폐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려 시대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무신 정권이 있었고, 노비들이 자신들의 해방을 위하여 싸웠으며, 외교적으로 다양한 대립이 존재했던 혼란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무신 정권은 당연히 무서웠다고 할 수 있었다. 문신들을 모두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 무신들은 결국 서로에게도 칼을 겨누어 몇 년에 한 번씩 왕이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최씨 집안이 있었는데, 이 최씨 집안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몽골군의 침입이 있을 때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항쟁했으나 결국 대륙의 강자의 침략은 이겨내지 못했다.
노비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최충헌의 노비 만적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노비를 모아 놓고, 자유로운 양민이 되기 위하여 모의했다가, 비록 걸려서 수장형을 당했을지라도 만적의 모의는 고려의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었다.
역사 신문을 읽으면서, 고려에 대한 많은 것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토론 형식을 통하여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에서 반란의 입장을 취해야 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고, 묘청의 서경 천도와 정지상과 김부식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앞으로의 역사도, 이처럼 풍부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를 기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