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책들이 주의 깊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진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인해 살아가고 있으며, 만약 우리의 삶이 진짜가 아니라면 근본적인 삶은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예도 참으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장자의 호접몽도 빼놓을 수 없는 예다. 그의 호접몽이란, 그가 어느 날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는데, 그 때의 꿈이 너무 생생하여 지금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이 꿈인지, 나비가 될어 날아다녔던게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말한다. 그건 꿈이었다고.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고 그렇게 정의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게 모두 틀린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면?
학교 국어책에서는 한 인상깊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한 노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한 노인이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사물들의 이름을 바꿔부르기 시작했고, 그는 그렇게 바꾼 이름을 외어서 그의 일상 생활에 적용했다. 그러나 그는 원래 단어를 까먹고 세상 사람들과 아예 소토알 수 없게 되어 영원히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노인은 그가 알고 있는 사실로 믿었고, 사람들은 지금 그들이 쓰는 보편적인 법칙을 믿고 있다. 사실은 어떤 것인가? 노인이 쓰는 말이 진짜이고,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사용하고 있다면?
데카르트의 이런 회의론이 모든 것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부정하는 회의론자들을 배제하기 위해 확실한 논증을 위해 회의론적인 사고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갖은 생각을 벌여놓고서는 막상 회의론자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들만 잔뜩 남기고 떠났다.
쉬운 예로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그동안 기계에 의해 주입된 가짜 기억속에서 살다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어 기계에 대항하여 싸운다. 그는 20년동안 가짜 기억속에서 아무 움직임도 없이 살아갔고, 곧 이어 겪게 된 세계가 바로 그가 살아갈 진짜 현실이었다. 이렇게 현실과 꿈을 복잡하게 뒤엉켜 놓은 예가 많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믿어야 하나? 내 앞에 놓인 빵조각이 사실 빵이 아니라 시멘트 덩어리고, 내 미각, 촉각, 후각 등의 감각이 모두 속고 있는 것이라면? 정말 믿어야 할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