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과의 이별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2 - 정조 시대를 읽는 18가지 시선
이덕일 지음 / 고즈윈 / 2008년 2월

정조 대왕의 업적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용할 줄 알았던 왕이었고, 심지어 더 먼 것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의 아버지를 죽인 자들까지 용서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개방과 사랑의 길을 택했고, 지금 이 시대 우리는, 정조 대왕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어떤 길을 택하는게 옳은지 당연한 길로 나아가야 할 것 아닌가? 

수원 화성을 둘러본 것은 두번째였다. 걸으면서 성곽 하나하나의 모습 전경에 놀라고, 숨겨져있는 암문을 찾아냈을 때마다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성은 하나의 커다란 과학이다.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처리해내기 위하여 온갖 과학들이 널리 쓰이고 있는데, 수원에서는 자신은 바깥을 볼 수 있지만 적들은 성 내부를 볼 수 없도록 만든 총구와 뜨거운 물을 붓는 길, 암문 등 온갖 과학들이 숨겨져 있다. 그들은 그것들을 통하여, 올라오는 적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인 정치를 펴보려고 노력했던 그에게도 화병은 존재했다. 아버지 사도 세자에 대한 죄책감이 화병으로 남아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영조는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대를 이어갈 자식을 함부로 죽이는 짓는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다. 영조는 후회했지만, 정조는 기억했다. 비록 의학지식이 풍부했던 그였지만, 가슴속의 화기는 결국 그를 병으로 몰아넣었고, 대부분의 왕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악성 종양이 도져 그도 죽게 된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개방과 소통의 시대는 다시 폐쇄와 단절의 시대로 돌아갔다. 열린 마음으로, 모두를 포용하고 함께 하는 사회로 만들어보려는 위대한 대왕의 죽음이 이렇게 커다란 공백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그와 함께 했던 위인들은 그가 죽으면서 동시에 펴보려던 꿈들을 모두 접어야만 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게 왜이리 힘든 일일까? 드라마 추노에서도 모두가 다 세상을 바꾸자는 타령이다. 어려운 일이다. 고작 수백명이 모여서 한 나라 전체의 상황을 바꾸겠다는 것? 진짜 철인의 등장을 기다리며, 바뀔 세상을 어렴풋이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