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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스토리
크리스토퍼 히버트 지음, 한은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메디치가는 유럽 역사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찬란하기로 유명한 르네상스를 끌어낸 것도 메디치가였으며, 피로 얼룩진 이 가문은 수많은 업적과 권력 찬탈의 역사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유럽 상황과 함께 보는 가장 위대했던 가문의 역사를 알아본다.
메디치 가 뿐만 아니라 다른 가문들도 유럽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길드란 것이 있었는데, 직업에도 종류에 따라서 귀천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커다란 몇개의 길드만이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총 스물한 개의 길드 중에서도 법률인 길드 아르테 데이 주디치 에 노타이, 모직 실크 의류상 길드 아르테 달라라나, 아르테 디 포르 산타 마리아, 아르테 디 칼리말라, 은행업을 취급하는 아르테 델 캄비오 등이 있었고 그 외의 수많은 직업들은 길드란 것조차 없이 아무런 보호 없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길드 설립을 요구했었고, 다수의 파업으로 인해 일에 차질이 생길까봐 그들을 인정해주었지만 막상 생긴 길드를 잘 활용할 줄 모르던 그들은 막상 만들게 된 길드를 다시 없애게 된다. 이런 예는 우리 주변에서 참으로 많이 살펴볼 수 있다. 힘들여 만들어 놓고서는 자기 힘으로 그것을 없애는 경우다.
아르테 데이 메디치, 곧 우리가 말하는 이 메디치가의 역사는 의사와 약종상, 가게 주인, 향신료와 염료, 약이나 길드에서 물감을 구입하는 예술가나 장인들의 길드였다. 예술가나 장인하면, 떡하니 메디치 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등 유명하단 온갖 예술가들은 그들의 깊은 후원이 있었기에 성장하고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론 메디치가도 처음부터 부유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피렌체에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프리오리나 곤팔로니에레가 되는 길이었다. 차후 지오반디 디 비치 데 메디치가 시민들의 관심을 받지 않으려 노력하며 은행업으로 재력을 쌓은 덕에 그 아들 코지모는 줄타기 외교를 벌이면서 차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다.
메디치가가 유럽사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는가는 많은 사람이 알 것이다. 그런 메디치 가의 기나긴 이야기들 모두가 유럽사를 이해하는 한폭의 커다란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