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7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세련된 문화로 세계와 교류한 해양 국가
김용만 지음, 백명식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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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과거 비류와 온조, 곧 고주몽의 두 아들이 신하와 백성들을 이끌고 와서 세워졌다고 한다. 마한의 터를 빌어서 세워진 그 둘의 터전중 비류는 미추홀의 지나친 소금기로 인해 흉년이 들자 자결을 하고, 그 백성들이 온조에게로 가서 처음에 십제라 이름 지었던 온조는 그 수가 배로 늘어났다고 해서 백제라 하였다. 

과연 백제 문화의 특징은 어떠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백제는 당시 기술자를 매우 우대하였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유학자가 최고로 칭송을 받았고, 기술자는 어디까지나 천대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그랬기 때문에 백제는 화려하면서 섬세한 문화가 발달할 수가 있었고, 그것은 무령왕릉 박물관을 견학하면서 벽돌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무늬를 보고 놀라며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백제의 왕조들을 살펴보자. 백제는 여러번 위기를 맞이했는데, 그것은 왕의 지나친 의욕으로 인한 침체나, 자포자기 상태에서 놀다가 침체된 경우 등이 있다. 특히 의자왕에 의르러서는 그는 올곧은 정치를 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삼국 시대에서 살아남지 못한 채 죽어서 백성의 돈으로 열심히 유흥비로 써댄 왕이란 누명을 쓰게 되었다. 역사란 것은 참 상대적이다. 강자는 항상 착하고, 약자는 항상 패배자의 면모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백제는 신라와 더불어 일본의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당시 일본은 섬나라여서 거의 문맹 수준이라 할 정도로 질이 떨어져서 백제와 신라는 그들의 문화를 일본으로 전수해주러 갈 때마다 일본인들은 항상 크게 반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커다란 문젯거리가 되었고 급기야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을 수가 있게 되었다. 

백제는 도읍을 두번이나 옮긴 국가로, 처음의 위례성은 침략으로 인해 무너져서 공주로, 공주의 성은 너무 비좁아서 사비로 천도해 계획도시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백제는 총 세 개의 도읍지를 거쳐가게 된 셈이다. 

백제는 비록 지금은 신라에 융화되어 사라진 이름뿐인 국가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남겼던 문화는 지금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삼국의 한 축을 이루었던 백제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풀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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