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2007/2/24)
임금님의 효행길 - 우리 민화 이야기
윤문자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세종대왕도 문화의 왕이었으나, 정조또한 그러했다. 무수리의 아들 출신인 영조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급진적인 개혁 정신을 익힌 정조는 왕이 되어 스스로 검소하게 생활하고,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맞았다. 사극 '이산'도 정조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재위기간까지의 일생을 다룬 것이며, 다소 과장되긴 했으나 정조의 뜻깊은 배려가 거의 닮아있다. 특히 그는 도화서 화원들을 아끼고 온갖 그리믈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장려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역사적인 그림기록이 많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다. 

글과 그림은 기록을 남기는 중요한 수단들이었으며, 특히 그림은 시각적인 요소로써 더 알기 쉬운 기록유산이다. 반차도등을 통해서 행렬에서 어떠한 옷을 입고 몇 명이 어떻게 줄을 섰는지 기록이 다양하게 남아있다. 화성성묘전배도는 수원화성에 관한 전 그림을 나타내었는데, 당시의 기록을 통해서 화성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흭득할 수 있었다. 

과거 그림에서 보면, 제일 중요한 임금의 자리인 용상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거나 임금이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도 얼굴(용안)이 없는 경우가 있다. 임금은 하늘, 곧 용이 내린 인물이라 하여 용과 같이 비범한 인물이어야 했으며, 그래서 얼굴과 몸 모두 용과 같이 귀하고 임금의 변도 매화라 했다. 그래서 예를 갖추기 위해 그림에 함부로 임금의 몸 또는 얼굴을 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기록은 언제나 중요한 것이다. 잠시의 편의를 위해서 중요한 기록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경우가 생긴다면, 나중에 후손들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기거나 또는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조의 지시아래 남겨진 수많은 기록들이 지금까지 잘 보전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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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원화성(2007/2/24)
    from 창동중1학년 2009-10-11 13:16 
    2007.2.24  mom-  수원 화성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주니어 김영사의 역사 체험  이벤트에 운이 좋게도 받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역사 체험을 하고 올 수 있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