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6
권성현 외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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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공평하게 돌아가는 듯 해도, 케잌 하나를 모두가 똑같이 나누고 공평하게 게임을 하는 것 같아도, 항상 그 사이에는 불공평이 존재한다. 아마 이랜드란 존재도 그와 같을 것이다. TV하나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직접 체험을 해 보았지만 대부분은 어찌 세상에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고, 민주주의 세계에서 이 일이 말이 되냐며 그냥 무시해버린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자신의 인권을 존중해 달라는 의미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의 1%도 채 안된다. 게다가 그들을 응원해주는 사람도 그리 많지가 않다. 막상 사람끼리 공평해야 한다면서, 아무리 법이 생기고 정부가 생기고 민주 정치가 생겼다 하더라도 어찌 세상은 이리 삭막한 것일까? 정말 애니카 광고에서 나오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란 결국 이상적인 세상밖에 되지 않는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인터넷, TV와 같은 대중매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런 불공평한 비정규직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해보지 못한다. 언론은 비록 이런 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의 편이지만, 뉴스에서 잠깐씩 나오는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이 그렇게 눈길을 끌지도 않을 따름이다. 나 또한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있어 다양한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노동자들의 삶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감'이 없다고 해야할까? 광우병과 같은 사태는 전국민이 당면한 문제일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오직 소수의 일자리없는 사람들만이 이루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장애인을 보호할 의무를 사람들은 모두 느끼면서 사회에서 소회받는 비정규직들을 돕고 격려해 줄 의무를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월급 인상도 아니었다. 직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비정규적 보호법이라는 엉텅이 법때문에 소외받고 있는 자신들을 대우해 주고 최소한 정규직만큼이라도 자신들에게도 해달라는 것이다. 홈에버 박성수 회장은 비록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지만, 그는 십일조로 몇십억을 낼 수는 있어도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쓰지 않으려 한다. 오직 인건비를 줄이기 위하여 비정규직을 고용, 그나마 있던 인원도 줄여서 원래 있던 인원이 더 많은 일을 떠안게 한다. 그들의 노동 한도는 정도를 넘어섰다. 정부와 우리 국민은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하지만, 오직 이랜드란 거대한 조직의 꼬임에 의하여 법은 이랜드의 편이 되고 자신의 삶의 개선과 계속되는 일자리를 위하여 투쟁하는 비정규직은 무시해버린다. 법이 더 이상 법이 아닌 세상. 어쩌면 지금 개헌을 해야 한다는 국회의장의 말이 무척 당연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오직 겪어본 사람이나 남의 입장을 매우 잘 생각하는 사람일 뿐일 것이다. 나 또한 기독교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그 커다란 복을 결코 세상의 아랫사람에게 쓸 줄 모르는 박성수 회장은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접 하는 인터뷰 현장과 가족,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쓰라림을 느꼈다. 아무리 어리고 철없다지만 세끼 꼬박꼬박 먹고 전기, 가스 잘 들어와서 매우 호강하고 있는 내가 매우 멍청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내 재산을 그들에게 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곁에서 격려를 해 줄 수는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단지 우리들의 목소리만 조금만 더 싣는다면, 결국 정의는 약자의 편으로 설 것이다. 정말 정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갈 것이다. 그 때가 언젠가인가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때가 찾아올 것이다. 정말 세상사람들이 행복한 날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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