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뚱이랑 놀 사람 여기 붙어라 - 열두 달 놀며 노래하며
오진희 지음, 신영식 그림 / 파랑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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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이랑 놀 사람 여기 붙어라."

"나부터 나부터"

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만큼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가 책 속에 가득했어요. 

"나 어릴 때 이랬는데..."

요즈음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바비 인형은 구경조차 못했고, 근사한 레고 장난감 하나 없을 때인데. 혹시라도 멋진 인형을 가진 친구가 있었어도 잠깐 부럽고 말았지, 바다가 놀이터였던 그 시절은 늘 신나고 재미있는 일로 넘쳐나던 때였지요.   

여섯살에 남해 바닷가 할머니댁에 2년여간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울보 여자애였지만 산도 들도 바다도 있는 그 곳은 전부 놀이터였답니다. 생각해보니 여섯살 그 나이에 시골로 가기 전에는 서울에 살 때 오히려 많이 즐겁지 못했던 듯 해요.  친구집이 부자여서 아주 큰 개도 키우고, 무엇보다 집안 정원에 커다란 걸상 그네가 있었던 가장 부럽기만 했던, 그닥 즐거운 놀이가 없었던 듯 해요.   

우리는 소꼽놀이를 해도 바닷가에서 놀다보면 썰물이 전해준 온갖 물건이 보물이 되어주었지요.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조개껍질이 반찬 그릇이 되고, 바닷말, 파래, 들풀로 아주 근사하게 한 상 차릴 수 있었거든요. 

바다가 던져준 예쁜 문양이 새겨져 있는 빈 화장품통에 작은 소라껍질을 모아 보물상자도 하면서요. 우리는 깔깔대고 많이 웃었어요. 서로 자기 것이 더 예쁘다면서요.  바다가 놀이터였던 우리들은 간식도 그곳에서 다 해결했어요. 겨울만 되면 돌맹이를 하나씩 들고 다니며 굴(석화)을 바로 까서 먹었거든요.  정말 맛있었어요.  지금도 싱싱하다고 하는 그 어떤 석화의 맛보다 그 곳에서 먹었던 굴의 맛을 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썰물 때 바닷길이 열리면 진섬이라고 길이 나요.  우리는 잽싸게 그 길을 따라 1시간여를 급히 놀다가 오곤 했어요.  까맣게 익은 귀한 머루가 있었거든요.  소나무가 떨군 낙엽을 우리는 '갈비'라고 불렀어요.  그 갈비가 아궁이에 불때기 그만이었지요.  그 갈비가 진섬에는 아주 많았거든요. 집안 일도 도우고, 맛난 먹거리도 먹고 오곤 하였지요.  물때를 놓치면 금세 섬이 되고 말아서 시간을 잘 맞추어야 했어요. 

이 책에서 가장 많이하고 노는 놀이. 고무줄 놀이를 하면 어째 생각나는 것이 어릴 때 장난꾸러기 남자 아이들이 고무줄 끊었던 것만 나요. 가장 속상하고 기억 나는 일이란 것이 이상해요.  수시로 고무줄을 끊어대는 한 남자 아이는 여자애들 전체에 원수취급을 받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책 속에 나오는 동요는 우리가 거의 불렀던 노래였고, 고무줄 놀이를 하던 그 때처럼 귓가에서 쟁쟁하게 들렸어요. 

짱뚱이랑 실컷 놀고, 행복했던 그 때를 떠올리니 즐거움이 번지지만, 같이 읽은 내 아이의 글을 보니 눈가가 젖네요.  나는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한 때를 가졌는데,  아이는 그걸 모르니까요.  지금도 시골에서 바닷가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런 행복을 행복인줄 모르고 유년시절을 따사롭게 보내고 있지요.   

자연의 품에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게 해주는 부모님이 아이에게는 더 큰 부모란 것을 생각해보며 이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춤하며 반성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오늘 아이 친구가 이번주 토요일 같이 박물관에 둘이서만 현장학습을 가자고 찾아왔는데, 선뜻 다녀오라고 허락을 해주지 못했어요.  

자신은 초등4학년 때부터 혼자서 다녀왔었다고...놀랐어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아이를 너무 보호만 해왔던 것이 아닌지...두 아이만 보내려니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이 어쩌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내 부모님은 여섯살짜리가 혼자서 바닷가에서 놀아도 신경을 쓰지 않으셨는데, 13살짜리 아이가 혼자도 아니고 친구랑 무언가를 해보겠다는데도, 선뜻 승낙하지 못하니 참 못났다고 여겨졌어요. 열두 달 놀며 노래하는 즐거운 삶은 주지 못해도 무언가를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시간은 내가 못준 것이 아니었던지... 

신영식 선생님의 그리운 그림과 함께 행복했던 한 때를, 내 아이에게 행복한 한 때를 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많은 생각을 안게 해준 귀한 만남의 시간이었어요.  감사할 따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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