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어떤 관청이 있었을까? - 나랏일 돌보던 곳, 관청 이야기,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역사 깊이 읽기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넓게 보기 1
박영규 지음, 구연산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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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관리, 관원등과 같이 관청해 속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공무원이라 하여서 대통령과 같이 나라를 돌보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점은 과거는 왕을 중심으로 한 군주제였으며 지금은 백성이 곧 나라인 민주주의란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관리들은 왕이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었으나 지금은 백성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한다. 이 책에서는 옛날의 관리들이 어떻게, 무슨 일을 하였는지 등을 알려주는 책이다.

조선은 정 1품, 종 1품에서 종 9품까지의 벼슬로 나뉘어 있다. 이 벼슬에 따라서 받는 녹봉등도 다 달랐는데, 특히 내명부와 외명부라는 여자 벼슬도 있었다. 여자 벼슬의 대부분은 바로 궁녀로, 나인이나 무수리등의 그 벼슬도 다 달랐다. 특히 조선이 망한 이후에는 이 궁녀의 정확한 월급에 대해서도 나온다.

환관이라고도 하는 이 내시가 대부분 고자였던 이유는 왕실을 보좌하기 위해서였다. 만약에 내시가 생식기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왕비와  불명예한 짓을 저지른다든지를 할 수 있으므로 처음에는 대부분 생식기가 있었으나 점차 환관들 전부가 생식기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 내시는 가끔 왕실을 쥐어 짜는 나쁜 무리들도 나왔으나, 김처선과 같이 올바른 말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충성스러운 내시들도 있었다.

얼마전에 방영했던 사극, '왕과 나'. 유명한 내시 김처선에 관한 이야기로 그가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다. 물론 나는 왕과 나를 대부분 보지 못했으나 이번에 김처선이 어떤 사람이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약 50년동안 몇 명의 왕들을 모셔 온 뛰어난 내시였다. 그가 연산군을 섬기게 되었을 때 연산군에게 여색을 중지하고 나라를 돌보라고 말하였다가 온 몸에 화살이 꽂히고 팔, 다리까지 잘렸다고 한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나라를 돌보라며 곧 쫓겨날 것이라는 경고를 한 김처선은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였다.

조선시대의 두 경찰서와 같은 관청은 포도청과 의금부였다. 그러나 두 개의 차이는 의금부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심문하는 곳으로 직접 도적이나 강도를 잡으로 다니는 경찰서, 곧 포도청과 다른 곳이었다. 이 포도청에도 지금처럼 여자 형사가 있었다. 바로 다모였다. 옛날에 다모라는 사극도 했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밖에 기억이 안 난다. 이 다모는 남자가 여자에 관한 수사를 하기가 힘들었기에 필요했다. 그래서 여자가 쓰던 방을 직접 수색하거나 남자 범죄자를 쫓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기에 매우 중요했다.

승정원이라 하여서 매일매일 궁궐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승정원일기를 기록하거나 6곳으로 나뉘어서 각각 업무를 보는 관청이 있었다. 이들은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나뉘는데 요즘 자주 나오는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도 이 관청의 관리직에서 나온 말이다. 각각의 6조는 각각의 분야에 대하여 다른 일을 하였다.

과거 관청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황희 정승, 율곡 이이, 김처선과 같이 왕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다하여 나라를 위해 일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처선은 충분히 권력을 쥘 수도 있었으나 늙은 몸에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했다. 이 관청이 있었기에 왕이 있을 수 있었다. 이 왕이 아무리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관청에서 일하였던 수많은 충신들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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