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9
안재성 지음, 장선환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녹두 장군 전봉준 같이 유명한 사람이 있는가 반면, 독립 운동에 큰 공헌을 했던 이재유와 같은 사람은 단지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잊혀졌었다. 그러다가 광복 기념일날, 그의 공이 치하되면서 그의 역사가 다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이재유, 젊은 나이 직접 돈을 벌며 공부를 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후에 사회 주의에 대해 알고 독립운동의 열망을 가졌던 이재유. 그의 역사가 이제부터 시작된다.

 이재유는 1905년에 한 시골집에서 태어난 아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자기 할 일은 꾸준히 하는 튼튼하고 용감한 아이였다. 학비를 대지 못했다고 아이들을 마구 때리고 조선을 욕하는 학교의 모습을 보다 못해 뛰쳐나온 이재유는 결국 열일곱살, 집안을 몰래 빠져나와 서울에서 일을 하며 학교 입학을 준비한다. 그 당시의 우리나라 모습은 무척 처참했다. 여자들은 겨우 몇 십원의 계약금으로 몇년동안 방직공장이나 고무공장에서 일했고, 서울로 올라온 젊은이들이나 농민들은 직업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엉망인 생활을 계속해왔다. 그런 가운데 이재유는 일본 노동자의 절반도 채 안되는 일당을 받고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선노동총동맹의 간부가 된 이재유는 조선인 노동자의 편에 서서 많은 일을 해냈다.

 김삼룡, 이현상과 함께 경성 트로이카를 이끈 그들은 경성 트로이카의 동지들과 함께 질 나쁜 숙식과 식사, 낮은 일당 개선을 목표로 한 운동을 펼친다. 그러면서 이제유는 경찰서에 갇히거나 길거리의 형사들에게 붙잡히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끝내 37세, 부인 박진홍을 남겨두고 독방에서 만성 폐결핵과 각기병으로 사망한다. 민족의 영웅으로써는 매우 비참한 죽음이었다.

나는 과거 일제 강점기 시대의 민족 투혼을 되살린 영웅의 이름조차 몰랐던 내 자신이 매우 부끄러웠다. 비록 지금은 독립되고 계속 발전해 내가는 나라이지만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의 슬픔은 세계에 전파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위안부에서 수치심을 당하셨던 할머니들과 죽거나 다친 조상들 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까지 우리 나라 사람들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분단 국가의 슬픈 현실을 깨닫고 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을 위해 장렬한 희생을 하셨던 분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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