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이야기 1 - 동명성왕부터 서천왕까지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깊이 읽기 1
박영규 지음, 이은하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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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광개토대왕, 장수왕등 우리에게 친근한 이름들 모두가 바로 고구려의 왕이었다. 그것이 바로 고구려가 아시아 최고 강대국일 수 있었던 까닭일 것이다. 고구려의 첫 시작은 바로 동명성왕이다. 유화부인과 해모수의 아들로써 하백의 손자이자 천자의 손자였다고 불리우는 그, 주몽은 그 이름대로 활을 무척 잘 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부여의 왕자들이 살해하려는 일에서부터 벗어나고, 졸본에서 나라를 일으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서는 다섯부족을 통해 나라를 이루고 졸본부여란 이름에서 고구려로 바뀌게 된다. 고구려란 말의 어원은 본래 불리는 구려국에서 나온 것이다. 이 구려국에서 높다는 뜻의 고자를 붙여 고구려란 이름을 가지게 된다. 구려란 이름은 아무 의미없이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지만 고구려란 이름에서는 강직한 고구려 사람들의 기상이 느껴진다. 그 때부터 이어진 고구려의 역사는 계속 이어진다.

동명성왕의 아들 유리명왕은 의심이 무척 많았기에 자신의 아들 두 명을 죽게 하였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왕이된 대무신왕은 그만큼 매우 뛰어났다. 무휼은 여섯살 적에도 매우 영리하였기에 부여에서 협박하러 온 사신에게 고구려를 넘보지 말라는 충고까지 하였다. 여섯살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가 그런 용감하고 대담한 말을 한다는 것은 무휼태가 곧 대무신왕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대무신왕은 커서 고구려를 매우 부강하게 만들었다. 유리왕은 비록 부여에게 굴복하였으나 대무신왕은 고구려를 매우 강하게 키워나갔다. 고구려의 위상은 이때부터 떨쳐진 것일 것이다. 하지만 민중왕은 매우 힘든 여생을 보냈다. 태자 해우가 어려 대신 왕이 된 민중왕은 고구려에 마침 큰 재해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4년 동안 힘든 일만 보냈던 민중왕은 결국 사망하였다. 그 다음 모본왕은 나라를 크게 키울 생각을 하였으나 실패했다. 왜냐하면 신하가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역사적 사건을 지나온 고구려는 벌써 역사의 반절을 지나왔다. 하지만 아직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앞으로도 그 고구려의 수많은 왕들의 이야기를 구경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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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자: 최상철
날짜: 2006.10,22.일요일
날씨: 구름/비
같이 간 사람: 아버지, 어머니, 나




 
이번에 가게 된 박물관은 바로 역사 박물관. 농업 박물관 근처인데 최근에 인기인 주몽으로 인해 고구려에 관한 전시를 전부 해 놓았다. 마침 10월 22일부터 무료 관람이 가능하기에 공짜로 볼 수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지하철처럼 입장권을 찍어야 돌아다닐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기기를 정지했는지 찍지 않고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번에 역사박물관이 주제삼은 것은 바로 고구려의 벽화고분이다. 고분은 무덤을 지칭하는데, 벽화가 그려진 무덤을 말한다. 현재 존재하는 벽화고분은 107기다.
현재 남한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중국에는 31기가 있으며 북한에는 76기가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벽화고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이유는 이러하다. 668년 평양성 함락이후 고구려의 흔적은 모두 훼손되어 버려지기 시작하고, 벽화 고분들은 모두가 불탈 때 유일하게 남은 고구려의 역사가 담긴 증언이다.

고구려의 처음은 예맥계를 중심으로 여러 종족이 힘을 합쳐 꾸려나간 나라였다. 이러한 사회나 국가의 상시적인 과제는 정치, 사회, 문화적 구심력의 확보와 유지였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고구려인으로서의 국가의식이 강조되었고, 문화적으로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고구려 문화 창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고분벽화는 문화적측면에서 고구려 사회가 어떤 흐름을 보였는지를 확인시켜 주며, 고구려인이라는 의식형성의 바탕을 제공한 고구려 고유 문화의 창출과정을 알게 해 준다. 현재 있는 107기의 고분중에 그림이 비교적 정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40기 뿐이지만, 그 그림만으로도

고구려의 사생활을 알 수 있다. 예로는 무덤 주인의 얼굴과 함께 입는 옷과 집안의 특징등이 나타난다.

다양한 무덤의 소개



▲ 안악3호분 널방 동쪽 회랑 동벽(대행력 중열 중앙).  ⓒ 


안악 3호고분(위치: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재령평야 북편 구릉의 서편에 자리 잡고 있는 흙무지(흙이 모여서 쌓인 더미)돌방무덤으로 1949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전에는 하총으로 불렸다. 북한측은 한때 미천왕무덤으로 부르다가 현재는 고국원왕릉으로 표기한다. 일부에서는 동수묘로 부른다.

어머니도 잠깐 말씀을 들은적 있었는데, 북한이 무덤을 발굴후에 약간의 충격으로 석회가 떨어져 그림이 보전되어 있지 않으며 과학적으로 많이 뒤떨어졌기때문에 무덤이 잘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무덤에다가 보호랍시고 돌문을 떼어내고 새문을 붙인것을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하다.



 

▲ 쌍영총 널방 북벽 중앙(무덤주인 부부).  ⓒ


 




 

▲ 덕흥리벽화분 앞방 서벽 상단(유주 13군 태수의 일부).  ⓒ

 




 

▲ 덕흥리 벽화분앞방 동벽(대행렬).  ⓒ

 



 

▲ 덕흥리벽화분 앞방 북벽 서쪽(무덤주인).  ⓒ  

덕흥리벽화분(위치: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동) 유주 자사의 무덤. '유주의 13태수'그림과 '우와 직녀'그림등의 벽화가 있는 곳.

안내원에게 들었는데, '견우와 직녀'그림에서 성성이란 동물이 나온다. 그 성성이는 무척 잔꾀가 많고 달리기가 빠르다. 그리고 술을 매우 좋아하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그 성성이를 잡아먹으려고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성이를 먹으면 매우 달리기가 빨라지기에, 군사들이 싸울때 달리기가 빠르면 여러모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성이가 술을 좋아하는 것을 약점 삼아 성성이가 자주 다니는 곳에 술을 매우 큰 통으로 올려둔다. 그리고 그 주위를 짚신으로 꼬아서 둥글게 한 후에 줄을 잡아당기면 넘어지는 덫을 만든다. 성성이는 그 술을 보고 그 덫을 만든사람의 이름과 조상까지 들먹이며 욕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호기심이 많아 많은 친구를 데려와서 술을 마시는데, 술에 취한 성성이들은 근처에 있는 짚신을 신는다. 그럼 미리 잠입하고 있던 사람이 줄을 끌어당기면 성성이는 저절로 잡히는 것이다.

 




▲ 호남리사신총 널방 남벽(주작).  ⓒ  

호남리사신총(평양시 삼석구역 성문리) 맨처음 사신에 관한 벽화가 그려진 무덤. 백호, 청룡, 주작, 현무인데 수호신들은 처음 지킨 터라 아직 자기의 임무를몰라 청룡과 백호는 입구 반대쪽을 바라보고, 현무와 뱀은 서로 바라보아야 정상인데 싸웠는지서로 나몰라라 하고있다. 또한 그림까지 신비스럽지 않다. 청룡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척목과 외뿔이며 과장된 눈썹도 있지 않다. 맨처음 나타난 수호신은 역시 신입이라 의무 파악을 못한다.
이 때는 아직 오 방위 가운데인 황룡이 나타나기 전이다.(수호신의 위치- 우백호, 좌청룡, 남주작, 북현무) 

강서대묘(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드디어 수호신이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때. 뱀은 현무와 진짜 사랑하는지 신비스럽게 감싸고 있다. 5개의 그림중에 가장 인기있는 그림이 바로 현무이다. 그 뒤에는 주작 두 마리 서있는데, 입에는 하얀 열매를 물고 있다. 그 열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강서중묘에서. 청룡은 목뒤에 척목을 갖추었고, 뿔도 가지고 있으며 입에서는 불꽃을 내뿜고 있다. 입구까지 정상적으로 바라보니 진정한 청룡의 모습. 백호는 비록 청룡과 모습은 비슷하지만 청룡과 다른점이 여러모로 있어서 어느정도 구별할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왕의 시신이 있는 관 바로 천장에는 가운데를 나타내는 황룡이 있다.

우리나라의 오방위에서 남쪽은 빨간색, 동쪽은 파란색, 서쪽은 하얀색, 북쪽은 검은색, 가운데는 노란색으로 표기한다.

 



 
▲ 강서대묘 널방 북벽(현무).  ⓒ 
 



 

▲ 강서대묘 널방 서벽(주작).  ⓒ 
 

강서중묘(남표시 강서구역 삼묘리)



 
▲ 강서중묘 널방 동벽(청룡).  ⓒ 
 



 

▲ 강서중묘 널방 남벽 서쪽(주작).  ⓒ


이 벽화에서는 오직 주작만 제외하고는 모두 신비스러움이 없어졌다. 청룡은 용맹한 얼굴이 바뀌었고, 네 다리로 바닥을 디디는 듯한 모습. 백호는 잘 모르겠지만, 현무는 화벽이 떨어져 그런지 원래그런건지 모르게 이상한 모습을 하고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주작이 입에 물고있는 열매는 바로 사당이란 것으로, 어느 새든지 그 열매가 없으면 약수가 건너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적혀있는 설명만으로는 이해가 안됬는데, 여기 적혀있는 내용들의 이야기를 해주니 박물관 견학이 한층 더 재미있어 졌었다. 두 차례에 거쳐 이야기를 들었는데, 몇몇 이야기는 내용이 기억 안나지만 좋은 내용이 매우 많이 기억난다. 이번에 역사 박물관 간것이 잘 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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