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장이의 아이들 비룡소 걸작선 43
마리아 그리페 지음, 안인희 옮김, 하랄트 그리페 그림 / 비룡소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가난한 자들  대부분에겐 소원이 있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아니면 자기 자식이라도 잘 되게 해 달라고. 우리 엄마가 바로 그 예이다. 어머니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엄마 아빠는 어린시절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어서 그게 제일 후회가 많이 된다. 기회는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지 말고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서 네가 크면 사회에 크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게 엄마 소원이야."

물론 나는 그 때마다 말을 그냥 흘려들어버리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소원이란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현재 나에게도 작은 소원이 있다. 바로 동생을 얻는 것이다. 동생이 있으면 나의 생활도 힘들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내 친구들 대부분이 있는 동생이 나에게도 한명 있으면 좋겠다. 또 나에겐 장래 희망이 있다. 바로 과학자이다. 과학자가 되어서 이룰 내 꿈, 바로 나의 큰 소원은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세계를 평화롭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발명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이 꿈을 이룬다면? 이루고는 싶겠지만  과연?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런 것들이 진짜로 이루어진다면 아마 이 책에 나오는 성주의 아내처럼 더이상 소원이 없어 불행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소원이 있고 못 이루어서 슬프기도 하지만 소원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나오는 성주의 아내는 부자 성주를 만나서 자신의 소원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그 소원을 이루길 기쁘게 기다리기도 전에 자신이 그 어떤 노력도 하기전에 성주가 다 이루어 주었다. 그래서 모든 소원을 이루어 그녀에겐 더이상 소원을 얻기란 바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릴 적에는 그냥 양을 치는 평범한 양치기 소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주 큰 소원이 하나 있었다. 부자가 되어서 하고싶은 것을 모두 이루는 것이다. 그 말은 그대로 되었다. 부자를 만나 부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소원을 이루고, 그 소원으로 인하여 다른 소원들의 존재란 가차없이 없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가끔 이 가난한 생활에 질려서 부자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부자는 자신의 소원따위란 것이 없어 마음이 나쁘게 변한다. 만사가 귀찮고, 삶의 행복따위란 없다. 물론 부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사회에서는 돈이란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은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닌 중간이다. 단지 그 돈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너무 적게 가지고 있는 것의 사이 적당한 자가 가장 좋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소원의 도시의 성주에게 납치된 클라라와 클라스의 아버지 알베르트는 자기가 만든 유리가 거의 팔리지가 않아서 너무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내 소피아와 알베르트는 항상 클라스와 클라라가 좋은 옷을 입고 행복한 생활을 하길 바랬다. 그것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클라스와 클라라 두 아이는 성주에게 납치되어 좋은 생활이라 말할 수 없는 소피아가 말한 좋은 생활을 하였고, 하느님이 덤을 준 것과 같이 갑자기 소피아와 알베르트도 유리를 많이 팔아 부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한 때가 나았다. 알베르트 부부는 아이들이 없어서 불행했고,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아서 불행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때 가장 불행한 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자기 삶을 잃게 되었을 때이다.

알베르트 부부는 자식들을 잃어서 밀트베터의 예언을 무시한 것에 대해 아주 큰 후회를 하고 있다. 자식을 잃은 것에 대해 그들은 더이상 삶의 가치따위는 없어졌다. 클라스와 클라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성주의 아내가 원했다는 이유로 예전의 알베르트의 유리 그릇을 구경하는 행복따위는 없어져서, 유모 나나와 성 안의 까다로운 생활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렸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던 거울속의 클라라와 클라스도 없어졌다. 그것은 클라스와 클라라의 겉모습만 남아있고 속은 나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있다. 나는 단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클라라와 클라스의 행복을 뺏은 성주 부부에 대해 정말 화가 났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그것도 갓 걸음마를 뗀 아주 작은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했다니... 자유를 주지는 못할 망정 화가 나서 유리를 깨부수는 클라스를 매로 다스리게 거기에다가 아이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나쁜 유모 나나까지 불렀다는 것에 더욱더 화가 난다. 성주는 자신의 아내를 정말 아끼고 다른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좋은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점은 남의 힘든점을 다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더라도 그것에 대해 도와주려고 하지를 않는 듯 하다. 진짜로 남을 위한 것이라면 그 사람의 힘든점까지 고려하여서 그 힘든점을 도와주고 별로 필요 없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책을 통해서 소원과 삶의 관계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가난하지만 소원이 가득한 알베르트씨 집안은 그나마 행복했으나 부자지만 소원의 잔고가 바닥난 성주의 아내는 항상 불행했다. 또 소원을 이루면 그 후 잠시동안은 기쁘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알베르트와 성주의 아내의 중간이 될 것이다. 더한 것도 아니고 부족한 것도 아닌 딱 중간, 잘 살지만 소원이 가득한 사람 말이다. 성주의 아내처럼 안 되려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내가 이룰 목표( 소원)들을 생각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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