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릉비 - 위대한 제국 고구려 역사를 아로새긴
김용만.이향숙 지음, 정준호 그림 / 열린박물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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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나라에 대왕이라고 불리우는 인물은 단 두명이 있다. 세종대왕과 광개토태왕이다. 이 광개토태왕은 보통 태왕이라고 하는데, 큰 '대' 자대신 더욱 더 큰 걸 말하는 클 '태' 자를 썼기 때문이다. 이 광개토태왕의 무덤은 장군총과 태왕릉중에서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입구와 비석의 위치 그리고 규모로 보아서는 태왕릉을 광개토태왕의 무덤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무덤을 돌보는 사람도 있다. 바로 수묘인이다. 수묘인의 직업도 두가지로 나뉘는데, 국연과 간연이다. 국연은 제사를 준비하고 간연은 국연의 일을 돕고 감독을 하며 무덤 주위를 청소하거나 지킨다. 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제사용 가축이나 과일들도 매우 중요하게 관리한다.

광개토태왕의 등장은 서기 374년 소수림왕의 동생 이연 부부가 낳은 아들로부터 시작된다. 이 아이의 이름음 담덕으로, 소수림왕은 아들이 없었기에 그에겐 매우 귀한 아이였다. 그는 남과 달리 체격도 크고 위엄이 있다. 384년, 소수림왕이 죽자 담덕의 아버지 이연이 고국양왕으로 등극했다. 그는 이제 왕자가 되었고, 태자시절엔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18세라는 나이에 왕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위대한 광개토태왕이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함부로 정할 수 없는 자신만의 연호를 정하였다. 이것으로 다른 나라에서 온 축하 사신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은 그의 용맹에 매우 두려웠다. 과연 그들의 생각대로 광개토태왕은 옛 고구려의 영토의 대부분을 되찾았다. 그가 싸워서 전부 이긴 까닭은 그의 전략과 용맹함도 있었지만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이 튼튼해 내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라가 힘이 약해져 망하게 되는데에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부 반란 때문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장수태왕부터는 그의 커다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주 거대한 비석, 바로 그 유명한 광개토태왕릉비를 세운다. 2,775자의 커다란 글자들이 새겨진 광개토 태왕릉비는 그때당시 고구려 사람들의 기술력에 대해서 말해준다.

김진명씨의 '신의 죽음'이라는 작품에서는, 중국에서 우기는 동북공정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 동북공정의 원인은 고구려가 우리나라 사람인 것을 증명하게 되면 중국 영토의 일부가 우리나라 땅인 것으로 증명이 되기 때문에 중국은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일부러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것이다. 신의 죽음에서는 현무첩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 현무첩에서 고구려가 우리나라 사람인 것을 증명할 수 있는데, 진이라는 사람이 중국 역사에서 한명도 나오지 않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고구려 옛 영토는 우리나라 땅이 된다.

아름답고 용맹한 나라, 고구려와 그 고구려를 빛낸 광개토태왕.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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