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비발~* > 소외된 존재들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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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부리 ㅣ 문지아이들 48
로버트 잉펜 그림, 너새니얼 래첸메이어 글, 이상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을 위한 책에는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도 있지만, 어른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세상도 있다. 부러진 부리는 후자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것도 밝고 넉넉한 세상이 아니라, 그늘 속의 세상이다. 여기서 이미 책의 시선과 의도가 어디에 향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이 세상에는 소외된 존재들이 존재하며, 바로 그런 존재들이 이루는 세계가 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으로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이런 식의 시선과 의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강아지똥'이 그렇듯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익히 아는 진부한 소재인 것이다. 따라서 그 진부함이 어떻게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따져보는 일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부리가 부러져 같은 참새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꼬마 참새와 역시 밝고 넉넉한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떠돌이. 글은 이렇게 설명한다. "떠돌이를 자세히 바라보다가, 꼬마 참새는 그 사람이랑 자기가 서로 닮았다는 걸 알아차렸어. 어쨌든 그 사람도 부리가 부러졌다는 걸 깨달은 거야. 자기 안의 부리, 눈으론 보이지 않는 부리 말야." 그러니까 꼬마 참새는 육체적 장애를, 떠돌이는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은 친구가 된다. 소외된 존재들이 서로 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연대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단지 꿈꿀뿐이다. 여전히 둘은 일반 사회로부터 단절되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꿈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된다. 냉정한 리얼리즘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진다. 자신이 그들과 그들을 따돌린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 역시 독자의 몫이다. 비록 진부한 소재이긴 하지만, 섣부른 세상과의 화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분명 다르다.
그림의 흐름도 눈여겨볼만하다. 꼬마참새가 당당하게 살았던 삶의 터전에서 당당한 참새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다가 부리가 부러진 모습이 한번 더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여위어간 참새가 겪어야하는 모습, 그다음 그토록 소중한 먹을거리, 빵이 커다랗게 한 장면으로 처리된다. 그것을 드는 손, 그 손의 임자, 멍하고 뒤틀린 표정의 떠돌이.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참새에게 빵을 먹이는 떠돌이의 표정은 따뜻하기만 하다. 둘의 연대가 손위에 앉은 참새를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강조되고, 다시한번 줌아웃하는 식으로 떠돌이와 참새와 주변 인물들을 한 면에 잡고, 벤치위의 떠돌이와 참새로 장면을 마감한다. 정적인 텍스트를 군더거기를 생략하고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다른 화가가 그렸다면, 이 정적인 텍스트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싶다.
다만, 떠돌이와 부리가 부러진 참새라는 설정에서 이미 끝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감동을 줄이는 요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