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비발~* > 상투적인, 너무나 상투적인
악어입과 하마입이 만났을 때 사계절 저학년문고 29
장수경 지음, 이상권 그림 / 사계절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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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가장 커다란 상처이자 아픔이 된다. 아니, 될 거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혼보다 더 큰 상처는 지속적인 불화이며, 그 불화로 인한 자신의 존재가 환영받지 못하게 된 존재라는 것, 짐이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주위의 시선일 수도 있다. 그 아이들을 문제아로 내모는 것은 너무나 상투적인 고정관념이며, 그 아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아이들은 납득할만한 이유라면 그것이 부모의 이혼이든 불화든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소화할 힘이 있다. 문제가정과 문제아, 이른바 '건강 가정' 이데올로기와도 맞닿아 있는 이런 고정관념의 공식을 한번쯤은 반성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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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잘 만들어진 동화...
넌 누구야? 사계절 저학년문고 30
황선미 지음, 최정인 그림 / 사계절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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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위탁 가정의 아이인 나 '유찬'이 겪는 갈등을 그린 동화. 한 마디도 깔끔하다. 짜임새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운도 감동도 남지 않는다. 대체 왜 일까? 되풀이해서 읽어본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의 눈이 아니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만약 그렇다면 애시당초 동화 따위엔 감동을 느끼지 말아야 할 거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고아원의 아이, 성주의 마음은 설정에서부터 배제되어서?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철저히 위탁가정의 아이 '나'의 눈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성주라는 아이의 갈등은 울음과 도둑질로만 보여질 수 있을뿐이다. 그렇기는 해도 뭔가 부족하다. 바로 그 일인칭 서술이야말로 작가는 성주를 주체적 인간으로 보려는 걸 포기한 것이 아닐까? 머릿말을 보면 그럴 것도 같다.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린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성주는 주로 그것을 되살리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고아로서의 존재 방식이 아니라... 찬이 엄마도 고아원 출신, 친구 오종민이 엄마 성을 쓰는 것, 말더듬이 동일이... 소도구들도 나무랄 데 없지만,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성주가 아니라 찬이로 대표되는 커버린 아이, 또는 어른의 어린시절에 가 있었던 거라고 하겠다. 게다가 성주의 여섯 손가락. 마치 사족같은 느낌 -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다 너무 많이 붙인. 그렇게 잘 만들어진 동화지만, 감동까지 짜넣는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만 같다. 하긴, 감동은 짜넣으려고 해서 짜넣어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기대했던 작가의 작품이라 실망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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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무난한 첫읽기 책
프라이팬 할아버지 난 책읽기가 좋아
간자와 도시코 지음, 호리 우치 세이치 그림, 고향옥 옮김 / 비룡소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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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 책을 읽는 즐거움은 사물을 새롭게 보는 법을 발견할 때이다. 아이들책은 특히 아이들 눈으로 새롭게 보는 법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 작품은 1969년 작품이다. 무척 오래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많은 아이들이 읽은 책이라 들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책이 소개되었을 때는 '오랫동안 많은' 독자가 읽었다는 사실은 소개의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지금 우리나라에 소개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기발한 상상력도, 신선한 스토리 전개도 없다. 못쓰게 된 프라이팬이 가출을 해서 정글에서 사막에서 모험을 하고 마침내 기진맥진했을 때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가 이 책의 내용이다.

그러나 스토리로만 작품을 재단하기에는 남은 무엇인가가 있다. 아이들은 자기 엄마 아빠가 되는대로 지어낸 이야기라도 그 현장에서는 좋아라한다. 전후관계가 얼토당토 않지만, 아이들은 재미있어할, 바로 그런 현장성이 이 책의 스토리전개에는 있다. 그런데 번역은 관행적인 형태로 되어있다. 매끄럽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현장성을 살리려면 했어, 식의 입말투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나무랄데가 있는 옮김은 아니지만, 첫 문장하나는 걸린다. "프라이팬 할아버지는 새까만 냄비 할아버지예요." 그림도 그렇고 프라이팬을 냄비라고 생각하는 우라니라 어린이는 드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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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동생이 너무 무거웠어요 문지아이들 45
아르노 그림, 뤼카 글, 최윤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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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에게 잘 소개되지 않는 나라의 그림책? 일본과 서구의 그림책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기에 표지를 보았을 때 반가웠다. 처음엔 아프리카인가, 생각했는데, 보다보니 아프리카는 아닌 것 같고 동남아시아 아니면 중국 어느 소수민족 이야기 같기도 하다. 돌 되기 전까지 남자 애들은 흙 안 닿게 키워야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대체 어디지? 

어쨌든, 그럼 다음 내용은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반성이겠군? 주인공 타라는 야단맞고 집을 도망치는데 그림자 연극을 하는 할아버지를 만난다. "타라, 이 상자 속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즐거움이 들어 있는지 너도 알겠지? 난 이것들을 항상 등에 짊어지고 다녔단다. 그런데 이젠 늙었어. 어떤 때는 너무 무거워." 음, 남아선호에 대한 반성은 아니군. 그렇다면 이제 세상의 불공평과 태어나면서 지고다녀야 할 짐을 연관시킬라나? 그런데 할아버지는 스님인 것으로 판명되고 스님은 타라의 동생을 축복해주고 타라는 용서를 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타라는 동생이 무거워 떨어뜨린 건데 잘못한 거고, 그 잘못은 스님의 축복으로 무마된다. 남아선호로 인해 타라가 당한 부당함도, 속세의 짐에 대한 스님의 고뇌도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라고 두루뭉실 끝막음된다. 어리둥절한 채로 책장을 덮는다. 대체 이 책을 왜 소개한 거지? 그러고보니 작가들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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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나눔의 기쁨
곤다르의 따스한 빛 지식과 정보가 있는 북오디세이 31
요 쇼메이 그림, 미나미 나나미 글, 노경실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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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들이 모두 나누어갖진 않으며, 나눔의 기쁨은 가진 자들만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에티오피아로 구호활동을 간 지은이는 한 노인이 자신도 부족하면서 다른 마을의 두 소녀에게 배급받은 양식을 나누어 준 것을 알고 느낀 감동을 그림책으로 옮긴다. 지은이는 따스한 그림들로 지은이의 감동을 전하며, 나아가 그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한다.

"나도 기다리고 있다. 배려하는 마음과 힘을 주는 한 마디. 그리고 함께 웃어주는 친구가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내가 누렸던 기쁨을 누군가에게 똑같이 누리게 하고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눔의 기쁨을 함께하기는 커녕 굶주림을 종식시키는 운동 자체에도 무관심한가. 지은이는 관심을 갈망한다. 아울러 말미에 실은 구체적인 여러 자료는 지은이의 갈망을 뒷받침한다. 우리나라도 북한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먼 나라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그 굶주림 속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인간의 숭고한 심성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여기서 거론되는 나라들은 자칫 굶주림의 나라, 도와주어야 할 나라로만 인식될 수 있다는 게 여전히 씁쓸함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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