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상에 우리집에서 이렇게 명절 음식을 작게 장만하는 것은 내가 결혼하고서 처음이다. 동이채로 하는 콩나물은 3천원어치만 샀고 숙주도 3천원 파란 나물도 3단. 거기에서 일 많은 찌짐은 20장만 구웠다. 민어 한 마리. 돔 한 마리. 큰 조기 세마리 . 중간 조기 10마리, 전어 3마리. 시상에 이런 날도 있는 가 싶다.
우리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제사때나 명절때에 하는 음식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한다. 처음엔 사람들이 누가 다 먹느냐고 묻고 , 또 언제 다 장만 하냐고 묻지만 이제는 당연히 이 집은 이렇게 하는 줄 알기에 콩나물을 동이 채 갖다가 발을 따는 모습이나. 제일 큰 맛살을 두개 헐어서 산적을 끼는 내 모습은 자연스럽다.
2.
그런 우리집에 소현아빠가 폭탄을 선언했다. 할매를 보고(자기 엄마를 늘 이렇게 부른다)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들게 경기가 곤두박질 치고 있으니 제사상을 차릴 경비를 반으로 줄이라고 선포를 한 것이다. 그것도 내가 없는 자리에서 단 둘이 앉아서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나이도 많고 언제 망해 먹을 지 모르는데 자식 새끼는 어리고 앞날이 캄캄하다는 둥 아주 불쌍하게 보이는 작전으로 밀고 나갔다고 한다. 명절때만 되면 어쨌든 간에 많이 해라 많이! 하시는 어머님을 보고 남자는 늘 옛날처럼 못 먹어서 명절 기다리는 사람 없다고 , 경주집, 찬우집도(시누들) 싸 주니까 억지로 가져 가는 거라고, 또 음식이 모지라면 나가서 맛있는 것 사 먹으면 된다고 하면서 아무리 아무리 설명해도 씨알도 안 먹히던 어머님이 드디어 자식의 불쌍하게 보이는 모습에 된통 넘어 가셨다. 이제는 전화만 받았다고 하면 "아가 어쨌던 간에 작게 해라 작게 해랴" ㅋㅋㅋㅋ " 예 어무이 제 알아서 할게요." 새벽 시장에 가서 몇 날 며 칠을 지고 날랐던 내가 요런 날이 있을 줄 꿈엔들 생각했겠냐. 우히히히.
3.
며칠 전 부터 다듬고 굽던 음식들. 그 음식을 할 때마다 동서가 하나 만 더 있었으면 생각을 했는데 이 곳 저 곳에서 동서간에 불화를 보는 순간 몸은 힘들지만 혼자가 오히려 편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멀리 살고 직장에 다니는 동서 같으면 내가 음식하고 그 쪽에서는 "형님 고상하지예" 하면서 아이들 양말 한 켤레씩만 사 들고 와도 서로 이해하겠건만 그건 동서가 없는 내 입장에서 동서를 그리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고 정작 있으면 서로 뺀댕이 소갈딱지 같은 인간들이라 얼마나 많은 서운함과 기대가 오가겠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지 말고 비우라고 하는 것 처럼 비우면 될 것도 같은 데 여기 저기 동서를 못 잡아 먹어서 속상해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동서간의 갈등을 겪어 보지 않은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동서간에 갈등이 심화된 아낙들에게는 아마 총알을 맞을 것 같다.
4
찌짐을 굽는 동안 민수가 감시에 들어갔다. "엄마 몇 개 구웠어요" 하고 구우면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 민수야 데인다. 그냥 들어가라" 고 해도 아예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아빠가 엄마가 몇 개 굽는 지 헤아리고 딱 20개 구우면 아빠한테 전화해라고 했기 때문이란다. 흐흐흐흐. 정말 20개 구웠다. 김치통 한 통 가량 개어 놓은 것은 냉장고에 그대로 넣었다. 아빠가 감시를 하라고 할 정도로 내 손도 커졌다. 음식을 많이 하다가 보니까 정작 작게 하는 음식은 양에 차지 않고 영 이상하다. 밤을 꼬박 세워서 하는 내가 정말 미련스럽다고도 하지만 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 일가 친척들이 모일 때면 늘 다짐하는 것. "오늘 만큼은 즐겁게 일하리라" 찌짐이 몇 다라이가 되든 간에 어무이가 그렇게 원하시면 하는 거고 일단은 이리 저리 신경전을 벌이는 일 자체가 귀찮다. 그냥 콧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것이다. 결혼 초에는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속도 많이 상했다. 오죽하면 남자를 보고 내가 명절날 사라지거든 찜질방에서 찾아라고 하고, 그 뒷타는 단식원에서 날 찾아라고 했다. 내가 집을 나갈때에는 더 이상 이 집구석과 인연을 끊었을 때 일이지만 우스개 소리로 한 번씩 그렇게 내 뱉았다. 그러면 남자는 시종일관 "할매 말 따라 하지마라" 였지만 나하고 어머니의 관계가 그런 관계인가? 속이 상할 때 남자에게 어머니 흠담을 해도 항상 다짐 받는 것이 있다. 그냥 듣기만 해라고 만약에 어머니 귀에 조금이라도 내가 한 소리마냥 들어갔다고 하면 난 어머니랑 못산다고 하면서 협박아닌 협박을 했다. 몸에 난 상처는 치료를 하면 되지만 이 말에 서로 상처를 받는 것은 죽을 때 까지 기억나는 것이고 죽어서도 뼈가루에 새겨 지지 않겠는가? 늘 서로 미워하는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날도 많은데 그 순간의 억한 감정으로 뱉아진 말 한마디로 어짜피 같이 살아 가야되는데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을 필요가 없다.
5.
새벽부터 시작하여 굽는 것은 다 구웠다. 샤워를 했다. 두번이나 해도 기름 냄새가 몸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집에는 촛불을 켰다. TV에서 48번에 나와서 신이 난 아이들은 지금 열심히 웃고 있다. 뭐하는 데 그렇게 웃냐고 하니까 "짱구" 란다. 아이들이 웃으면 나도 즐겁다.
이제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듬어 놓은 나물을 무치고 탕국만 끊이면 된다.
시상에나 "쥐 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고 하더니 내가 명절에 컴터 앞에서 이렇게 여유를 부려 보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흐흐흐흐. 소현 아빠는 오늘 할 일이 마당씻기이다. 내가 일할때면 뭐 도와 줄 것 없냐고 하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하면서도 동이 채 들어온 콩나물 발을 따 주던 그 사람이 아주 고맙다. 자칫 고부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는 일도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을 해 주고 무엇보다도 새끼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는 그가 다시 한 번 고맙다.
6.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서로 안아준다. 아이들도 서로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하고 뽀뽀를 해 주고 그리고 어른들은 뼈가 으스러지도록 안으면서 답례를 한다. 할머니께 "사랑해요" 하고 말씀드리고 뽀뽀를 하라고 시킨다. 엄마와 아빠도 자연스럽게 포옹한다. 새끼들을 가운데 놓고도 팔 가득 안아서 포옹을 한다. 그 포옹은 내가 정해둔 규칙이다. 하루에 한 번 씩 포옹을 안하면 벌금을 매기도록 한 것이다. 처음엔 소현아빠가 벌금을 많이 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포옹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차츰 포옹도 잊혀지고 뽀뽀도 잊혀지는 것이 싫다. . 서로 남남이 모여서 살아가야되는 세상에서 늘 즐거운 일이 날 따라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늘 슬픈 일이 내 곁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자신이 날 파고 들어 날 병들게 하고 날 견디게도 하고 날 즐겁게도 한다. 10년전의 나의 생활이 후회스럽고 10년후에 또 후회를 할 지언정 일단을 아침을 맞고 밤을 맞아야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한가위 같이 풍족하고 넉넉하고 행복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