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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민들레가 소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소멸된 민들레가 자신도 태풍이었다는 듯 제 갈길을 가지 않고 계속 유리창을 두드린다. 덜컹거리는 창문을 다시 정돈해 본다. 옥상에도 한 번 더 올라가 본다. 이리저리 물 흐르는 구멍이 막히지나 않았는지 한번더 점검해 본다. 남편이 다 확인을 했는데 왜 자꾸 돌아다니냐고 하면 그냥이라고 한다... 확인보단 살며시 아무탈없이 지나간 민들레란 이름을 지닌 태풍의 상큼한 내음을 맡을려고 한것이 아닌지....
윙윙...귀신소리 같은 바람소리와 덜컹거리는 창문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요한 책 한권을 읽는다.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법정스님의 책이 나오면 그냥 무의식중에 사서 읽는다. 그러면서 산속의 오두막집에서 혼자 사는 고요함을 스님과 같이 느끼고 그 속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하잘것 없는 생물들과의 교감도 한다. 이번 책은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니....."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고 하니 어째서 일까? 책 표지에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그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음이다. 결국 우리는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글귀를 읽으면서도 왜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장 한장 넘겨 본다.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데 스님은 왜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고 했을까? 왜 홀로 있을수록 함게 있다고 했는가?
책속으로 계속 여행을 떠났다. 스님의 말씀이 모순이 있는것을 생각하면서 계속 계속...가다보니 홀로 있음이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홀로 있음에서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것이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상태라고... 고독을 때론 맑고 투명하게 하지만 고립은 그 출구가 없는 단절이라고.........우리가 사는 이 곳에서는 고독은 있으되 고립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지금 우리는 혼자사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을까?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하루에도 열두번도 변하는 우리네의 좁은 소견으로 즐거움이고 기쁨이고 사랑이라는 이런 말들은 어쩌면 사치가 아닐까? 높은 곳을 바라보면 한 없이 작아지고 한없이 움츠려지고, 달리기를 하고 있지만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너무나도 지치는 생활속에서 한번쯤 옆도 돌아다 볼 수 있는 마음도 있을까. 그런 여유가 있을까....너나없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더 차지하고 싶어하고 가지고도 고마워하거나 만족할 줄도 모르면서 계속 달려가서 난 부자의 끝줄에라도 서고 싶어 안달이 났을까....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스님은 불행해 진다고 하는데 난 워낙 없이 자란탓에 많이 가져서 가진자의 불행이라도 맛보고 싶은 생각도 가끔가다가 든다. 지나친 소유욕이 나를 구렁덩이에 빠뜨릴 지라고 한 번쯤은 움켜 쥐고도 싶다. 우리를 부자로 만드는 것이 돈이나, 집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하는데 가끔은 그것도 달콤한 사탕발림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러나 난 또 한번 속는다.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추스린다. 이세상이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는 간디의 말을 믿는다. 그러므로 탐욕을 위해서(??) 궁핍함을 내 속에서 깨끗이 지워나간다.
지칠듯이 단순에 읽는 책이 아닌 화장실에 앉아 내 속의 지꺼기를 보내면서도 읽고 아이들에게는 밥상머리에서 똑바로 앉아서 다 먹고 책을 봐라고 하지만 부엌에서 남은 식은밥을 밥통채로 들고도 읽는다. 그렇게 편안하게 읽다보면 나의 욕심도 저 만큼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가 버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걸음마를 시작할련다.
더불어 이책을 읽으시려고 맘을 먹으신 분께 전한다.그냥 한번 맘을 추스리기에는 안성마춤인 책이지만 재미와 스트레스와 박진감을 조금이라도 얻을려고 하시거든 다른 곳으로 눈길을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