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 무의식과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의 거장 시공아트 62
돈 애즈 지음, 엄미정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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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미술시간에 배운 사람이다.

 

초현실주의하면 웬지 이해가 안되고 그냥 난해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거리를 두게 되는데, 달리는 그래도 뭐라 해석을 할 수는 없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기는 하다.

 

화려함, 아니면 그 속에 들어있는 기괴함, 이런 것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달리는 미술 시간이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 학창시절이 끝난 다음에는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진 사람이 되었고, 그는 아득한 지식의 저편으로 이름만 남아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었는데...

 

다시 읽게 된 달리는 내 막연한 생각보다는 더 대단하다는 느낌을 주었고, 그의 그림이 그래도 초현실주의임에도 무언가 있다는,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은 그가 고전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또 달리가 내가 얼핏 생각하기로는 아주 오래 전 사람이지 않을까 했는데 1989년에 사망했으니 그는 최근 사람이다. 근대와 현대 초현실주의를 온몸으로 겪고, 나중에는 초현실주의와 거리를 두고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이 좋았고...

 

그가 무의식에 의존해 자동기술법으로 작품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한 다음에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지은이의 주장을 읽고, 초현실주의가 그냥 우리의 무의식을 자신도 모르는 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을 고찰하기 위해서 의식을 철저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는 점.

 

우리나라에서는 초현실주의 작가 하면 이상을 떠올리는데, 이상 역시 자신의 작품을 무의식적으로 쓰지 않고 의식을 끝까지 살펴서 했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미술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만 배운 달리는 그냥 초현실주의자로 남아 있었는데... 사실 그는 나중에 초현실주의에서 탈피해다는 점(탈피라고 해도 좋고 제명이라고 해도 좋다), 하여 초현실주의자 달리로만 기억하는 것은 그의 일부만을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 그곳은 무정부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초기의 달리는 무정부주의에 가까웠지만 나중에는 보수주의자로 변신하고... 좀 우습지 않은가? 초현실주의는 이성적 세계를 일부분으로 보고 인간의 무의식을 추구하는데... 보수주의라니... 그러니 그가 초현실주의와 끝까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초현실주의는 정치사상이 맑시즘 또는 아나키즘과 많이 어울리는데, 그들은 현상을 인정한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 많기 때문에, 이상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여 그들은 체제 전복을 꾀하거나 아니면 생각의 전복을 꾀하는데... 달리는 체제 전복은 생각도 않으니...

 

다만 그는 생각의 전복은 끊임없이 추구한다. 이것이 그의 작품을 초현실주의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고 이유가 되겠지만... 기존의 생각들을 뒤집어서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달리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기존에 지니고 있던 우리의 고정관념들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 점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달리의 많은 작품들까지 더불어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고.

 

여기에 초현실주의자 달리로만 알고 있지 않고, 비록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달리가 영화에도 참여를 했다는 사실, 또 그는 그림만큼 글도 많이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여러 매체를 통해 충분히 실험한 사람이 달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한 관점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달리의 그림만이 아니라 다른 그림들을 볼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살바도르 달리. 한 번 검색해 보라. 그의 다양한 그림들이 나올테니. 그 그림들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라. 그림 보고 생각하고, 또 그림 보고 생각하고, 그러다가 달리란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자.

 

그의 생애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특히 초현실주의 시대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달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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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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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가 지배한다. 단순한 구조의,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는, 짧은 이야기들, 교훈적인 우화들과 가슴을 적시는 수많은 미담들, 그 이야기들은 너무 쉽게 기억되고 매우 넓게 적용되며 아주 그럴싸해서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는 강력한 관점을 제공한다. (6쪽. 작가의 말에서)

 

이 말이면 된다.  이야기는 결국 우리 삶이다. 우리 삶이 풍부할수록 이야기 역시 풍부해진다. 풍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삶을 발견하게 되고, 그 다양한 삶 속에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효과가 큰 이야기는 짧은 이야기다. 짧지만 강력한 의미를 내뿜는 이야기. 그것도 무언가 비유가 있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래도록 전달이 되고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남는다.

 

짧은 이야기, 그 중에서 우화는 생명력이 길다. 고대의 이야기인 이솝 우화가 아직도 우리에게 살아남아 삶의 의미를 전해주듯이, 우화는 삶 곳곳에서 살아남아 있다.

 

그런데 제목이 "지금은 없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없는'이라는 말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니 예전에는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과거나 미래에는 존재할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존재할 것 같은 이야기... 이 책에 나오는 우화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야기의 결과는 암울하다. 강자에게 당하는 약자들이 이야기, 다양성을 살리지 못해 결국 자신을 잃어가는 이야기... 등등.

 

좋은 말, 긍정의 심리학이 넘쳐나고 힐링이 유행하는 이 시기에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세상은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그것이 지금은 없지만 미래에는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것을 우리 사회는 이래 하는 것이 아니라, 우화의 형식을 통해서 넌지시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의 힘이 미래에 나올 이야기를 미리 막을 수 있게 한다.

 

만화 형식과 짧은 이야기의 형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다. 하나하나의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조심하라고... 어쩌면 지금 이것이 우리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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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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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하면 오로지 단테만을 알고, 사상가라고 해야 기껏 마키아벨리라든가 그람시만 알고 있는데, 칼비노라는 이 작가는 처음 듣는 이름이고, 이 작가의 이 작품 역시 내게는 생소한 작품이다.

 

이런 생소한 작품을 골라든 이유는 단 하나. 정기용 때문이다. 정기용의 "사람, 건축, 도시"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이 상당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한 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는 셈.

 

그것도 건축학 책이 아닌 소설이라는데... 소설은 현실에서 있음직한 일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유토피아 소설과 디스토피아 소설들도 존재하고 있으니, 그가 작품 속에서 도시를 어떻게 형상화해내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다행히 책은 구하기 쉬웠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구비되어 있는 도서관이 많았기 때문.

 

책은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으로 잘 알려진 마르코 폴로와 원나라 세조라고 불리는 '쿠빌라이 칸'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여행해 온 도시들을 설명해주는 내용으로 작품이 이끌어져 가고 있다.

 

그런데 각 도시마다 제목을 달고 있는데 어떤 도시는 '기호'로, 어떤 도시는 '이름'을, '눈'을 '죽은 자들'을,  '하늘'을, '교환'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어떤 도시들은 '숨겨진'이나 '지속되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즉 온갖 도시들의 변주가 작품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데.. 지금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는 148~150쪽에 걸쳐 있는 '지속되는 도시들1'의 레오니아이다. 새로움을 위해서 날마다 나오는 쓰레기들을 처분해야 할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도시... 엄청난 쓰레기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 그렇게밖에 존재할 수 없는 도시. 그 도시가 바로 레오니아인데...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 또는 전세계의 대도시를 연상하게 하는데, 이 도시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르코 폴로는 이처럼 다양한 도시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칸은 이 도시들에 대해서 듣고 또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지도책을 보면서 수많은 도시들을 찾기도 한다. 이렇게 지도책을 넘기던 칸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칸이 말한다.

"최후의 상륙지가 지옥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지. 바로 그곳에서 강물이 나선형으로 점점 더 좁게 소용돌이치며 우리를 빨아들이고 말 테니." (207쪽)

 

칸은 수많은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결국 우리는 이런 도시들의 생활에서 지옥만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책을 한다. 인간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건설한 도시들이 인간의 삶을 옥죄고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급격히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농촌은 낙후된 곳, 그래서 농촌의 도시는 사라져야 할 도시라는 생각을 하였고, 사람들은 새로 생기는 도시로 모여들기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도는 상태에 불과했다.

 

어느 곳이 하나 하나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시는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도시들에게 길을 잃기도 하지만 결코 그 도시를 벗어나지 못함을... 그래서 칸은 결국 우리 인간이 도달하는 지점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마르코 폴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결국 지옥은 바로 이곳이 아니겠는가 하고. 칸이 아무리 화려한 도시, 화려한 왕궁에서 호사스러운 권력을 누리고 살지만, 칸이 살고 있는 이곳도 지옥에 다름 아니라고... 이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밖에 없다고. 

 

  그러자 폴로가 대답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207-208쪽)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은 지옥을 잊을 정도로 지옥에 침윤되어 버리던지... 아니면 지옥 속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어 그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던지... 그것밖에는 없다고 한다.

 

도시 속에 찌들어 살면서 다른 것을 보지도 생각지도 않고 그 때 그 때 시간에 쫓기듯, 또 공간에 쫓기듯 살면 그건 첫 번째 해결방법을 택한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관조를 통해 자신의 위치와 다른 것들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면 두 번째 방법을 책한 것이 되리라.

 

그리고 우리가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는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대한 답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 없다. 그래서 작가는 폴로의 마지막 말로 작품을 맺고 있는 것이다.

 

정기용으로 인해서 읽게 된 책인데... 순식간에 읽힌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읽는 재미도 있고, 또 여기에 나온 도시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어느 도시와 연결이 되나를 생각해 보는 재미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정말로 우리가 살고자 하는 도시는 '보이지 않는 도시'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도시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라는 의미를 전달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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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라파엘 보넬리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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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안톤 슈낙의 수필이 생각나는 제목이다.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이. 떨어지는 낙엽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절없이 떨어져버린  수많은 목숨들이, 특히 어린 목숨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직도 생사를 알 수 없는 그들이 나를 슬프게 하고, 나를 지치게 한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지치게 하고, 총체적인 무능을 드러내는 정권의 대응이 나를 지치게 한다. 정말로 지치게 한다.

 

더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책임에 대해서 남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는 책임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양, 오로지 잘못은 밑에서 소수의 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무책임에서 도래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즉 권리가 많아질수록 책임도 많아짐을 생각하지 못하는 그들이 나를 무척 지치게 한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이 책대로 한다면 이렇게 고위층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도 책임전가에 불과하다. 결국 나를 지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즉, 내가 나를 지치게 하고 있다. 나 역시 책임이 있음을 인식해야만 하는데...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그래, 최소한 내 책임은 인정하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이것이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세상이 더럽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를 오해해도 내가 지치지 않는 방법은 바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나를 바로 보는 것. 모든 일의 일차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 그래서 나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거리를 두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요소가 바로 유머다.

 

유머, 웃음, 이 웃음은 작동이 되는 순간 나를 나에게서 거리를 두게 한다. 나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한다. 이렇게 거리가 두어진 나... 여기서부터 출발한다면 나를 지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는 마련한 것이리라.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이 내 행동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배-가슴-머리'라는 사실이다. 배는 본능이라고 한다면 배에 중점을 두는 행동은 나에게서 거리를 두지 못하는 행동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머리에 중점을 두면 머리는 이성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감정이 배제된다.

 

감정이 배제된 행동은 합리적일지는 몰라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즉 머리에만 집중을 하면 나는 더욱 지치게 된다. 아니, 나는 지치지 않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을 매우 지치게 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지친다면 결국 그 피곤함은 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가슴이다. 이 가슴은 배와 머리를 종합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가슴에 중점을 두는 생각, 생활을 해야 한다. 이렇게 가슴에 중점을 두는 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나를 지치게 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용서는 내 삶을 행복하게 복원해주는 힘을 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은 복원력을 향상시킨다." (356쪽)

 

이 때 복원력은 오뚜기에 비교하면 오뚜기의 탄력성이다. 이러저리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고 곧 중심을 잡는 탄력성... 이를 심리학에서는 '안정성'이라고 한다는데...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배로 따지면 '복원력'이다.

 

이런 탄력성, 안정성, 복원력이 확보된 삶은 행복은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지닌 사람은 남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용서할 수 있다. 이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집착은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나타나니, 집착을 벗어난 삶. 그것이 바로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이 책은 이런 방법에 대해서 많은 사례들을 통하여 이야기해주고 있다. 심리학 책을 읽는 이유는 이것이지 않을까. 단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그 점에서 이 책은 나에 대해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내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힘들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해도... 문제는 늘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 나를 직시하고 나를 언제든지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는 탄력성을 확보하는 일, 그래서 웃음부터 시작하는 일... 이 책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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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건축 도시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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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정기용 전집이다. 사실 순서가 바뀌었다. "서울이야기"가 2권이고, 이 책이 1권이라는데 서울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순서를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역시 전집은 순서를 정한 이유가 있다. 차라리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서울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훨씬 더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충격과 전율, 공포 그리고 희망"이라고 하겠다.

 

우선 충격이다. 이런 건축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렇게 사람과 건축과 자연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건축이론을 지니고 또 실행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보아도 다 똑같은 건축물들 아니던가.

 

가령, 병원은 다 똑같은 모양이고, 조금만 큰 도시를 가면 거주지역은 모두 고층아파트이고, 교회들은 신도가 좀 생겼다 하면 거대화를 추구하고, 학교는 그야말로 말할 것도 없이 천편일률적이고, 관공서들의 모양새도 거의 같고...

 

그런데 이 같음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쳐도 여기서 같음이라는 말은 하나같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돌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독불장군. 그냥 자신만이 잘났다는 듯이 우뚝 서 있는 건물들, 그래서 건축이 사람과 자연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 닮았다는 얘기다.

 

이런 파괴의 동일성에 대한 단조로움을 거부하고 사람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주장하고, 그런 건축을 무주에 실현시킨(이 책의 뒷부분에 약간 나온다. 그리고 더한 설명은 강내희 교수의 해설에서 잘 이야기되고 있다) 건축가, 강내희의 말에 의하면 '공간의 시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축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 충격이 자연스레 전율로 나아간다. 우리도 이렇듯 자랑할 수 있는 건축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온몸이 짜릿해진다. 건축 후진국이 아니구나.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모두 토목만을 또는 정기용의 용어로 하면 건설만을 주장하지는 않았구나, 내가 너무 편협했구나! 하는 전율.

 

우리도 좋은 건축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기쁨. 정기용이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서양 건축을 모범으로 삼을 필요없이 우리나라 생활에서 함께 했던 건축들을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런 정기용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우리나라 건축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전율케 했다.

 

충분한 가능성. 지금의 난개발, 막개발에서 사람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는, 그런 건축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그것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전집 출간을 책임진 홍성태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정기용을 '감응의 건축가''사회적 건축가'라고 부른다. 건축이 건축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와 어울릴 때 비로소 건축이 될 수 있음을 정기용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기에 이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리라.

 

이럼에도 충격과 전율이 곧 공포로 바뀌고 말았는데... 읽다가 기분 좋게 그렇지, 건축은 이래야 하지, 우리도 충분히 이런 건축을 할 수 있어 하다가, 용산 참사, 4대강 사업, 밀양 송전탑 등등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비무장지대를 개발지대로 바꿀지도 모른다고 정기용은 걱정을 했는데, 제발 비무장지대는 그냥 놓아두라고, 그냥 놓아두는 것이 가장 좋은 기념비라고 역설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냥 놓아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가 이 책에서 대학들이 얼마나 건축적으로 못된 짓을 하는지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실정이니, 건축과가 있는 대학조차도 그런데 다른 곳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니 공포심이 밀려올 수밖에.

 

그러나 이런 공포는 극복되어야 한다. 막개발에 대한 사회적 반대가 공감을 얻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 사람을 생각하는 건축,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공감대 형성에 정기용이 기여한 바가 많으리라. 그가 무주에서 한 프로젝트는 사람도 자연도 건축도 놓치지 않은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전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게 할 테니 말이다.

 

하여 그는 말한다. 건축은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니, 건축은 예전의 것 위에서 그 시대에 맞게, 그 사회에 맞게, 그 사람들에 맞게 차이를 변주해내야 하는 것일테다.

 

그렇다. 건축은 문이다. 문은 안과 밖을 나눈다. 경계를 보여주지만 문은 닫혀 있지만은 않는다.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문은 사적은 공간과 공적인 공간, 인간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을 구획지어주지만 또한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막바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박자 쉬고 연결하게 하는 역할, 그것이 문이다. 그렇다면 건축은 바로 사람들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나누는 역할을 하지만, 또한 사람들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연결짓는 역할도 한다. 마치 문이 하는 역할처럼.

 

하여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인간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게 할 수 있는 작업, 그것이 바로 건축이 된다. 바로 이런 건축이 존재하는 장소, 그곳이 바로 도시여야 한다고 정기용은 주장하고, 자신이 바로 이런 건축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는 '공간의 시인이자 감응의 건축가이고 사회적 건축가'이다.

 

이 책 어느 내용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마음에 와닿고,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정기용도 지적하고 있듯이 건축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건축가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에서 건축을 통해서 바뀐 세상을 미리 보여줄 수는 있다.

 

우리도 건축가와 마찬가지다. 우리 개개인이 한 방에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자가가 서 있는 자리에서 미래에 이래야 하는 모습을 미리 구현하고 있다면 물방울 하나하나가 언젠가는 바위를 뚫듯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희망을 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마지막으로 지닌 감정은 희망이다. 충격과 전율, 공포를 지나 이제는 희망으로... 이런 것을 보여준 정기용, 정말 고마운 건축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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