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건축 도시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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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정기용 전집이다. 사실 순서가 바뀌었다. "서울이야기"가 2권이고, 이 책이 1권이라는데 서울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순서를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역시 전집은 순서를 정한 이유가 있다. 차라리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서울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훨씬 더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 책을 읽은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충격과 전율, 공포 그리고 희망"이라고 하겠다.

 

우선 충격이다. 이런 건축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렇게 사람과 건축과 자연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건축이론을 지니고 또 실행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보아도 다 똑같은 건축물들 아니던가.

 

가령, 병원은 다 똑같은 모양이고, 조금만 큰 도시를 가면 거주지역은 모두 고층아파트이고, 교회들은 신도가 좀 생겼다 하면 거대화를 추구하고, 학교는 그야말로 말할 것도 없이 천편일률적이고, 관공서들의 모양새도 거의 같고...

 

그런데 이 같음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쳐도 여기서 같음이라는 말은 하나같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돌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독불장군. 그냥 자신만이 잘났다는 듯이 우뚝 서 있는 건물들, 그래서 건축이 사람과 자연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 닮았다는 얘기다.

 

이런 파괴의 동일성에 대한 단조로움을 거부하고 사람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주장하고, 그런 건축을 무주에 실현시킨(이 책의 뒷부분에 약간 나온다. 그리고 더한 설명은 강내희 교수의 해설에서 잘 이야기되고 있다) 건축가, 강내희의 말에 의하면 '공간의 시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축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 충격이 자연스레 전율로 나아간다. 우리도 이렇듯 자랑할 수 있는 건축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온몸이 짜릿해진다. 건축 후진국이 아니구나.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모두 토목만을 또는 정기용의 용어로 하면 건설만을 주장하지는 않았구나, 내가 너무 편협했구나! 하는 전율.

 

우리도 좋은 건축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기쁨. 정기용이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서양 건축을 모범으로 삼을 필요없이 우리나라 생활에서 함께 했던 건축들을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런 정기용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우리나라 건축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전율케 했다.

 

충분한 가능성. 지금의 난개발, 막개발에서 사람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는, 그런 건축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그것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전집 출간을 책임진 홍성태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정기용을 '감응의 건축가''사회적 건축가'라고 부른다. 건축이 건축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와 어울릴 때 비로소 건축이 될 수 있음을 정기용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기에 이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리라.

 

이럼에도 충격과 전율이 곧 공포로 바뀌고 말았는데... 읽다가 기분 좋게 그렇지, 건축은 이래야 하지, 우리도 충분히 이런 건축을 할 수 있어 하다가, 용산 참사, 4대강 사업, 밀양 송전탑 등등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비무장지대를 개발지대로 바꿀지도 모른다고 정기용은 걱정을 했는데, 제발 비무장지대는 그냥 놓아두라고, 그냥 놓아두는 것이 가장 좋은 기념비라고 역설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냥 놓아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가 이 책에서 대학들이 얼마나 건축적으로 못된 짓을 하는지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실정이니, 건축과가 있는 대학조차도 그런데 다른 곳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니 공포심이 밀려올 수밖에.

 

그러나 이런 공포는 극복되어야 한다. 막개발에 대한 사회적 반대가 공감을 얻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 사람을 생각하는 건축,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공감대 형성에 정기용이 기여한 바가 많으리라. 그가 무주에서 한 프로젝트는 사람도 자연도 건축도 놓치지 않은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전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게 할 테니 말이다.

 

하여 그는 말한다. 건축은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니, 건축은 예전의 것 위에서 그 시대에 맞게, 그 사회에 맞게, 그 사람들에 맞게 차이를 변주해내야 하는 것일테다.

 

그렇다. 건축은 문이다. 문은 안과 밖을 나눈다. 경계를 보여주지만 문은 닫혀 있지만은 않는다.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문은 사적은 공간과 공적인 공간, 인간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을 구획지어주지만 또한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막바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박자 쉬고 연결하게 하는 역할, 그것이 문이다. 그렇다면 건축은 바로 사람들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나누는 역할을 하지만, 또한 사람들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연결짓는 역할도 한다. 마치 문이 하는 역할처럼.

 

하여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인간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게 할 수 있는 작업, 그것이 바로 건축이 된다. 바로 이런 건축이 존재하는 장소, 그곳이 바로 도시여야 한다고 정기용은 주장하고, 자신이 바로 이런 건축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는 '공간의 시인이자 감응의 건축가이고 사회적 건축가'이다.

 

이 책 어느 내용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마음에 와닿고,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정기용도 지적하고 있듯이 건축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건축가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에서 건축을 통해서 바뀐 세상을 미리 보여줄 수는 있다.

 

우리도 건축가와 마찬가지다. 우리 개개인이 한 방에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자가가 서 있는 자리에서 미래에 이래야 하는 모습을 미리 구현하고 있다면 물방울 하나하나가 언젠가는 바위를 뚫듯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희망을 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마지막으로 지닌 감정은 희망이다. 충격과 전율, 공포를 지나 이제는 희망으로... 이런 것을 보여준 정기용, 정말 고마운 건축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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