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 언제 어디서나 시간이 나면, 눈이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해 책을 습관적으로 펼치게 된다. 눈은 늘 무언가를 보고 있어야 하는데, 특히 글자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 진다. 그러니 잠시 짬이라도 나면 책을 펼치게 된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 종이책을 읽는다. 손으로 종이를 만지며 넘기는 감촉, 책 한권을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책에다 형형색색의 색연필로 자를 대고 밑줄을 그었는데, 어느 순간 다른 사람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밑줄은 긋지 않는다. 그냥 깨끗하게 읽으려 노력한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 없다. 자기 전까지 읽고 잘 때는 다음 날 찾기 좋은 데 놓아두기 때문에 침대 머리 맡에 책이 놓여 있을 수가 없다.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 장르별로 정리를 하는 편인데, 주로 십진분류표를 응용해 나름대로 서가에 배열을 하는 편이다. 다만, 100번부터 900번까지 순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주 보는 장르의 책부터 가까운 곳에, 그리고 가장 잘 안 보는 장르의 책은 가장 꺼내기 어려운 곳에.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 어렸을 때는 세계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 특히 계림문고라는 이름이 붙은 책들을 십대에 읽었고, 20대 에는 사회과학 서적들을 주로 읽었다. 그 중에 가장 좋아했던 책을 고르라면 선택하기가 참 힘든데... 아마도 괴도 루팡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다. 홈즈와 루팡의 대결에서 루팡이 이기기를 그리도 바랐으니...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 평범한 책들이라 그리 놀랄 만한 책은 없다. 책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읽으려고 사기 때문이다. 다만 아주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한국문화사대계1권-문화, 예술 편˝은 좋다. 조지훈이 썼다고 하는데... 아주 옛날 것이라 잘못 넘기면 종이가 바스러질 것 같은 그런 책이라.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 그의 헤게모니 이론은 지금도 유용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 시대에 그의 이론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 그의 문학에 대하여 묻고 싶다.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 동양 고전인 ˝춘추좌전˝은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 이상하게 보르헤스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 중 ˝픽션들˝을 사놓고 몇 장 읽다가 덮고, 다시 도전했다가 덮고,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 불경 중에서 ˝금강경˝, ˝성경˝ 그리고 빈 책. (이 빈 책은 내가 써야 할 책. 책의 소비에서 생산으로 나아가게 하는 책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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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 개정판
조이담.박태원 지음 / 바람구두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서울을 이토록 문학적으로 잘 드러낸 작품이 있을까? 서울을 걸으면서 서울을 드러낸 주인공으로 우리는 '구보'를 잊을 수가 없다. 이 '구보'는 세월이 흘러도 우리 곁으로 다가와 또 다른 '구보'로 살아 있게 된다.

 

일제시대에 박태원의 '구보'가 있었다면, 1960-70년대에는 최인훈의 '구보'가 있었고, 1990년대에는 주인석의 '구보'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문학 작품 속에 '구보'로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수많은 '구보들'이 있고, 이 '구보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아니, 바로 내가 '구보'가 될 수 있다. '구보'가 되어야 한다. 또 '구보'가 꼭 서울에만 있을 필요는 없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산책하면서 그곳을 드러내면 그 사람이 바로 '구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구보'다. '구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소'로 바꾸는 일이다. 

 

이런 '구보'를 최초로 창조한 박태원. 그가 남북이 갈린 다음 북한에서 시력을 잃었음에도 구술을 통해 소설을 (갑오농민전쟁) 집필했음이 알려져 있는데... 모더니스트였던 그가 리얼리스트로 생을 마감했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신 박태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박태원에 관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태원의 일생을 다루지 않고 그의 '구보'가 탄생하기 직전까지를 '팩션'의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사실에 기반하되, 세세한 상황묘사는 허구적으로 꾸며내는. 그래서 박태원에 대해서 더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서술방식이다.

 

이 부분에서 박태원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넷이 나온다. 하나는 숙부인 박용남, 숙부가 아끼는 제자인 한위건, 또 고모가 아끼던 제자 이덕요 (한위건과 이덕요는 나중에 부부가 된다), 그리고 춘원 이광수다.

 

어린 시절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중에 박태원을 문학으로 이끈 사람이 이광수라 할 수 있는데 (그가 박태원을 등단시켜주었다고 이 책에 나와 있다), 박태원을 문학에 관심을 갖고 그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이덕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공산주의자가 되는 한위건은 나중에 박태원이 북쪽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도 하고.

 

이렇게 어린 시절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집안의 가업이라 할 수 있는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나아가, 결국 '구보'를 창조하는 장면까지가 그의 새로운 전기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은 이제 본격적으로 경성(서울)을 돌아다니는 '구보'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원문을 장면장면으로 나누어 다 실어놓고, 그 장면장면에 해당하는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말처럼 원소설보다 해설이 더 긴 편집인데... 어쩌면 '천천히 읽기(슬로 리딩)'를 하는데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해설이(주석이라고 해도 좋다) 잘 되어 있다.

 

이런 해설을 중심으로 더 심화 확장하면 이 짧은 단편소설을 가지고도 한 해 넉넉하게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사회, 문화, 역사, 지리, 문학과 더불어 음악, 미술. 여기에 함께 했던 문학인들까지. 특히 김기림과 이상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공부할 필요도 있으니...

 

1930년대 서울을 산책하는 '구보'를 통해, 그는 그 당시 현재를 탄구하는 '고현학'이라는 말을 썼지만, 구보가 사용한 '고현학'이 작품을 읽는 우리에게는 '고고학'이 되었으니, 어쩌면 이 책은 고현학으로 고고학 하기가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을 걸으며 30년대 '구보'가 걷던 서울을 느끼고, 비교하면 이보다 더한 문학체험은 없을 듯하다.

 

도시를 걷는 '구보'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하게 한 책. 우리 모두 '구보'가 되자.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나와 동떨어진 공간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내가 속한 '장소'가 될 것이다.

 

덧글

 

어라, 이 책 품절이라고 뜬다.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이 책 읽으며 서울을 산책하면 좋을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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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104호를 받아들고 읽어가다. 읽어가면서 마음이 아픈 내용들을 많이 만나다. 왜 요즘은 이렇게 글들이 마음을 아프게 할까?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아픈 것일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다.

 

"민들레"가 포괄적인 교육을 생각하는 잡지라고 할 수 있으니, 봄에 나오는 "민들레"에서 세월호를 빗겨갈 수가 없다. 아니, 늘 4월이면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하여 이번 호 특집은 '세월을 살다'다. 세월호로 인해 우리 생활이 많이 변했는데... 언론이라는 것이 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월호 집회를 거의 다뤄주지 않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민들레"를 읽으니 독일에서도 세월호에 관한 집회가 2년에 걸쳐 계속 일어나고 있음을, 이렇게 외국에 사는 사람들도 세월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국가에서는, 정부에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재외 국민들도 포기할 수 없다고, 자기들이라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어 세월호에 얽힌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그렇다. 세월을 살다는 세월호를 잊지 않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노력을 하겠다는,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발로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두 해가 지나고 있는데, 아직도 밝혀진 것은 없다. 모두가 다 어두컴컴한 바닷속처럼 어둠 속에 묻혀 있다. 그러므로 어둠을 비춰줄 빛이 있어야 한다. 그런 빛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 세월호 희생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학생들, 세월호로 인해 사회를 보는 눈이 바뀐 사람들 등등

 

이들이 하나의 빛이 되고 있다. 이 빛들이 모여 세월호를 어둠 속에서 끌어낼 것이다. 그래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할 것이다. 아니면 이들은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그들 하나하나가 빛이 되어 계속 밝히고 있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라고.

 

이 책이 교육에 관한 잡지이기 때문에 이렇게 세월호로 인해서 변화가 일어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이들 놀이터 문제를 꾸준히 다루고 있고, 육아에 대해서도 학교에 대해서도 꾸준히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번 호에 실린 '복불복 교실'이라는 글, 짠하게 다가왔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교실의 모습이구나. 정규직이라고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교사들의 본모습이구나 하는 생각. 참, 마음이 아픈 글이었는데...

 

이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교사 혼자 좋은 교실을 만들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소한 흠결만 보여도 바로 교사를 아웃시켜버리는 부모들과, 그런 부모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 곁에서 교사는 작디 작은 직장인일 뿐이다.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우리 교육은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 양영희, <복불복 교실>에서. 이 책 167쪽.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교사가 이렇게 무너지는데 어찌 교실이 온전하겠는가. 복불복 교실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교실 붕괴가 내포되어 있고, 교실이 무너지면 교육 역시 무너지는데...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 아니 예의도 없는 교실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이런 상황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기에 교실의 무너짐이 사회의 무너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바로 세월호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번 호다. 마음은 아프지만 생각은 해야 한다. 머리에서 발까지가 가장 먼 여행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머리에서 시작도 안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머리에서부터라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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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에 담긴 그 도시의 다리
이종세 지음 / 대한토목학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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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홀로 떨어져 있을 수가 없음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다리라는 건축물을 그림을 통해서 접근을 하다니.

 

그것도 미술대학이 아니라 건축대학에서 건축에 대한 공부로 그림에 나타난 다리를 예시로 수업을 하다니. 이런 발상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

 

그림에 나타는 다리들은 하나같이 예술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단지 그림 속에 있어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실용을 넘어선 예술로서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속에 나타난 그 다리의 역사, 아름다움, 그리고 건축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등을 무려 28개의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 다리가 중심을 차지하기도 하고, 주변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다리 역시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름다운 풍경, 그런 풍경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와 강과 다시 도시를 잇는 다리, 이것들이 모여 하나의 풍광을 이룬다.

 

그래서 다리는 단지 실용성에 머물면 안된다. 지금 우리나라 한강 다리라든지, 여러 도시의 다리들을 보면 건네준다는 필요말고도 야경이라든가, 아니면 그곳에 휴식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풍경을 감상하면서 쉴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다리를 그냥 건축물로서가 아니라 예술로서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서양 그림에 나타난 다리들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분명 이런 다리가 나타난 그림들이 있을텐데, 우리나라 그림에 나타난 다리를 통해 우리나라 다리와 미술의 융합을 이야기해주는 책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다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나 문학작품이 꽤 있을테니 말이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해도 김만중의 "구운몽"이 떠오르는데, 성진이 8선녀을 만나는 곳이 다리니까 말이다.

 

여기에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건널 수 없는 다리'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다리들이 많으니, 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책도 기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명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 또 처음 보는 그림들도 있었지만 그림을 보면서 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따.

 

건축과 미술의 융합, 또 다리라는 특정한 요소를 통해 인간과 자연, 도시와 자연을 이어주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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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나들이 10

       - 돌아오며


3박 4일의 교토여행

첫일본 나들이

그러나 지문까지 찍으며

간 그 길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자세히 알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그것은

관광객의 눈이 아니라

정주민의 눈으로 보아야 함을

하여 겉으로 보이는 깨끗함 속에

그들의 치열함이 있음을

그들의 상냥함 속에는 자부심이 있음을

가깝고도 먼 나라

싸우고 욕하고 그러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임을

마음 속에 담으며 돌아온

교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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