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다른 존재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같은 존재인 것들이 있다. 겉모습이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

 

  사람들 역시 그렇지 않은가. 겉모습이 다 다르지만 사람이라는 보편성에서는 공통점이 있고,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거울효과... 사람들은 바로 자신이다. 다른 자신. 딱부러지게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신을 누구라고,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정의하기 힘든 나라는 존재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존재할 수 있다.

 

겉모습이 다를지라도. 최명란 시집을 읽다가 '불가분의 관계'란 시를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를 생각했다. 시에 나오는 나무와 종이처럼 사람들과 나도 그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을까.

 

아무리 인간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존재라고 해도, 홀로 오기 전에 이미 다른 존재들의 관계를 통해서 오게 되었고, 홀로 갈 때도 역시 홀로가 아니라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다.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불가분의 관계

 

마른나무 박스에 딱 붙은 종이를 떼어낸다

찢기고 뜯겨도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몸을 포갠 둘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하 - 나무와 종이는 애초 한 몸이었지

마른나무에 달라붙은 종이의 마지막은

같은 결의 한 몸을 만나는 일이었지

종이는 나무가 살아 있을 때를 기억한다

둘 사이에 바다로 가는 산물이 지난다

그 사이 물든 산 빛과 깊은 산의 숨소리가 들린다

저녁 창으로 함께 바라보았던 가을빛 노을이 흐르고

성장을 온몸으로 기록한 역사가 보인다

나무의 일생이 보인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떼어놓을 수 없는

떨어질 수 없는,

 

최명란, 이별의 메뉴. 현대시학. 2016년 초판. 49쪽.

 

이렇게 종이와 나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렇게... 다른 존재로 지내왔지만, 마지막에는 같은 존재로 함께 하게 된다.

 

우리 사람들, 서로 다른 존재지만, 우리는 하나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서로를 비추는 존재로, 서로를 지탱해주는 존재로,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종이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듯이 사람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으니, 어찌 다른 사람들을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만큼 소중한 존재들, 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그렇게 사람들을 다시 내 안으로 불러오게 된다.

 

사람들이 바로 나임을,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이 되어야 함을, 우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이 시를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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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
성석제 외 지음 / 엉터리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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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이라고 인사를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 남북 정상들이 자주 만나고... 벌써 두 번, 이번에 또 만날 예정이니 한 해에 세 번 만나는 것. 여기에 남북연락사무소까지 생기니...

 

"안녕! 평양, 안녕, 서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평양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마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무진이라는 마을처럼. 짙은 안개에 쌓여 잘 보이지 않는다.

 

평양에 관한 소식들, 모습들은 여전히 안개에 갇힌 듯 흐릿하게 전해 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양을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이라는 나라를 연전히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수많은 제재를 하기 때문에 북한 역시 개방이 덜 되어 있는 때문이기도 하리라.

 

이제 서서히 안개는 걷히리라. 해가 떠오르면 안개는 사라지게 마련이니. 이렇게 남북 정상들이 자주 만나고, 또 다른 교류들이 이루어진다면 평양이 좀더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이 소설집 역시 마찬가지다. 평양을 가리고 있는 안개를 걷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안녕, 평양'이라고...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쓴 소설 여섯 편을 모았다. 각자 다른 작가들이 다른 관점에서 남북간의 관계, 아니 남한과 북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나라를 구성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읽는 것은 둘 사이를 가리고 있는 장막들을 걷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월남한 작가 중에 이호철이 있었다. 그가 쓴 소설 "남녘 사람 북녁 사람"이란 소설에서도 이념보다는 사람을 먼저 했었는데... 이 소설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 이야기를 한다.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분단을 어떻게 겪고 있는지,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한 발 나아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공선옥이 쓴 소설 '세상에 그런 곳은'은 여전히 힘든 현실을 이야기한다. 남한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해고노동자와 북한에서 왔지만 여전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탈북자를 등장시킨다. 둘이 만나기도 하지만 소통은 하지 못한다. 그렇다.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현실이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 민중의 현실이다. 이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유대하게 만든다. 비록 둘이 다른 곳에 서서 시위를 했을지라도 이들은 만나야만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게 북한과 남한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

 

김태용이 쓴 '옥미의 여름'은 가상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남한 기자가 북한 과학자를 취재한다. 취재할 수 있다는 것. 어느 정도 제한은 있지만 이렇게라도 소통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은둔한 모습을 보이는 북한 천재 과학자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 그런 공통점으로 인해 이념보다는, 체제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성적제가 쓴 '매달리다'는 북한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 기관원들은 잠깐 등장한다. 북방한계선을 넘어가 고초를 겪게 되는 어부들 이야기. 조작된 어부 간첩단 사건... 그러나 그 사람들이 겪게 될 비극, 가족이 당해야 했던 아픔, 당사자가 끝내 그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는 비극적인 모습을 통해서 통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분단이 보통사람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용준 '나이트 버스'는 명확하지 않다. 남북관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서 지금 남북관계는 피곤에 절은 버스 승객들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비록 남북이 힘들지만 오늘만은 관광에 집중하자고 말한 윤 선생 말처럼,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지만 남북이 직면한 현실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트 버스, 나이스'라고.

 

이승민이 쓴 '연분희 애정사'는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 인물들을 남북으로 치환하면 될 듯하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둘이 만나지 않는 것은 이 다른 관점이 지속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둘은 만나야 한다. 비록 함께 하다가 탈북을 해서 떨어져 있지만, 이들은 만나서 공통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아니 우리가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사실에서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증오만을 남길 뿐이다.

 

마지막 소설은 '샌프란시스코 사우나'다. 평양 여경찰을 사랑했던 사람의 이야기. 그러나 함께 할 수는 없었던. 그렇다. 이렇게 남북한은 아직은 함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미친 빨갱이'라는 말은 이제 하지 않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존재에게 '미친 빨갱이'라고 욕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낙인찍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그 낙인을 던져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남북 사이에 깔려 있는 안개가 걷힐 수 있다.

 

안개를 걷고 만나야 한다. 그런 노력들을 해야 한다. 이 소설집 또한 안개를 걷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념이나 체제를 다루지 않고 사람을 다룸으로써.

 

앞으로는 이 소설집에서 한발 더 나아간 소설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우리에게 안개가 걷힌 평양을 보여주는 소설들... 그래서 담담하게 "안녕! 평양!"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소설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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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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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의로운 교육이란 무엇인가 - 평범한 교실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현장 교사들 이야기
코니 노스 지음, 박여진 옮김 / 이매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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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존재가 교사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교사를 정의하면 인공지능이 대세인 미래 시대에서 교사란 직업은 없어져야만 하리라.

 

그러나 교사는 단순한 지식만을 전달하는 전달자가 아니다. 교사는 삶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다. 교과서는 그런 삶에 대한 교육을 하는 수단일 뿐이다.

 

교과서만 맹신하고, 오로지 대학만을 위해 공부하며, 학교에서 정치 교육을 하면 안 되고,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하지도 못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인공지능이 교사로서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그렇게 우리나라 교육이 흘러왔고, 이번 정권에서도 교육개혁은 물 건너 갔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전인교육, 민주교육 말로는 떠들어대지만 내용으로 파고들어가면 대학을 정점에 두고 대학에 진학하게 하는 교육밖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정치 없이 민주교육이 불가능한데도, 마치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다. 또한 토론을 하라고 하면서 토론을 할 여건을 전혀 마련해 주지 않고 있으니...

 

이 책 '정의로운 교육이란 무엇인가'에도 이런 문제점이 나온다. 여러 학교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들 이야기인데...

 

이를 '기능적 문해, 비판적 문해, 관계적 문해, 민주적 문해, 통찰적 문해'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문해를 이해능력이라고 단순하게 말하면 이 책은 순차적으로 이러한 문해의 단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학생들이 사회를 통찰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을 하는 것, 그런 교육이 이루어질 때 사회정의를 이룰 수 있는 교육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찰적 문해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이해능력인 기능적 문해도 중요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사실, 비판적이든 관계적이든 민주적이든 기본적인 이해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 교육 환경은 좋지 않다. 이들이 마음 놓고 교육을 하지도 못한다. 또한 학생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학생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지만 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교사, 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정의로운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교사들이 있다. 이런 교사들로 인해 암담한 교육환경이지만 한줄기 빛을 발견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숨 쉴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들만의 힘으로 정의로운 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환경의 변화가 함께 해야 한다. 이런 교사들의 노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환경의 변화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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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성 할머니들의 시다.

 

  시골 할머니들이 살아온 삶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가난과 시집살이, 그리고 남편의 바람.

 

  시에 이런 것들이 잘 드러나 있다. 과거에 할머니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인간이라기보다는 집안에서 일을 하는 머슴처럼 살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들...

 

  이런 할머니들의 삶을 시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아니 그냥 삶이 시가 되고 있다.

 

  여기에 꾸미거나 덧붙이거나 한 말은 없다.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 시가 된다.

 

평생 노동을 한 할머니의 모습, 삭신이 쑤시는 할머니의 모습. 이 시를 통헤 알 수 있다.

 

산중의 밤

- 도귀례

 

늙은께 삐다구가 다 아픈지

한발짝이라도 덜 걸어올라고

왈칵 밤이 내려와 앉는갑다.

 

김막동 외, 시집살이 詩집살이. 2016년. 북극곰. 69쪽.

 

 

한편 한편 읽어가면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서 예전에 우리나라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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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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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지만,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더불어 살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다는 말, 나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와 남이 똑같아도 갈등이 있을텐데, 나와 다른 남과 함께 살아가야 하니 어찌 갈등이 없을 수 있을까?

 

페미니즘은,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이런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갈등을 인정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접점을 찾아가자는 운동이다.

 

다르니까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름에도 함께 하자는 것, 나하고 똑같은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서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야말로 우리들이 꿈꾸는 대동세상이다. 대동세상이 뭔가. 모두가 똑같자는 것이 아니라 큰 부분에서 같자는 것이다. 소이(小異)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이다.

 

가끔 페미니즘을 한다는 사람들이 과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기고 노여워해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사회 안정을 해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은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고 이 기득권 속에서 편안하게만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왜 저런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존재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지내야 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일부러가 아니라 그들은 정말로 모를 수가 있다. 편안함 속에 푹 빠져 살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 삶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페미니즘을 괘씸하다고 하고 그들에게 노여워 한다.

 

이 책을 쓴 홍승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족에게 가했던 폭력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딱히 이 분의 잘못이라고만 하기엔 문제가 있다. 사회가 그런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홍승은의 아버지 역시 자신은 보통 아버지와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 이런 환경에 균열을 내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그래서 억압받고 피해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대동(大同) 세상이 꼭 다 같다는 것이 아니라 소이(小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운동이다.

 

조금 다름이 있다는 것, 사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조금 다름이 아주 크게 다름으로 인식되고 차별을 받았는데, 크게 다름은 많이들 깨달았다면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조금 다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이 책은 그렇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차이를 차별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불편하다.

 

불편함을 생각하게 된다. 불편함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낯설게 본다는 것이다. 낯설게 볼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불편해야 한다. 이 책 제목처럼 우리는 계속 불편해야 한다.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려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편안함을 만든다.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 불편함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불편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드러낼 때 사회 전체적으로 불편함이 줄어들게 된다. 그런 노력을 다른 존재들이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말 하나 행동 하나 정말 조심해야 하겠다는 것, 내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우리 조금씩 서로 불편하자. 내 조금의 불편함이 사회 전체적으로 편안함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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