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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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리는 "신곡"을 읽는다. 대충 줄거리는 아는, 그렇지만 제대로 읽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그런 작품.

 

단테와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작품이다. 이제 어느 정도 세월이 흘렀고,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로 한다.

 

고전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요즘 세상이 과연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까 하는 생각. 너무도 많은 종교들이 있음에도 왜 세상은 갈등으로 넘쳐날까 하는 생각에...

 

중세시대 종교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작품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나 할까? 스웨덴의 스베덴보리가 쓴 "천국과 지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단테 작품은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다들 인정하고 있으니, 별 논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먼저 지옥편을 읽는다. 지옥편을 읽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지옥에서부터 연옥을 거쳐 천국에 올라가면 상승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테가 이런 순으로 책을 썼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순으로 출판이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한다) 때문이다.

 

지옥... 사람이라면 누구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일 것이다.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면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하겠지.

 

종교들은 대부분 사후 세계를 인정하고, 사후 세계가 지금 살고 있는 기간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일 거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야 할 세계에서 불행하고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지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짧은 이 현세의 삶에서 제대로 살아야 죽어서 긴 세월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기 위해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현세에서 잘 살라고 지옥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결국 지옥이야기는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 권세가 있다고, 돈이 있다고, 명예가 있다고, 사랑을 받고 있다고, 죽어서도 그럴까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것이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도움을 받아 지옥을 여행한다. 베르길리우스 역시 천국에 있지 않다. 그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 사람들, 기독교를 믿고 싶어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믿을 수 없었던 사람들. 이 사람들도 지옥에 있다.

 

물론 가장 낮은 단계의 지옥이고 이들은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이게 중세 시대 사람들이 지닌 인식이다. 그리스도가 나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 그렇다고 이들이 착하게 살았으면 천국에 갔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면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기에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옥에 영원히 떨어져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이들은 그리스도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협한 부분이 바로 지옥의 첫번째 단계에 있다는 것.

 

이미 그 전에 죽었기에 지옥에 있지만 이들은 이 지옥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반대로 교황이나 추기경, 수도사, 왕들은 어떤가? 비리, 배신, 음모 등을 일삼았다면 이들이라고 해도 지옥에 있을 수밖에 없다.

 

 

1300년대 시작. 단테가 살던 시대. 이미 그 시대에 신앙의 힘은 많이 약해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으로 교황이나 추기경, 수도사들이 지옥에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냥 이 직위에 있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서술,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느님을 믿는 순간 천국에 간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 천국에 가는 것은 믿음을 선언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실천하는 데 있는 것이다.

 

진정한 종교인은 말로 존재하지 않고 행동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단테가 지옥편에서 보여주는 종교관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배신을 일삼은 사람, 아첨만 한 사람 등은 지옥에 있다. 당연한 일이다.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정치인들, 신곡 - 지옥편을 읽을 일이다.

 

단테가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지옥편에서는 우리 예상을 벗어난 사람들이 나온다. 바로 그리스 영웅들이다. 특히 트로이를 멸망시킨 영웅들.

로마는 트로이에서 살아남은 아이네이아스가 세웠다고 되어 있으니, 트로이를 멸망시킨 사람들을 이탈리아 사람인 단테가 천국에 보내기는 좀 그랬나 보다.

 

이렇듯 지옥편에는 다양한 종류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나온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의 끝까지 간다. 흔히 우리는 지옥을 9단계로 나누는데... 밑으로 갈수록 더 큰 죄를 저지른 인간들이 가는 곳이다. 벌도 더 가혹하고.

 

그런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지옥편은 그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종교들이 아무리 많아도, 천국을 약속해도 정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않고 여기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래, 단테의 지옥편을 읽는 이유는 지금-여기에서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다. 굳이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여기에서 잘 살면 행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은 그것에 따라오는 보상이라고 해도 좋고...

 

서사시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극시라고 해야 할 작품인데... 읽기에는 편하다. 그냥 시를 읽는 기분으로 주욱 읽어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엄청나게 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자세한 설명없이 툭툭 나오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존재들과 기독교 관련자들과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들을 몰라도 왜 이들이 지옥에 와 있는지는 유추할 수 있으니... 그럼 됐다.

 

책 뒷부분에 번역자가 주를 통해 해설을 달아놓아서 주를 찾아 읽으면 많은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니... 그리 걱정하지 않고 읽어도 될 작품이다. 이제 연옥, 천국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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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0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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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1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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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보는 순간 꼭 가지고 싶은 책이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른다. 그냥 마음이 움직이고, 손이 움직이고, 결국 어느 새 나에게 책은 와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이책 저책을 보던 중, 수평선 너머란 책을 보게 된 것. 제목만 보고는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책을 쓴 사람이 함석헌이다.

 

  함석헌 선생. 우리는 함석헌이라는 이름 뒤에 꼭 선생이라는 말을 붙였다. 좀더 높이고 싶은 사람은 함석헌 선생님이라고 했고.

 

어지러웠던 시대, 그는 우리의 등불이기도 했다. 뜻으로 읽는 한국역사부터 시작해서, 씨알이라는 말. 그렇다. 어두운 시대, 함석헌은 빛이었다.

 

그가 있어서 세상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시를 썼다고 한다. 물론 함석헌의 시는 몇 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를...

 

읽다보니 시조라고 생각되는 시들도 꽤 많고 장시라고 해서 꽤 긴 내용의 시들도 많다. 여러 시집을 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제서야 시집을 읽으며 함석헌의 이성적인 면이 아니라 감성적인 면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냥 갖고 있어도 든든하다.

 

책이 두껍기 때문에 한 번에 읽을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몇 달을 계속 곁에 두고 있었다. 읽다 말다, 읽다 말다. 그냥 그렇게 곁에 두고만 있어도 든든했다.

 

이제 함석헌 선생은 가고 없다. 하지만 우리 곁에 그는 영원히 남아 있다. 그가 쓴 시들 중에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

 

이런 사람을 가진 사람.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아니, 나 자신이 그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다시 이 시를 인용한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떤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救命帶)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마지막 숨 넘어오는 순간

그 손을 부썩 쥐며,

'여보게 이 조선을'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가졌거든 그대는 행복이니라

그도 행복이니라

그 둘을 가지는 이 세상도 행복이니라

그러나 없거든 거친 들에 부끄럼뿐이니라]

 

★ [ ] 표시가 되어 있는 부분은 육필원고에는 있지만 전집에는 실려 있지 않은 구절이라고 '일러두기'에 나와 있다.

 

함석헌, 수평선 너머(함석헌 저작집 23), 한길사. 2009년. 243-244쪽.

 

그런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이 되는 사람이 있는 사회, 그렇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그런 사회지.

 

함석헌 선생을 다시 생각한다. 지금 우리 곁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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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끕 언어, 세상에 태클 걸다 - 욕하는 게 뭐 어때서!
권희린 지음, 이주윤 그림 / 우리학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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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어에도 급수가 있을까? 마치 수능등급처럼 무슨무슨 등급이라고 언어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가능할까?

 

처음에 언어에 A급이 있고 또 B급이 있다는 말인가? B급이라는 말은 떨어진다는 말로 통할텐데, 떨어지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사람 자체도 B급이라고 할 수 있나? 제목만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그냥 B끕, B급도 아니고 더 강하게 발음해서 B끕이라고 책 제목에 붙였다. 역시 평범하게 표현해서는 책도 잘 안 읽히나 보다. 그렇게 강하게 일부러 B급을 강조하는 표현을 한 것은 이런 언어 사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의도라고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급식체'라는 말이 떠돌았다. 급식은 알겠는데 급식체라니... 컴퓨터 글자체에 쓰는 많은 글자체 중 하나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청소년들이 자주 쓰는 말을 급식체라고 한다고 한다.

 

줄이거나 아니면 초성만 쓰거나 국적불명의 말을 쓰는 것 등등... 이런 말들을 급식체라고 하는데, 청소년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에 한글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우리 한글이 걱정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여기에 '야민정음'이라고 하여, 한글을 제멋대로 줄이거나 변형시킨 말들을 부르는 말이 있었다. 급식체든 야민정음이든 상황에 따라 한글을 변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한글을 더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한글의 아름다움을 줄이는 쪽으로 기능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인터넷에서 '급식체'나 '야민정음'을 검색하면 다양한 언어들이 나온다)

 

이 책도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우리는 아름다운 표현, 좋은 표현을 해야 한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많이 읽힌 것은 이런 의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는 상황에 맞게 쓸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지 않나? 청소년들이 급식체든 야민정음이든 그런 말을 쓰는 것은 그 말들이 상황에 가장 잘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사회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의적으로 유행시키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여러 사람의 호응을 받아야만 유통되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급식체들, 야민정음이라고 하는 말들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은 이런 말들이 그 상황에 적절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 제목처럼 '세상에 태클 걸다'인 것이다. 세상이 이런 말을 쓰게 해놓고 왜 우리만 잘못했다고 하느냐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런 말을 쓰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상황 개선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언어를 쓰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행태가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이 의도하는 바는 이것이다. 물론 비속어가 좋지는 않다. 비속어란 말 자체에, 또 B급이라는 말 자체에는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책에서 이 말들의 어원을 살피고 이 말들을 이용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으며,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있으면 그 말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이런 B급 언어를 이용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B급 언어라고 하는 말들이 그 상황에 잘 어울리고 있다. 그러니 무조건 B급 언어를 배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안 써도 될 때는 다른 말을 쓰자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A급 언어가 더 많이, 더 자주 쓰이는 사회를 만들면 B급 언어가 자연스레 사라지게 하자고 한다.

 

격한 말들은 사회가 어지러울 때 더 많이 나타난다. 세상이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으므로 언어도 점점 짧아지고, 사람들 사이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말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 아닌지...

 

단지 청소년들이 쓰는 말을 청소년들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그런 언어가 자주 쓰이게 된 배경을 살피고 그것을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언어는 강한 사회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 언어를 통해서 사회를 알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우리는 소위 B끕 언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게 될 것이다.

 

청소년들이 쓰는 B급 언어는 분명 세상에 태클을 걸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B끕 언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덧글

 

출판사 이벤트에 응모해서 받게 된 책이다. 처음엔 비속어라고 해서, 온갖 욕설들에 대한 설명이 나올 줄 알았더니, 욕설도 나오지만 속된 표현이라고 하는 말들이 이 책에 많이 나왔다. 그런 말들이 사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보내준 출판사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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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0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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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1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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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 노릇7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개도일까? 욕하면 으레 그 대표로 쓰이는 개도 먹지 않는다는 선생 똥, 하, 선생 똥 누기는 더 힘들어. 왜 이렇게 됐을까?


  자라의 꾐에 속아 용궁에 가 간을 빼앗길 뻔한 토끼, 속고 속았지만 그래도 간만은 빼앗기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는데, 그 때 놀란 간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이 놈의 자라들이 왜 이리 많은지, 간이 뱃속에서 조용히 있을 날이 없는데……


  사람에게 불을 주었다는 까닭으로 독수리에게 툭 하면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를 보더니, 그래도 난 저 지경은 아니지……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토끼보다도 약한 선생은, 프로메테우스처럼 매일 간을 쪼이고 있으니, 그 찌끼가 괜찮을 턱이 있나. 그러니 선생 똥은 개도 안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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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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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1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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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캐치-22 - 전2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7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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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때는 제 2차 세계대전이다. 장소는 물론 작가가 창조한 공간이겠지만, 이탈리아 전선이라고 보면 된다.

 

주인공들은 공군 장교들이고, 그 중에서 폭격을 담당한 요사리안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들은 전쟁에 참전하고 있지만, 빨리 귀국하고 싶어한다.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이 된 상황이고, 이들에게 한 번의 출격은 목숨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30회의 출격을 마치면 귀국시켜 준다는 명령, 그러나 이런 명령은 지켜지지 않는다. 처음이 30회의 출격은 아니었다. 적은 출격횟수에서 점차 출격횟수는 계속 늘어가기만 한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려는 지휘관들의 욕심이 출격횟수를 계속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 출격횟수는 소설 말미에 가면 70회로 늘어난다.

 

30회라고 해도 많은데, 70회라면 어마어마한 횟수다. 한 번 출격할 때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공군들에게 70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일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라는 이름으로 공군에게 강요한다. 조종사들만이 아니라 항행사, 그리고 폭격수까지, 이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서 출격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보면 도대체 적군이 누구인가 생각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의 적군은 독일군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독일군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모두 공군 기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간혹 공습 장면이 나오지만 이 공습 장면에서도 독일군의 모습이 묘사되지 않고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묘사되어 있다.

 

흔히 긴박하고 긴장감 넘치며 장엄한 비행기 안 모습을 상상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요사리안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그는 공습에도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의 특기는 어떻게 하면 대공포가 없는 곳으로 도망치나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소홀히 했다가는 자기 목숨도 위태롭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우정을 쌓았던 친구들이 하나둘 죽어나간다. 이미 고국으로 돌아가 후방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지휘관이 터무니없이 증가시키는 출격 횟수 때문에 공습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적군은 이미 독일군이 아니라 점차 출격횟수를 늘리는 지휘관들이다. 이 지휘관들에게 반항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반항은 전쟁 상황에서는 통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미치거나 죽거나,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다. 병원에서만 지내길 원하는 요사리안이지만 그는 미쳤다는 판정도 받지 못한다. '캐치-22'라는 이상한 규정...

 

실제 존재하지 않는 규정이지만 이 규정은 모든 군인들을 옭아매고 있다. 이 규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적은 이제 독일군이 아니다. 이 '캐치-22'를 적용시키는 아군 지휘관들이다. 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수많은 군인들이 죽어나가고... 그럼에도 비극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웃음을 유발하는 이 소설은, 상황을 삐딱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가의 서술 때문에 전쟁을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전쟁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은 전쟁으로 죽어가거나 쫓겨가거나 길거리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직접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제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이 소설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바로 전쟁이 우리에게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없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결국 결말부분에서 요사리안은 탈영을 시도한다. 그러면서 소설이 끝난다.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전쟁이 일으키는 끔찍한 일들을 이렇게 비꼬면서 표현한 소설은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이 있듯이 전쟁에서 '캐치-22'로 대변되는 지휘관의 자의적인 명령이 사람들을 얼마나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전쟁의 위험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며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반전(反戰) 소설이다. 전쟁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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