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는 순간 꼭 가지고 싶은 책이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른다. 그냥 마음이 움직이고, 손이 움직이고, 결국 어느 새 나에게 책은 와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이책 저책을 보던 중, 수평선 너머란 책을 보게 된 것. 제목만 보고는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책을 쓴 사람이 함석헌이다.
함석헌 선생. 우리는 함석헌이라는 이름 뒤에 꼭 선생이라는 말을 붙였다. 좀더 높이고 싶은 사람은 함석헌 선생님이라고 했고.
어지러웠던 시대, 그는 우리의 등불이기도 했다. 뜻으로 읽는 한국역사부터 시작해서, 씨알이라는 말. 그렇다. 어두운 시대, 함석헌은 빛이었다.
그가 있어서 세상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시를 썼다고 한다. 물론 함석헌의 시는 몇 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를...
읽다보니 시조라고 생각되는 시들도 꽤 많고 장시라고 해서 꽤 긴 내용의 시들도 많다. 여러 시집을 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제서야 시집을 읽으며 함석헌의 이성적인 면이 아니라 감성적인 면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냥 갖고 있어도 든든하다.
책이 두껍기 때문에 한 번에 읽을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몇 달을 계속 곁에 두고 있었다. 읽다 말다, 읽다 말다. 그냥 그렇게 곁에 두고만 있어도 든든했다.
이제 함석헌 선생은 가고 없다. 하지만 우리 곁에 그는 영원히 남아 있다. 그가 쓴 시들 중에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
이런 사람을 가진 사람.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아니, 나 자신이 그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다시 이 시를 인용한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떤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救命帶)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마지막 숨 넘어오는 순간
그 손을 부썩 쥐며,
'여보게 이 조선을'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가졌거든 그대는 행복이니라
그도 행복이니라
그 둘을 가지는 이 세상도 행복이니라
그러나 없거든 거친 들에 부끄럼뿐이니라]
★ [ ] 표시가 되어 있는 부분은 육필원고에는 있지만 전집에는 실려 있지 않은 구절이라고 '일러두기'에 나와 있다.
함석헌, 수평선 너머(함석헌 저작집 23), 한길사. 2009년. 243-244쪽.
그런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이 되는 사람이 있는 사회, 그렇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그런 사회지.
함석헌 선생을 다시 생각한다. 지금 우리 곁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지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