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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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네 개의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 시험을 치르면서, 교칙을 위반하는 학생을 쉽게 적발하기 위해서는 머리카락 길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신문 사설을 읽으면서, "다 너희 잘 되라고 때리는 거란다"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느꼈던 모순에 대해서 언젠가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었으면 했다.' (263쪽. 후기에서)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객관식, 4지선다 문제를 신봉하던 사회, 요즘은 5지선다 문제가 나오니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좀더 넓어졌다고 위안을 해야 할까? 교칙을 위반하는 학생에게 벌점을 주는 학교... 잘못을 지적하면 벌점 주세요 하면 끝나는 학교 규칙.  머리카락 길이 제한은 없어졌지만 머리카락 색깔은 여전히 규제하는 학교... "다 너희 잘 되라고 공부하라는 거야"를 강요하는 학교...

 

누가 미안하다고 말하지?  저자가 다녔던 학창시절과 지금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창시절이 얼마나 다르지?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를지 몰라도 큰틀은 같지 않나.

 

여전히 규제를 하고, 옳은 것은 교사나 학교에 있고, 학생들은 오로지 따르기만 해야 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게 옳다고 확신한다.

 

교육에서 확신범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런 확신범들이 아직도 우리나라 교육계를 장악하고 있으니 도대체 누가 미안하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왜? 잘못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게 교육 분야에서만 그럴까?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정치 분야, 경제 분야, 예술 분야 등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상하게 확신범들만 넘치는 사회가 우리 사회 아닌가.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고 하면 줏대가 없다느니 네 생각을 가져라느니 하면서 비난을 하는 사회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 의견을 따르면서 그것이 마치 자기 생각인 양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목소리 큰 것이 자랑인 이 사회를 다시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확신의 함정" 세상에 확실한 것이 있을까? 있겠지... 그렇지만 내 생각이, 내 주장이 확실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과학자들도 자신의 관점에 따라서 관찰결과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복잡미묘한 사회 현상에 대해서 확실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내 생각만이 옳다는 관점을 버리고 다르게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을 지니고, 또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 말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심을 해봐야 한다.

 

이 책에서는 그런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런 사례들을 통해서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 소설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소설들과 법을 함께 언급하면서 읽는 사람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좋은 책은 다른 책을 읽게끔 만드는 책이라고 했는데, 이 책에서는 많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다른 책을 읽어 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른 책을 읽게 만드는 것, 다양한 생각을 접하게 하는 것이니...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을 하겠단 생각을 한다. 나만이 옳을 수는 없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것도 확실하지 않은 때가 있는데... 그렇다면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어떤 문제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확신의 함정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좀더 살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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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6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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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6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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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포 그래피' 낯선 용어다. 문자 디자인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한데, 여기에 '시'라는 말이 붙으니 더 낯설다.

 

  '타이포그래피 시'라는 말보다 '시각 시'라는 말을 쓰면 더 이해하기가 쉽단 생각을 하는데...

 

  시와 미술이 접목된 작품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즉, 마음으로 즐기던 시를 이제는 눈과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글꼴을 변형한다든지, 글자 배열을 다르게 한다든지 한 시들이 간혹 발표가 되기도 했지만, 시집 전체가 이를 추구하는 시집은 내가 읽은 시집에서는 이 시집이 첫번째다.

 

시의 내용을 디자인으로 표현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조심해야 할 점은 눈이 먼저 작동을 하면 눈에 의해 마음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의미를 해독하느라 감정이 움직이기보다는 이성이 작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비록 눈으로 보지만 이성보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도 많은데, 아직 시에서는 그렇지 못한가 보다.

 

마음보다는 이성이 먼저 작동을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타이포그래피 시'가  필요없다는 얘긴가? 아니다. 요즘처럼 시각이 우선시 되는 시대에는 이런 시도 필요하다. 아직 친숙하지 않아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낯설 뿐이다.

 

조금 지나면 한글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하는 이런 '타이포그래피 시'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시가 무엇인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그 무엇이 바로 시 아닌가. 그래서 이 시집은 시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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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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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농단에 관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에 삼권분립이 민주주의 기초라더니, 삼권분립은 커녕, 약자를 보호해야 할 사법부가 정권과 결탁해서 부정한 정권을 오히려 도와주었다니...

 

(학교 교육과 사회의 괴리가 이 정도로 심하다. 그러니 학생들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은 오로지 시험용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생활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지)

 

많은 정황증거들이 나오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법부 수장 출신들... 그리고 법원에 관한 수사를 구속영장 기각이라는 법 도구를 이용해 엄정한 수사를 방해하는 법원들.

 

(꼭 법원만 그럴까? 판사뿐만이 아니라 검사들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검사 출신 중에 지금 비리로 또 권력 유착으로 감옥에 가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럼 변호사는? 에고... 참)

 

사법부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그냥 자신들 출세를 위해서? 아니면 정권 보호를 위해서? 이러니 사법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재벌들은 아무리 많은 액수를 뇌물로 줘도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무죄 선고를 받는데, 일반 힘없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엄정한 처벌을 받는 현실에서 누가 사법부를 믿겠는가?

 

대법원장이라는 사람이 - 아직 법원에서 판결은 받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법관 한 명 한 명이 살아 있는 법원, 즉 독립적인 판결을 한다고 믿고 있었던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금태섭 - 검사 출신이자 변호사 - 이 쓴 "디케의 눈"을 읽으면서 '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법은 정의다. 정의의 여신 이름이 디케가 아닌가.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이 디케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고 하는데...

 

왜 눈을 가릴까? 금태섭은 책을 시작하면서 디케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는 말을 한다.

 

얼핏 생각하면 간단하다.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가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법관은 자신의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하기 위해 눈을 가린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는다. 간혹 진실은 깊게 깊게 숨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디케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무얼까? 쉽게 볼 수 있는 진실을 놓칠 수 있음에도 눈을 가린 이유는 자신에 대해서 성찰하기 위해서 아닐까.

 

외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를 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눈을 가렸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감는 순간 외부에 현혹되기보다는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 조용히 성찰할 수 있게 되는데... 내가 하는 판결이 과연 정의로운지 고민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눈을 가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법부는 눈을 뜨고 외부에 너무도 신경을 쓴 것은 아닌지... 눈에 보이는 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권력을 애쓰고 찾기 위해서 눈을 부릅뜬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다.

 

"디케의 눈"은 법에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쓴 글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법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주고 있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고, 법관은 법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려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더라도 논리적이고 타당성 있는 근거를 들어서 주장해야 한다. 그냥 권력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건 사례와 판결 사례가 나와 있는데, 우리 흥미를 끄는 사건들, 판결들도 많다. 특히 '미란다 경고'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성폭행범인 미란다가 변호사 입회 없이 자백을 했는데, 그 자백이 증거로 채택이 되지 않은 사건.

 

그래서 다음부터는 경찰들이 반드시 피의자의 권리를 이야기해 준 다음에 수사를 진행하도록 되었다는... 비록 죄인이지만 그 죄인도 자기 권리를 지킬 필요가 있다는 수사 사례. 그래서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착된 '미란다 경고'

 

이렇게 다양한 법 적용 사례를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너무도 멀고 높게만, 그래서 접근하기 힘든 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친숙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법을 아주 모르고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참 좋은 사회겠지만, 오늘날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또 소송만능주의로 빠져든 이 사회에서 법은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어렵다고 멀리하지 말고 좀 알아야 한다. 적어도 내가 어떤 권리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아야 눈 뜨고 법이라는 놈에게, 아니, 법을 좀 안다는 법관련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법에 한발 다가서는 디딤돌 역할을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사법 농단과 관련해 읽을 만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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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 '오늘'이라는 꼭지에는 두 개의 글이 있다. 두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 진다.

 

  소위 촛불 정권이라는 이번 정권에서 도대체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부패한 정권을 시민들의 힘으로 몰아내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 냈는데, 그 과실을 기존 정치권이 그대로 따먹어 버린 현실.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을 약속했음에도 여전히 복직이 되지 않은 사람이 많고, 해고자들은 여전히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호에는 벌써 30번째 죽음이 이야기 되고 있다.

 

복직이 된 사람도 어렵게 살기는 마찬가지... 누구는 복직이 되고 누구는 복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해고자 출신들이 일을 잘 안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현실. 도대체 무엇이 나아졌단 말인가.

 

잘못은 경영진들이 해놓고, 책임은 노동자들이 지는 구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촛불이 정권만 바꾼 것이 아니길 바랐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쌍용차만큼이나 암담한 현실이 바로 제주 강정이다. 강정 주민들은 여전히 분열되어 있고, 이들이 받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비록 대통령이 사과 발언 비슷하게 했다고 해도, 마음 속에 응어리진 상처들이 쉬 사라지지는 않을 터다.

 

여기에 관함식이라고 해서, 우리는 욱일승천기를 단 일본 군함들이 참석하느냐 마느냐만 문제 삼았는데, 강정 사람들은 왜 관함식을, 군함 사열식을 강정에서 하느냐고... 민관이 함께 사용하는 기지가 아니라 아예 군사기지로만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관함식을 평화를 추구하는 강정에서 해야 했을까? 그것도 처음에 주민들이 반대를 했음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이 계속 내려와 주민들을 설득해 처음에 주민투표로 결정했던 것을 뒤집도록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 나아졌는가? 여전히 시민들을 정치 주체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이 결정한 것을 따르도록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권이지 않나 싶다.

 

이번 호에서 문재인 정권에 경제 정책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으니... 우리는 여전히 어려운 경제에 허덕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어떤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이번 호에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정치나 경제나 조금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아직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인 교육에 대해서 이번 호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교육 분야 역시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촛불로 정권을 바꾼 지 두 해가 되어 간다. 두 해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무엇을 전 정권과 다르게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이 보이지 않겠는가. 정치권에 기대만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삶이 좋은 쪽으로 변해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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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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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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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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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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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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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건축은 필수 요소다.

 

의식주든, 식의주든 주는 빠지지 않는다. 집, 거주할 곳, 이곳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구상에 존재했을 때부터 건축은 우리와 함께 했다.

 

이런 건축을 토목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건축은 토목과 달리 우리 삶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래서 학교 건축부터 시작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교육을 하는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지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 건축, 답이 없다.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창의성 제로(영)에 가까운 학교 건축에서 무슨 창의 교육을 한다고 하는지, 저자는 답답해 한다.

 

교도소에 가두어 놓고 너희들은 창의적인 훌륭한 인재야 라고 백날 말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학교 건축으로 아이들 창의성을 다 죽여놓고 그런 기대를 하는데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양계장에서 닭을 키워놓고 그 닭에게 넌 왜 독수리가 못 되었냐고 야단치는 격이라는 것이다. 학교 건축, 천편일률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규격화된 건축. 네모 속에 갇힌, 담장 속에 갇힌, 그리고 자연과 철저하게 격리된 그런 건축물 속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인간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학교 건축에서 시작하여 다른 건축으로 넘어가는데 답답함이 가중된다. 우리나라 건축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 건축만큼 이 책에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 공원에 대한 생각이다. 공원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서울만 해도 많은 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용산가족 공원이라고 해도 걸어서 이곳에 가는데는 힘이 많이 든다. 걸어서 갈 수 없는 공원. 이런 공원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지 못한다.

 

공원이 공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원에 담장이 많다. 마치 구획을 짓듯이 담장이 자유로운 접근을 막고 있다. 아파트 단지들도 자신들의 담으로 사람들을 격리시키는데, 이렇게 길과 격리된 공간은 사람들을 끌어모으지 못한다고 한다.

 

공원이 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또 다른 공원으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 이동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으로 건축을 해야 한다. 이런 건축이 사람들 삶 속에 들어온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배려하고 사람과 함께 있는 건축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을 저자는 주장한다. 건축에서 자연을 내몰면 우리 삶이 피폐해진다. 인류의 탄생부터 우리는 자연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하여 접근하기 어려운 큰 공원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작은 공원 여럿을 만드는 것이 더 좋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이 책은 건축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인류 문명의 발달도 건축의 역사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건축물을 통해 권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다른 학문과 융합한 건축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읽은 재미도 있고,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도 해준다.

 

특히 우리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학교와 공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가 답답해 하듯이 이렇게 건축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들이 귀를 막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잠시 쉬면서 뒤를 돌아보고 숨을 고르고 우리가 살고 싶은 장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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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0-2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읽기 시작한 책이라,^^ 더욱 반가운 리뷰.

kinye91 2018-10-22 14:28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