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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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야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를 실현한 나라로 아테네를 꼽기도 하니,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가 바로 그리스다.

 

하지만 그리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잘 모른다.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그냥 건축물 중심이나 자연풍광을 중심으로 보고 오갈뿐. 또는 신화의 흔적을 찾아다닐 뿐. 그리스에 대해서 많이 공부를 하지 않고 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그리스를 다녀왔다. 달랑 2박.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과 에기나 섬만을 보고 온 것. 그리스에 대해서 많이 알지도 못했고, 또 그리스는 터키를 가기 위한 중간 여정에 불과했기에, 내게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파르테논 신전이 터키 이스탄불보다도 감동을 덜 주었으니, 감동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간 곳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가 쓴 "그리스인 이야기'와 제목이 똑같다. 시오노 나나미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시오노 나나미는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을 해나가고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재미고 있고. 극적인 요소도 잘 살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시오노 나나미 책과 비교할 수 있겠군 했다. 한데 읽어가니 아니다. 두 책은 비교할 수가 없다. 서술하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그 인물의 업적, 특성, 성격 등을 이야기한다. 한 인물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리스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우리 인간들이 일구어 온 역사의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즉 그리스인을 통해서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살펴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문학 속의 인물들도 그리스인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아킬레우스를 현재에 충실한 인간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감정을 우선시하는 인간. 그에겐 공동체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신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 자신의 능력. 그런 인간형이 아킬레우스라면 반대 편에는 헥토르가 서 있다. 헥토르를 공동체를 사랑하는 고결한 인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누구에게 더 애정을 쏟고 있는지 소개하는 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저자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런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오레스테스, 역시 문학 속 인물이다. 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스인 중에서 비극작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저자는 비극작가를 돋보이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의 정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신에게서 인간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비극 작품 속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해준다. 그리스는 신의 정의에서 인간의 정의로, 즉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법이 정착하는 과정을 이런 비극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은 천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의 세계로 내려온다.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다. 문명의 역사다.

 

문명의 역사에서 어두운 곳에 있었던 노예와 여자에 대해서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어떻게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가는지, 민주주의를 이끌어가게 되는 주요 인물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솔론과 페리클레스. 두 사람의 지도자만 다루고 있다. 이들이 아테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한계 역시 이야기해주고 있다.

 

페리클레스의 민주주의는 시민만의 민주주의, 오히려 민주주의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 그 전에는 아버지가 아테네 시민이면 어머니가 어느 나라 사람이건 상관없이 아테네 시민권을 지녔는데, 페리클레스 시대에 와서 부모 모두가 아테네 시민이어야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이렇게 점점 폐쇄적으로 축소되고, 또 다른 도시국가들에 제국주의로 아테네가 나아갔기 때문에 결국은 아테네 역시 멸망하게 된다는 것.

 

민주주의는 특정한 집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사랑해야 하지만, 또한 개개인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의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리스인들을 통해서 역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2권, 3권으로 이어지는데... 계속 읽어야 한다. 

 

1권의 작은 제목이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다.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내려오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이제 다음 권부터는 인간 세계에서 법과 정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되어가는지가 나오겠다고 추측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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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없는 동물


집 화분에 감자를 심었다

비록 작은 화분이지만

흙과 물이 있으니

감자가 열릴 것이라

감자 씨눈에서

시간이 지나 줄기가 올라와

감자가 열었으려니

아, 구슬만큼 작은

감자 세 알


이르쿠츠크와 몽고 여행을 하는데

차창 밖으로 자유롭게 노니는

말, 소, 양, 염소가 보인다

이들에게 경계는 없다

우리가 없다

자유롭게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동물들


순간 

떠오른

반도라면서 섬이 되어버린

곳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우리에 갇혀 사는

우리들

화분 속

감자 세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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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정기석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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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스위스에서는 전국민에세 기본소득을 주자는 법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했는데, 부결되었다. 76.7%가 반대해 부결되었다고 한다. (43쪽)

 

'현상 유지'를 선택한 스위스 국민들이 반대한 이유는 높게 책정된 기본소득 금액, 재원 마련의 불확실성 등이었다. 무엇보다 사회보장 제도를 기본소득제로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문제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43쪽)고 한다. 여기에 아마 놀고 먹는 베짱이들이 많아질 거라는 생각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베짱이들이 내내 놀지는 않는다. 또 이들의 놀이가 우리들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일은 아직은 이른가 보다. 그렇다면 범위를 좁히자. 마을 단위로 할 수도 있고, 직업 단위로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연령 단위로 할 수도 있고.

 

전체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제도는 부결되었지만 일부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또 실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기본소득제가 실시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을 좀더 확대하면 이 책 제목처럼 된다.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우리들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농민들이다. 가장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농민들이 쌀값을 인상하라고 시위도 하고 그랬는데...

 

농민들의 한 해 소득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 소득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 또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도 힘들다. 이들은 농업 외 소득으로 자신들의 생계를 지탱하고 있다. 생활이 아니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농민들이 많다.

 

그러니 젊은이들을 농촌을 떠나게 된다.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고령화 현상도 심각하지만 농촌은 이미 그 임계점을 넘어섰다. 환갑이면 청년회에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수입은 적고 나이는 많아지고 편의시설은 부족한 곳이 바로 농촌이다. 이런 농촌에서 그래도 먹을거리를 생산해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 덕에 먹고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당연히 그들도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우리가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기본이 기본소득이다. 처음부터 모든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조세저항부터 시작해서, 많은 반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서를 밟아가면 된다. 어차피 예산은 실행할 의지가 있으면 마련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3단계를 제시하는데... 대략 이야기하면 병역특례를 비롯한 처음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하위 30%와 만 65이상 노인에 대한 지원 -> 농민 전체에 기본소득. (137쪽 표 참조)이런 단계들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지니는 일이기 때문이다.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여겨지면 그때부터 제도를,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찾아도 늦지 않는다. 아니, 지금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상당히 많은 논의가 되어 있으니,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시행은 금방 일어날 수 있다.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는 이유는 농민들이 있어야 우리들이 살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살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가 농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라지면 우리들 삶도 힘들어진다.

 

그들만 좋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좋게 하자는 것이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주장인 것이다. 바로 내가 잘살기 위해서는 농민들이 잘살아야 한다는 것.

 

너무 힘들면 이것부터 실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병역특례로 농촌에서 일하는 방법은 지금도 있다고 하니, 이제 실시할 '대체복무'를 농촌에서 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이들이 2년반이나 3년 농촌에 머무르면서 노인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 농촌에 사람도 있게 되고, 이들과 함께 할 사람들도 농촌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니 농촌에 소비도 조장이 될 것이고, 또 이들 중에 농사의 중요성을 깨닫는 사람이 있으면 - 대체복무자들은 양심에 따라서 폭력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니, 이들은 천성적으로 농업에 매우 친숙할 테다 - 농민으로 머무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대체복무를 교도소에서 하게 한다던데, 그보다 더 비폭력적이고 생산적인 곳이 바로 농촌 아닌가 하는 생각, 또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고, 이것에 더해서 다른 것도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 이 책에 그런 것들이 나와 있으니 이를 더 구체적으로 실행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그냥 웃으며 지나칠 수 없는 주장이다.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잘 읽었다. 기본소득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에서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쟁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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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9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주 변영로. '논개'란 시로 유명한 사람. 그러나 내게는 술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교과서에 나온 시인들은 그냥 대단하다고 여기고 넘어가거나, 시험을 보기 위해 그가 쓴 시를 발기발기 해부해서 마음으로 느끼기 전에 문제로 접근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가 쓴 수필 제목이 '명정 40년'이었던가.  술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했다고 들었는데...

 

  학창 시절, 문인들의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주곤 하던 국어선생님에게 들었던 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쓴 수필, 명정 40년. 어떤 선생님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변영로의 호를 '수주'가 아닌 '소주'로 읽어도 된다고... 그만큼 술을 좋아한 사람이었다고 한 분도 있었으니...

 

  그런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있다는 것, 이 책을 받아보고 처음 알았다. 그만큼 문학상에 대해서는 굳이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

 

  책으로 나온 것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책을 펴내면서 한 말을 보면. 기존 수상작들을 몇 편씩 모아놓은 것들을 보아도. 그렇다면 다음 21회 수주문학상부터는 계속 책으로 나온다고 기대하면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기존 문인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이 아니라, 신인을 발굴한다는 의미가 더 강한 문학상이라는게 마음에 들었다.

 

기성 시인들을 대상으로 선정해서 상을 주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상이라는 것이. 그리고 이 수상시집을 읽으며 우리나라에서 시를 쓰길 원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것. 시인이라는 칭호를 받지는 않고 있지만 시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시에 관해서는 상당히 깊고 넓은 지지층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문학상에 투고했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심사평에 나오니 말이다.

 

그렇게 수주문학상은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 또 시를 쓰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시인이 꼭 남이 알아주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쓴 시를 심사위원을 비롯한 시인, 비평가들에게 읽힐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는 꽤나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20회 수상작을 필두로 그 전 수상작들, 심사평들이 실려 있고, 수주 변영로 시에 대한 해설도 실려 있어서, 한 권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그렇게 시가 우리들 사이로 내려왔다고 할 수 있다. 시는 저 높은 하늘에 홀로 고고히 떠 있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이 수상시집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런 문학상을 책으로 내는 삶창도 역시 삶창답다는 생각을 했고,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시집이다. 덕분에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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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아이들 바다로 간 달팽이 5
데이비드 L. 메스 지음, 정미현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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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이 아팠다. 읽다가 도중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용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혼혈아를 튀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어릴 적 미군부대가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백인을 닮은 아이와 흑인을 닮은 아이가 있었다.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도 미국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특히 흑인을 닮은 아이들은. 그들은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깜둥이로 불렸다. 피부가 하얀 아이들은 어느 정도 질투의 감정이 실린 놀림을 받았다면, 피부가 검은 아이들은 그냥 놀림, 무시의 대상이었다.

 

소설은 그렇게 이태원에서 흑인의 피를 받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니, 시작 문장은 간결하지만 너무도 많은 슬픔의 역사를 담고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조 윈터의 어머니는 창녀였다.' (10쪽)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여인. 그 여인은 흑인을 닮은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원치 않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 병석이...

 

그는 이태원에서 살아가는 부랑아라고 할 수 있다.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하는 아이. 그런 그를 착취하는 사람이 있다. 늘 그렇다. 없는 사람 등골을 빼먹고 사는 존재들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 처음 부분이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조 윈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 이것은 그가 성장했을 때 이야기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생존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것.

 

그렇게 되기까지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세상은 나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진흙 속에서 연꽃이 필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

 

병석은 자신과 반대로 피부가 하얀 혼혈아를 만난다. 미희. 이들은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은 이방인이라는 것, 국외자가 된다는 것이니, 그들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 대접을 받고 또 미국인이지만 미국인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둘이 마음을 열고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가. 여기에 온갖 멸시를 피부색으로 인해 받는 병석과 오히려 그런 피부색과 얼굴 모습으로 남자들의 눈요기거리로 욕망의 대상이 되는 미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혼혈아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을 거쳐 미국에 가서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당당한 삶의 주체로.

 

소설을 쓴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이태원 하면 지금은 번화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60-70년대 우리나라 이태원은 기지촌에 불과했던, 몸 파는 사람들과 그에 빌어먹는 온갖 군상들이 모여 살던 곳. 여기에 곳곳에 버림받은 아이들이 온갖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던 곳.

 

그런 사정을 이렇게 자세하게 까발릴 수 있다니... 잊고 있었던 과거를 소설은 되살려주고 있다. 이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다만 미군의 사생아들에서 이제는 다문화란 이름으로 포장이 되어 있을 뿐이지만, 그들을 과연 온전한 우리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 우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남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폭력적인 발상이라면 그들의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려 하고 있는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 버려진 아이들, 까만 피부건, 하얀 피부건, 사지가 멀쩡하건, 어딘가 장애가 있건, 그들은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서로를 도우며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에선 그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태원 아이들... 기지촌 아이들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삶을 찾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는지. 그 길에서 만난 수많은 나쁜 사람들과 또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세상은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살 만하다는 것을 생각하게도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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