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아이들 바다로 간 달팽이 5
데이비드 L. 메스 지음, 정미현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마음이 아팠다. 읽다가 도중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용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혼혈아를 튀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어릴 적 미군부대가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백인을 닮은 아이와 흑인을 닮은 아이가 있었다.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도 미국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특히 흑인을 닮은 아이들은. 그들은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깜둥이로 불렸다. 피부가 하얀 아이들은 어느 정도 질투의 감정이 실린 놀림을 받았다면, 피부가 검은 아이들은 그냥 놀림, 무시의 대상이었다.

 

소설은 그렇게 이태원에서 흑인의 피를 받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니, 시작 문장은 간결하지만 너무도 많은 슬픔의 역사를 담고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조 윈터의 어머니는 창녀였다.' (10쪽)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여인. 그 여인은 흑인을 닮은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원치 않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 병석이...

 

그는 이태원에서 살아가는 부랑아라고 할 수 있다.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하는 아이. 그런 그를 착취하는 사람이 있다. 늘 그렇다. 없는 사람 등골을 빼먹고 사는 존재들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 처음 부분이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조 윈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 이것은 그가 성장했을 때 이야기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생존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것.

 

그렇게 되기까지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세상은 나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진흙 속에서 연꽃이 필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

 

병석은 자신과 반대로 피부가 하얀 혼혈아를 만난다. 미희. 이들은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은 이방인이라는 것, 국외자가 된다는 것이니, 그들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 대접을 받고 또 미국인이지만 미국인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둘이 마음을 열고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가. 여기에 온갖 멸시를 피부색으로 인해 받는 병석과 오히려 그런 피부색과 얼굴 모습으로 남자들의 눈요기거리로 욕망의 대상이 되는 미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혼혈아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을 거쳐 미국에 가서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당당한 삶의 주체로.

 

소설을 쓴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이태원 하면 지금은 번화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60-70년대 우리나라 이태원은 기지촌에 불과했던, 몸 파는 사람들과 그에 빌어먹는 온갖 군상들이 모여 살던 곳. 여기에 곳곳에 버림받은 아이들이 온갖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던 곳.

 

그런 사정을 이렇게 자세하게 까발릴 수 있다니... 잊고 있었던 과거를 소설은 되살려주고 있다. 이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다만 미군의 사생아들에서 이제는 다문화란 이름으로 포장이 되어 있을 뿐이지만, 그들을 과연 온전한 우리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 우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남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폭력적인 발상이라면 그들의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려 하고 있는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 버려진 아이들, 까만 피부건, 하얀 피부건, 사지가 멀쩡하건, 어딘가 장애가 있건, 그들은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서로를 도우며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에선 그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태원 아이들... 기지촌 아이들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삶을 찾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는지. 그 길에서 만난 수많은 나쁜 사람들과 또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세상은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살 만하다는 것을 생각하게도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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