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지음 / 아작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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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읽기로 결심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사람은 늙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늙어감을 추함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추하게 늙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소설집 제목이 된 이 소설에서는 늙어서도 젊은이들과 비슷해지려는 노인 둘이 나온다. 그들은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들을 구입하고 이용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추하게 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젊은이들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추하게 늙지 않게 될까? 오히려 젊은이들과 같아지려 하는 모습이 추한 모습 아닐까?


늙어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젊은 세대와 차이가 있음을 알고, 그들과는 다른 삶을 보여주는 늙음이 추하게 늙지 않은 삶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소설은 젊은이들과 비슷해지려는 행동을 하려는 노인을 통해서 그것으로는 추함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추하게 늙지 않는 일,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도 젊은 세대의 삶을 가로막아서는 안 되는 삶을 살아야 하니.


가볍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임에도, 읽고 나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추하게 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추하게 늙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고, 그와 반대로 늙어가는 것이 과연 추함과 멀어지는 일일까 생각도 하고.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늙은 세대는 자신의 삶만을 고집하지 않고 젊은 세대의 삶을 인정해주는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자신들의 삶을 젊은 세대가 잘 살아가도록 하는 발판으로 만들 수 있는 행동을 해야 추하게 늙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 외에도 독특한 발상을 한 소설들이 꽤 있다. 유한한 삶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 나가는 소설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를 읽으며 지금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불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과연 불멸이 축복일까? 하지만 우리는 불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소설은 그 항해에 성공하고 있는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를 따지기 전에 어느 정도 과학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고, 또 우리 인간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니...


이 소설 외에도 재미 있게 읽은 소설들이 꽤 있다. 독특한 발상에 읽는 재미를 선사하고, 또 반전을 보여주는 소설들이 있는데...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처럼 중성화 수술을 받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인 '저 길 고양이들과 함께', 마치 채만식의 '미스터 방'을 읽는 느낌을 주는, 'SF클럽의 우리 부회장님'같은 소설.


여기에 로봇과 인간이 친구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식량 문제와 기후 문제를 해학적으로 풀어가고 있는 '한 터럭만이라도', 인공지능 문제, 과연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는 '감정을 감정하기'라는 소설도 재미 있다.


이 외에도 몇 편이 있지만 생략하고, 대체로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또 굳이 SF소설이라고 하지 않아도 그러한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는 소설들이다. SF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들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들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니, 심너울의 소설은 SF이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도 해도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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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30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 제목이...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별다른 불편 없이 또 별다른 두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두려운 세상이라면.

 

  공정한 세상라고 할 수 있나? 그럼에도 내가 느끼지 못했다고 그런 세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아니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러운 세상일 수도 있다. 바로 내가 편안하게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두운 거리를 어두움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을 지니고 걷는 사람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또는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걷는 사람에게 같은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두려운 세상에서 목숨을 잃거나 상해를 당하거나 했던가. 그런 세상을 마치 없는 듯이 아주 극소수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듯이 이야기 해서는 안 된다.

 

기사로만 접하는 사실과 시로 만났을 때는 느낌이 다르다. 이소호가 쓴 시는 예전 황지우가 쓴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로 끌어와 쓴 황지우. 신문기사를 모아서도 시로 만들어냈던 그의 모습을 이소호 시에서 보게 된다. 이 시 '누구나의 어제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이란 시도 그렇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사화 됐던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그냥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시를 통해서 누구의 삶이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협을 당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누구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시에는 각 번호마다 설명이 달린 주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시를 복사한 그림을 보면, 시 내용 곳곳에 있는 숫자들이 그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 칼, 창과 같이 느껴진다.

 

주가 없을 때보다 주가 있는 시로 보는 편이 시의 내용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인쇄가 약간 삐딱하게 됐는데... 그래도)

 

 

 

 

 

 

 

 

 

 

 

 

 

 

 

 

 

 

 

 

 

 

2021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20년. 181쪽. (주는 182-184쪽에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섬뜩해진다. 아니 부끄러워진다. 여전히 이런 일이 뉴스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 시에 있는 주가 38개인데, 38개의 칼을 맞는다면 사람이 견딜 수 있을까. 아니 언제 어디서라도 칼이 날아올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시는 이런 세상이 있음을, 그것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런 세상을 우리가 바꾸어야 한다고.


누구는 누가 될 수도 있다고. 이것이 꼭 특정 성별에게만 적용되는 일은 아니라고. 특정 성별, 또 성적 지향 때문에 이렇게 공포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누구나의 어제와 오늘은 이럴지 몰라도 내일은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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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메타버스 1
김상균 지음 / 플랜비디자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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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란 말이 자주 나온다. 이제 메타버스는 우리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거부한다고 거부할 수 없는,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디지털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상균 교수는 메타버스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이런 언택트 세계를 메타버스(metaverse)라 부릅니다.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새로운 세상, 디지털화된 지구를 뜻합니다. 인간이 디지털 기술로 현실 세계를 초월해서 만드러낸 여러 세계를 메타버스라 합니다. (11쪽)


이 말에 따르면 이미 메타버스는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었든, 인지하지 못했든 메타버스는 이미 우리의 현실세계와 더불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중요성을 코로나19로 인해 깨닫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갈수록 우리 삶에서 중요해질테고,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메타버스 속에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긴 지금 인식하지 않고 있지만, 핸드폰을 산 직후부터 우리는 자연스레 메타버스 속에 들어가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록되고 남겨진다. 핸드폰은 내게 편리함을 주기도 하지만, 바로 나 자신을 다른 세계에 기록하고 남겨두기도 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기도 하고.


굳이 게임이나 거창한 플랫폼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핸드폰을 사용하는 순간, 이미 메타버스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메타버스들이 존재할까?


이 책은 메타버스를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 세계, 가상 세계.


한번쯤을 들어봤음직한 세계들인데, 증강현실은 몇 년 전에 포켓몬 고라고 해서 스마트폰으로 현실에서 포켓몬을 얻는 행위를 하게 하는 일들이 있어서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다. 이런 게임 세계말고도 우리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세계를 느끼게 해주는 세계가 바로 증강현실 세계라 할 수 있다.


라이프로깅 세계라는 말은 낯선 언어인데, 이를 예전에 일기를 쓰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라고 보면 쉽게 이해된다. 라이프, 즉 삶을 로깅, 기록하고 남겨놓는 세계. 그래서 사소한 행위조차도 모두 기록으로 남겨지는 세상. 


몇십 년 전에 벌어진 사건, 또는 자신이 올렸던 글도 살아남아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지금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라이프로깅의 힘이다. 라이프로깅의 세계는 이렇게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코로나19로 역학조사가 강조될 때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거짓을 말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핸드폰을 통한 위치 추적이나 카드 사용내역 등으로 이들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속속들이 밝힐 수 있었다. 바로 라이프로깅 세계다. 그런 세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이런데, 능동적으로 온갖 사회적관계망서비스(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거울 세계는 우리들이 직접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면 내가 하는 것과 같은 부위의 뇌가 자극을 받는다는 사실과 같다. 거울 세계를 대표하는 메타버스가 플랫폼이라고 보면 된다.


배달을 주로 하는 플랫폼이나 숙박을 주로 하는 플랫폼 등. 이들은 음식점을 소유하지도, 숙박 장소를 소유하지도 않았지만, 이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현실 세계와 같은 행위를 한다. 사람들 역시 현실 세계와 같이 느끼고 행동하고.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메타버스인데, 택시 회사를 설립하지 않아도 각자 가지고 있는 자동차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연결시켜 주는 우버와 같은 플랫폼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플랫폼들은 앞으로도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가상 세계는 친숙하다. 사실 많은 영화에서 이런 가상 세계를 많이 다루기도 했고. 게임 역시 일종의 가상 세계다. 자신이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역할들을 가상 세계에서는 할 수도 있으니, 인간은 예전부터 이러한 가상 세계를 창조해 오지 않았던가.


디지털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예술을 통해서 가상 세계를 경험했다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현실과 비슷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기도 하고.


이렇게 네 부분으로 메타버스를 나누어 설명하고 난 다음에, 앞으로 메타버스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를 현실에 존재하는 기업이나 연예인들의 활동을 통해서 제안하고 있다. 


메타버스에 대해서 지나치게 열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비판적이지도 않게, 지금까지 발전해온 메타버스를 간명하게 설명해주고, 미래에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도 제안하면서 책을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메타버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메타버스 입문서로는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저자가 한 이 말도 명심하면 더 좋겠다. 우리는 메타버스를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삶은 현실에 있다는 것을.


메타버스는 인류의 삶을 확장하기 위한 영토여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한 도피처, 누군가를 위한 수용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메타버스를 창조하고자 꿈꾼다면, 당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당신의 메타버스가 우리 삶을 어떻게 확장할지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타버스의 사용자라면, 당신이 그 세계에 머무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세계가 당신을 삶을 어떻게 확장하고 있는지 돌아봐주시기 바랍니다. ... 저는 메타버스의 활용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지만, 메타버스가 우리 삶을 대체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371쪽)

 

이것이 우리가 메타버스를 알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겠다. 현실에 굳건하게 발을 디디고 살아가기 위해서 매타버스를 필요로 해야 한다. 메타버스 속에 들어가 현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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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텍스트T 2
정연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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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아빠는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 돈다.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엄마가 돌아가신다. 충격.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빠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원망만 있다.


이제 아빠 고향으로 가게 된다. 처음으로 가게 된 아빠 고향. 왜 그럴까? 소설은 여기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왜 아빠는 밖으로 돌았을까? 그는 왜 고향에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 왜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부모의 죽음은 충격이다.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그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남남처럼 지내던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한다. 낯선 곳에서. 어쩌면 낯선 곳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에 좋은 장소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을 늘 웃는 표정의 아이로 그린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자신의 슬픔으로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아이. 이런 아이는 슬픔이 안으로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슬픔은 어느 정도 고여 있다가도 밖으로 흘러야 한다.


슬픔을 가둬두었다간 언젠가 댐이 터지듯 터져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 슬픔의 둑에 구멍을 내는 역할을 무엇이 할까? 언제까지 슬픔에 갇혀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슬픔을 내보낼 구멍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다. 우연히 자신에게 다가온 시. 시는 가슴 속에 남아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슬픔이 나갈 구멍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아이가 시를 만나면서 시를 쓰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면서 피해가지 않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시가 곳곳에 나온다. 주옥같은 시라는 표현이 식상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시들은 마음 속에 콕콕 박힌다.


그런 시들을 읽는 재미, 소설의 상황에 맞게 등장하는 시는 우리에게 시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여기에 여자 등장인물, 은혜. 그야말로 은혜다. 축복이다. 이 은혜로 하여금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이 주인공과 반대인 듯하지만, 그런 은혜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사실. 그 상처를 은혜는 받아들이고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자신에게도 현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은 아빠와 화해하는 장면까지 가지 않는다. 아니, 갈 필요가 없다. 그 이후는 이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지니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녹록치 않음을 회피로 가게 하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시를 통해서 또 은혜를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본 주인공은 이제 자기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까.


그렇게 자신을 긍정하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기. 이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후회 속에서 사는가? 후회는 앞으로 나아갈 발판이 되면 좋지만, 과거에 나를 머물게 하면 안 된다. 주인공인 아빠, 이 사람은 후회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과거에 잡혀 있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 현재를 살지 못했다. 그러니 가족을 구성하면서 아웅다웅 하면서 살아가는 일을 하지 못하고 회피했다.


나약함, 한때 시를 썼다는 사람이 시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레 현재가 다가왔다. 현실이 그의 앞에 떡 나타났다. 그 역시 현재를 살아야 한다. 자식과 같이 살아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선택지가 없기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신이 떨치고 떠난 곳. 새로운 시작은 자신이 버린 곳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현재 속에서 길고도 긴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자식과 함께 하는 삶을.


이런 삶. 자식은 시를 통해서 자기 슬픔을 내보내는 길을 찾았고, 은혜라는 친구를 통해 현실에 충실한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더 성숙해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슬픔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 또 그 슬픔에 함께 하는 시들. 시를 통해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


소설은 한 아이의 성장기이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시가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어가는 재미도 있고, 소설 속 시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아이는 시를 통해 슬픔을 위무하고, 슬픔을 내보낼 수 있게 된다. 그는 시를 통해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 이게 바로 시의 힘이다. 이런 시들을 곁에 두고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사람들이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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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마지막 호.


  한 해를 잘 보냈다고 하고 싶지만,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이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지내야 한다. 내년에도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있지만, 3년이 되어가니, 사람들이 적응을 하든, 극복을 하든 하지 않겠는가.


  두 해 동안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바이러스가 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으니.


  그런 변이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역시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니. 우리는 이 감염병에도 적응하고, 우리들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사람들을 다뤄주었던 빅이슈를 한 해 동안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가 직접 만나지 못하는 존재들을 빅이슈를 통해서 만날 수 있는 한 해였는데...


내년에도 빅이슈를 통해서 더 많은 존재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내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번 호에 영국에 사는 이항규의 글이 마지막으로 실렸다고 한다. 다음 호부터는 이항규의 글을 볼 수가 없다는 서운함이 있지만, 그의 글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고마움을 전한다.


그가 이번 호에서 쓴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밤길 운전을 할 때, 낯선 곳을 그것도 가로등도 없는 곳을 운전할 때의 두려움. 어쩌면 이것은 코로나19를 겪은 우리 인류들의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낯선 곳을,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곳을 운전할 때도 도움이 주는 존재들이 있다고 한다. 앞서 가는 차들. 앞서 가는 차들의 빛을 보고 따라갈 때의 안도감. 그것은 함께 한다는 든든함이다.


우리가 감염병 시대에 겪는 어려움을 이렇게 함께 함으로써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또 뒤에서 차가 내 속도에 맞춰 따라올 때의 고마움. 내가 늦게 간다고 씽씽 추월해가지 않고 천천히 함께 오는 차. 이것 역시 함께 한다는 고마움이다.


차만 그렇겠는가. 감염병 시대에 우리는 이렇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존재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던가. 그들로 인해서 이 어려운 시대를 그래도 이겨나가려는 의지를 지니고 계속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빅이슈 또한 마찬가지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잡지다.


빅이슈가 그러한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는 생각. 내년에도 또 그 후에도 빅이슈는 이렇게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포기하지 않게 밀어주고 끌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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