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이미지
조셉 캠벨 지음, 홍윤희 옮김 / 살림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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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화가 없는 민족이 없다. 아니 어쩌면 민족이란 개념은 신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같은 민족임을 확인하는데 신화만큼 좋은 요소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단군신화도 그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대는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고려시대가 아닌가?

 

나와 남이 구분되기 시작할 때, 나는 나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로 달려간다. 과거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현재의 일부이고, 나의 일부이니, 이 과거로부터 지금의 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신화는 그런 역할을 한다. 먼 옛날 이야기로 그냥 사라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나를 구성하고 있는 바로 내 곁에 있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나를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화를 알아야 한다.

 

아렌트의 말을 빌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현재는 무한한 과거와 미래를 유한한 출발점으로 삼아 무한한 우리를 만들어내는 행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이 발판 중의 하나가 바로 신화이고, 신화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신화들은 남과 구분되는 나를 만드는 요소로만 파악하지 않고, 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즉, 여기서 나를 개인의 나, 민족 구성원인 나로만 국한하지 않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 만드는 요소가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캠벨, 그의 신화 연구는 신화를 특정 민족만의 신화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신화는 우리 인간의 원형일 수 있다는 점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전혀 다른 곳에서 비슷한 심상이 나타나는 문제를 그는 추적하고 있다.

 

멧돼지, 뱀, 희생제의, 부활 등 세계 곳곳에 있는 신화들이 비슷한 점들을 지니고 있고, 이런 점이 우리를 공통인간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이 책에는 방대한 그림(사진)들이 나온다. 정말로 다양하고 많은 도상자료들이 읽는 재미를 더햊고 있다. 여기에 읽기 편하게(번역을 잘해서인지) 쓴 글도 어렵지 않게 이 책을 넘길 수 있게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한정되어 있던 우리들에게 오히려 인도신화부터 불교까지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더 친숙할 수도 있다.

 

그림들을 보면서, 글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꿈꾸어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까? 어느 특정한 종교에, 어느 특정한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의 관점에서 신화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첨예화되는 정보화시대, 신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하는 수가 있으나,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류가 과거로부터 지녀왔던 것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바로 지금 우리를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고,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가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로 첨단화되어도 신화와 같은 아날로그적인 요소들도 우리는 곁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아날로그적 요소가 더욱 첨단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를 인간이게끔 할테니 말이다.

 

분량도 많고, 다양한 신화들을 살피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실려 있는 그림들과 우리에게 친숙한 동양적 이야기 때문에 읽기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오히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꿈꾸는 자, 행복한 사람이다. 신화는 우리를 그런 행복한 꿈으로 인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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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학생 인권조례 가지고 말들이 많다.

텔레비전에서 인터뷰한 학생들은 머리 기르고 싶어요, 염색하고 싶어요 하고, 교사들은(아니 교감들이었나?) 여자애들처럼(어느 시대인데, 여자애, 남자애 가리는지) 머리 긴 거는 지도하겠다, 지나친 염색은 지도하겠다 하고, 교복이 없어지느니 마느니 하고 있으니...

 

교과부는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실시하지 말라고 법원에 청구하고 있고, 일선 학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소식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단골로 나오고 있으니...

 

여기에 서울시교육감인 곽노현 교육감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마음에 꽂혔다.

이제는 학생들 머리 모습이 아니라 머리 속이 중요하다고...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하지 않았나, 또 겉모습을 통제함으로써 속마음까지도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든 뭐든,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는 학생(청소년)들 자신이다. 자기 몸을 자기 스스로 관리할 수 없게 하고 있는 상태가 바로 지금의 모습 아니던가. 남의 몸을 외부에서 남이 통제하고 있는 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판단 능력이 없다고? 경제 능력도 없다고... 판단 능력이라니.. 제 머리 제가 기르는데, 제 머리 색깔 제가 선택하는데 거기에 판단 능력이 왜 들어가나? 그렇다면 남자애들은 짧은 머리가 정상이고, 여자애들은 묶은 머리가 정상이고, 색깔은 검정색이 정상이란 말인가? 남녀 구분없이 기를 수도, 짜를 수도 있고, 머리 색깔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지 않나... 여기에 판단 능력이란 말은 들어갈 필요가 없다.

 

제 몸에 대한 남의 통제는 그 자체가 판단 능력을 빼앗는 행위이다. 이는 너는 스스로 네 몸에 대해서 어떻게 할 권리가 없어 하고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 판단 능력이 없는 남이 시키는대로 하게 되는 사람으로 만드는 행위에 불가하다.

 

이렇게 자라온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몸을 자꾸 외부의 기준에 비춰보게 된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니, 남들과 다르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남들이 다 입는 옷을 입어야 하고, 남들이 화장을 하면 나도 해야 하고, 남들이 성형을 하면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타나게 된다.

 

거리 어디를 나가도 비슷한 옷들, 비슷한 얼굴들 천지인 이 나라,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자기 몸을 남의 통제에 빼앗긴 결과일 뿐이다. 이를 모르고 판단 능력 운운하면 이는 안되는 소리다.

 

최근에 노스페이스 교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서 노스페이스 옷이 유행하고 있다. 이 옷도 또 가격 차이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고 하니, 이는 자기 표현을 욕구를 억압당한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는 모습이 나타난 증거라고 해야 한다.

 

아이들은 노스페이스로 자신의 계급을 구분한다면, 어른이 되면 무엇으로? 당연히 명품으로, 가격이 계속 오름에도 명품 매장에 줄 서서 사겠다는 사람들을 보라. 이들은 그것이 자신을 잘 표현해 준다고 믿고 있다. 디자인, 실용성 등이 아니라, 오로지 남들의 시선에서 말이다.

 

그러니... 학생인권조례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

 

어른들, 동화라고 무시하지 말고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교과부 장관부터 읽어야 한다. 이런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엉뚱이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

너무도 엉뚱한 옷을 입고 다니는 소피와 소피 때문에 고민에 빠진 학교, 그리고 소피를 믿고 학교에서 소피를 강제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 이 황당한 일들이 이 동화책에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단지 재미만이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할 문제는 아이들의 외모가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이다. 그 내면이 성숙할 수 있게 최대한 도와 주어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부모처럼 아이들의 표현 욕구를 받아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의 시선보다는 자신만의 미적 표현 방법을 추구하게 된다.

 

지금 어른처럼 명품, 비싼차, 그리고 인공 얼굴, 인공 몸매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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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 -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연습 푸른숲 필로소피아 13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푸른숲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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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이 책은 아렌트의 글 8편이 소개되어 있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이 혼합되어 있는데, 아렌트는 과거를 이야기해도, 미래를 이야기해도 결국은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인 현재를 중시하고 있다.

 

무한한 미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행위의 순간이 시작되는 점이 바로 현재이며, 이 현재는 인간이 지닌 필멸성으로부터 인간을 무한으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결국 현재는 과거를 통해 결정되지도 않고, 미래로부터 규정당하지 않으며, 이 과거와 미래의 틈새에서 자신의 사유와 행위로 인해 무한을 향해 뻗어나가는 시간-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이를 사유를 통해서 또는 행위를 통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워낙 철학적인 내용이고, 서양의 문화,철학 전통이 이 글들에 녹아 있어서 읽기가 녹록치 않은 책이다. 아렌트의 글들이 대부분 쉽지 않듯이 이 글들도 쉽지 않은데, 서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아렌트의 독특한 현재관이. 카프카를 인용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그 부분이.

 

권위, 자유, 교육, 문화를 다루고 있는 글들은 그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연결고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 현재 교육의 위기를 말하며, 권위의 상실을 한탄하고, 문화의 상실을 이야기하는 우리 현실에서 이 글들을 곱씹을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교육은 세계를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아렌트의 말, 그리고 권위란 강제도 아니고, 설득도 아니라는 말, 그렇지만 이 권위는 과거에 기대고(로마의 경우), 외부에 의존한다고 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어떤 것에 기대어야 제대로 권위가 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법도, 전통도 많이 상실되었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권위를 찾으려는 노력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권위가 부정이 되었을 때는 아렌트의 말대로 정치행위를 할수밖에 없는데, 이 정치행위를 하는 장소가 공공영역이라면, 우리는 학교라는 공공영역에서 또하나의 규범, 권위를 만들어가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행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 자신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공적 영역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고,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타인과 만남을 가진다는 사실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이런 용기야 말로 행위의 기본 요소라는 생각...

 

권위, 문화, 교육이 위기에 처한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용기를 가지고 행위를 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럴 때 자유가, 즉 시작으로서의 자유를 우리가 갖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렌트는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그를 자유라고 보았고, 인류의 행위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필멸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았기에, 우리는 이들을 명심하고 용기있게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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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 -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연습 푸른숲 필로소피아 13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푸른숲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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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도 하나의 힘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 기원으로 되돌아가는 모든 길에 도달한 이 과거는 뒤로 잡아 당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밀게 되어 있다. ... 우리를 과거로 몰아붙이는 것은 미래이다. ... 시간은 '그'가 서 있는 가운데 지점에서 끊어져 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그의' 지속적 투쟁, 즉 그가 과거와 미래에 대적하여 '그의' 자리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시간 속의 틈새이다. 오직 사람만이 시간 속으로 틈입하기 때문에, 무차별한 시간의 흐름은 사람이 자신의 토대를 세우는 만큼만 시제, 즉 과거와 미래로 나누어진다.-19쪽

오직 사유하는 한, 그리고 나이를 먹지 않는 한에서만 인간은 자기의 구체적인 있음의 온전한 현실태로서 과거와 미래 사이의 틈새에서 살아간다. ... 이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것과 동시에 발생한다. 시간 속의 틈은 아마도 정신의 영역이거나, 아니면 차라리 사유함에 의해 마련된 통로라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사유 활동이 필멸할 인간의 시-공간 속에 설치한 이 협소한 비-시간의 선로로 사유,기억, 기대의 수송열차가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시간의 폐허에서 만난 것들을 실어온다. ... 시간의 심장부에 마련되는 이 작은 비-시간-공간은 단지 암시될 수 있을 뿐, 과거로부터 계승하거나 물려받을 수 없다. ... 모든 인간은 이 통로를 발견해야 하고 꾸준히 새롭게 닦아야 한다.-23쪽

노동 뿐만 아니라 정치로부터의 자유라는 이중적 여가 개념은 철하자들에게 가장 넓은 의미에서 철학과 지식에 헌신하는 관조적 삶을 위한 조건이 되어 왔다.-33쪽

개인적 삶은, 말하자면 생물학적 삶의 순환운동을 관통하는 그것의 직선운동 과정에 의해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된다. 이것이 필멸성이다. ... 단일 사건과 단일한 몸짓은 늘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단일사례, 행적 또는 사건들은 인간의 직선적 삶이 생물학적 삶의 순환운동에 끼어드는 것과 동일한 의미에서 일상생활의 순환운동에 끼어든다. 역사의 소재는 이런 개입들-다른 말로 이례적인 것들-이다.-64쪽

대중사회는 여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과거에 그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존재했던 세계를 상실한 인간들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생겨난 조직화된 삶일 뿐이기 때문이다.-125쪽

권위는 외부적 강제 수단의 사용을 사전에 배제한다. ... 권위는 설득과도 양립할 수 없다.-129쪽

권위주의 정부가 지닌 권위의 원천은 언제나 권력의 외부에 있고 그 권력보다 우월하다.-135쪽

권위는 권력과 대조적으로 그 뿌리를 과거에 두고 있었으며, 이 과거는 산 자들의 권력과 저력 못지않게 도시의 실제 생활 속에 현전했다.
... 권위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권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168,169쪽

정치의 존재 이유는 자유이며 그것이 경험되는 장은 행위이다. -199쪽

행위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동기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예측가능한 결과인 의도된 목표로부터 자유로와야만 한다. -207쪽

인간은 이전이나 이후도 아닌 행위하는 동안만큼은 자유롭다. 그 까닭은 자유롭게 되는 것과 행위한다는 것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209쪽

용기는 세계의 자유를 위해, 생활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정치에서 생활이 아니라 세계가 문제시되므로 용기는 정치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213쪽

모든 새로운 시작의 본질은 '무한한 비가망성(infinite improbability)'으로서 세계 속에 틈입하는 것이다.-231쪽

우리가 위기를 사전에 형성된 판단, 즉 편견으로 대응할 때 위기는 재앙이 된다. 그러한 태도는 위기를 더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위기가 제공한 현실의 경험과 성찰의 기회를 박탈한다.-237쪽

교육의 주체인 아이는 교육자에게 이중적 측면을 갖는다. 그는 자신에게는 낯선 세계에 들어선 새로운 존재이다. 또한 생성과정 속에 있고 한 사람의 새로운 인간이며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이다.-250쪽

교육은 새로움을 보전하여 새로운 것으로서 낡은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 세계는 그것의 행위가 얼마나 혁신적인가와 관계없이 , 차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는 언제나 낡아빠지고 파괴 일보 직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259쪽

우리는 교육의 영역을 다른 영역, 무엇보다도 공적, 정치적 삶의 영역에서 확실하게 떼어내야 한다. ... 권위의 개념과 과거에 대한 태도만을 교육의 영역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 이것의 첫번째 결과는 학교의 기능이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어떤 곳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명확한 이해일 것이다.-262쪽

대중사회는 문화가 아니라 오락을 원하며 오락 산업이 제공한 상품은 사회에서 다른 소비재와 똑같이 소비된다. -275쪽

대중문화는 대중사회가 문화물을 포획할 때 그 실체를 드러낸다. ... 문화는 물건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세계의 한 현상이다. 반면에 오락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생활의 한 현상이다. 어떤 물건이 지속되는 한 그것은 문화적이다. -278쪽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의 사물성은 그것의 형체속에 있으며 오직 예술 작품만이 외견이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다. 외견을 판단하는 올바른 기준은 미이다. ... 외견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과 물건 사이의 거리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물의 순수한 외견이 중요할수록 올바른 감상을 위한 거리가 한층 더 요구된다.-281쪽

문화는 행위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확보한 공영역이 본질상 나타나는 것이자 아름답게 되는 것인 사물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가리킨다. ... 말과 행위의 순간적 위대함은 그것에 미가 부여되는 한 세계 속에서 버틸 수 있다. ... 예술과 정치를 연결하는 공통의 요소는 그것들이 공적 세계의 현상이라는 점이다. -292쪽

논리의 건전성은 자아의 현전에 달려있고, 판단의 타당성은 타인의 현전에 달려 있다. ... 판단의 재능은 명확하게 정치적인 능력, 즉 자기자신의 관점뿐 아니라 그곳에 불가피하게 현전하게 된 사람들 모두의 시각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295쪽

모든 사람이 모든 중요한 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곳에서 진실을 말하는 삶은 그가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행동을 개시한 것이고, 또한 정치에 연루된 것이다.-337쪽

거짓말쟁이는 '사실'을 이득과 쾌락, 또는 청중의 단순한 기대치에 들어맞도록 자유롭게 날조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거짓말쟁이는 통상적으로 그럴듯함을 우군으로 가질 것이다.-337쪽

이야기꾼-역사가 또는 소설가-의 정치적 기능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용인하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진실성이라고도 바꿔부를 수 있는 이 용인으로부터 판단 능력이 나온다.-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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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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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많다. 그러나 그 길은 험난하다. 진실로 가는 길에는 이정표가 없거나, 중간 중간 길이 끊겨 있기도 한다. 또 갖가지 위험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에서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감춰지게 된다.

 

감춰진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 자리를 거짓이 차지하게 된다. 거짓이 진실인양 가장하고서.

 

원자력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지구 환경오염을 없애는데, 줄이는데 도움을 주는 청정에너지일까? 인류를 대재앙으로 이끌 핵발전일까?

 

영어로 'nuclear'라고 쓰는 이 말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쓰면 '원자력'이고 북한이나 이란 등에서 쓰면 '핵'이 되는데, 같은 대상을 놓고도 이렇게 다른 용어로 쓰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원자력에 대한 정확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같은 사물을 다르게 사용할 때 우리는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정적 작용과 긍정적 작용이 있을 때 어느 면을 우선 고려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원자력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령 의약품의 경우 두 경우가 다 있을 때 과연 우리는 그 약품을 사용하게 될까, 극단적인 경우 아니면 사용하지 않을텐데... 이 경우를 원자력에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직 우리 인류는 에너지 자원에서 극단적인 경우에 처하지 않았고, 오히려 에너지 과잉 상황에 처해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시대에 우리는 원자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에너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즉 극단의 경우에 처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원자력 발전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원자력으로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 집단은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으며, 이 이익을 감추기 위해 여러 통계들을 조작하거나 누락하여 제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자료들에 대한 접근이 어렵도록 하는 비민주적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연간 방사능피폭량이 정해져 있기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자주 바뀌다 보니 숙련된 노동력이 원자력 발전소에 투입되기는 힘들고, 따라서 이들 노동력들은 대부분 하청, 재하청업자에 속하게 되고, 사회에서 이중으로 고통을 받게 되기 쉽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발생이 적다는 통계도 역시 원자력 발전에만 한정하고 있는데, 발전을 하기 위해 우라늄을 채취, 이동, 정련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고의로 누락시키고 있으며, 또한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생기는 쓰레기의 처리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계산에 넣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다 계산에 넣으면 오히려 화력발전보다도 이산화탄소의 양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는 이유가 사라지므로 이들은 이런 식으로 은폐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바닷물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머금고 있는데,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면 바닷물 속에 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이 된다고 하는데, 원자력 발전소 주변의 바닷물 온도는 다른 곳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곳에서도 역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양이 말이다. 이 얘기는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작가는 이런 예를 사이다로 들고 있다. 사이다에 열을 가하면 탄소가 증발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닷물도 같은 현상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책의 곳곳에서 원자력 발전이 안되는 이유를, 그리고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진실을 감추고 있는지를 쉽게 잘 알려주고 있다. 원자력 하면 고도의 과학지식을 알고 있어야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원자력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우리가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원자력에 대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원자력에 대한 공방. 아니, 이는 공방할거리도 아니다. 이제는 원자력 발전은 멈춰야만 한다. 그렇다면 원자력에 많은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하는 의문이 들면 이 책을 읽어보라.

 

원자력에 우리나라만큼 의존하던 일본도 원자력 발전 없이도 충분히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에 나와 있다. 그러나 지금 충분히 에너지를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한다. 우리는 충분히가 아니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쓰면서, 후손에까지 엄청난 부담을 주는 원자력을 쓰겠다고 할 수 있는지 저자는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이제 대답은 우리가 할 차례다. 우리는 원자력을 필요로 하는가, 필요로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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