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 사이 -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연습 푸른숲 필로소피아 13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푸른숲 / 2005년 11월
구판절판


주목할 점은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도 하나의 힘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 기원으로 되돌아가는 모든 길에 도달한 이 과거는 뒤로 잡아 당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밀게 되어 있다. ... 우리를 과거로 몰아붙이는 것은 미래이다. ... 시간은 '그'가 서 있는 가운데 지점에서 끊어져 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그의' 지속적 투쟁, 즉 그가 과거와 미래에 대적하여 '그의' 자리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시간 속의 틈새이다. 오직 사람만이 시간 속으로 틈입하기 때문에, 무차별한 시간의 흐름은 사람이 자신의 토대를 세우는 만큼만 시제, 즉 과거와 미래로 나누어진다.-19쪽

오직 사유하는 한, 그리고 나이를 먹지 않는 한에서만 인간은 자기의 구체적인 있음의 온전한 현실태로서 과거와 미래 사이의 틈새에서 살아간다. ... 이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것과 동시에 발생한다. 시간 속의 틈은 아마도 정신의 영역이거나, 아니면 차라리 사유함에 의해 마련된 통로라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사유 활동이 필멸할 인간의 시-공간 속에 설치한 이 협소한 비-시간의 선로로 사유,기억, 기대의 수송열차가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시간의 폐허에서 만난 것들을 실어온다. ... 시간의 심장부에 마련되는 이 작은 비-시간-공간은 단지 암시될 수 있을 뿐, 과거로부터 계승하거나 물려받을 수 없다. ... 모든 인간은 이 통로를 발견해야 하고 꾸준히 새롭게 닦아야 한다.-23쪽

노동 뿐만 아니라 정치로부터의 자유라는 이중적 여가 개념은 철하자들에게 가장 넓은 의미에서 철학과 지식에 헌신하는 관조적 삶을 위한 조건이 되어 왔다.-33쪽

개인적 삶은, 말하자면 생물학적 삶의 순환운동을 관통하는 그것의 직선운동 과정에 의해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된다. 이것이 필멸성이다. ... 단일 사건과 단일한 몸짓은 늘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단일사례, 행적 또는 사건들은 인간의 직선적 삶이 생물학적 삶의 순환운동에 끼어드는 것과 동일한 의미에서 일상생활의 순환운동에 끼어든다. 역사의 소재는 이런 개입들-다른 말로 이례적인 것들-이다.-64쪽

대중사회는 여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과거에 그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존재했던 세계를 상실한 인간들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생겨난 조직화된 삶일 뿐이기 때문이다.-125쪽

권위는 외부적 강제 수단의 사용을 사전에 배제한다. ... 권위는 설득과도 양립할 수 없다.-129쪽

권위주의 정부가 지닌 권위의 원천은 언제나 권력의 외부에 있고 그 권력보다 우월하다.-135쪽

권위는 권력과 대조적으로 그 뿌리를 과거에 두고 있었으며, 이 과거는 산 자들의 권력과 저력 못지않게 도시의 실제 생활 속에 현전했다.
... 권위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권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168,169쪽

정치의 존재 이유는 자유이며 그것이 경험되는 장은 행위이다. -199쪽

행위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동기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예측가능한 결과인 의도된 목표로부터 자유로와야만 한다. -207쪽

인간은 이전이나 이후도 아닌 행위하는 동안만큼은 자유롭다. 그 까닭은 자유롭게 되는 것과 행위한다는 것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209쪽

용기는 세계의 자유를 위해, 생활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정치에서 생활이 아니라 세계가 문제시되므로 용기는 정치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213쪽

모든 새로운 시작의 본질은 '무한한 비가망성(infinite improbability)'으로서 세계 속에 틈입하는 것이다.-231쪽

우리가 위기를 사전에 형성된 판단, 즉 편견으로 대응할 때 위기는 재앙이 된다. 그러한 태도는 위기를 더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위기가 제공한 현실의 경험과 성찰의 기회를 박탈한다.-237쪽

교육의 주체인 아이는 교육자에게 이중적 측면을 갖는다. 그는 자신에게는 낯선 세계에 들어선 새로운 존재이다. 또한 생성과정 속에 있고 한 사람의 새로운 인간이며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이다.-250쪽

교육은 새로움을 보전하여 새로운 것으로서 낡은 세계에 소개해야 한다. 세계는 그것의 행위가 얼마나 혁신적인가와 관계없이 , 차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는 언제나 낡아빠지고 파괴 일보 직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259쪽

우리는 교육의 영역을 다른 영역, 무엇보다도 공적, 정치적 삶의 영역에서 확실하게 떼어내야 한다. ... 권위의 개념과 과거에 대한 태도만을 교육의 영역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 이것의 첫번째 결과는 학교의 기능이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어떤 곳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명확한 이해일 것이다.-262쪽

대중사회는 문화가 아니라 오락을 원하며 오락 산업이 제공한 상품은 사회에서 다른 소비재와 똑같이 소비된다. -275쪽

대중문화는 대중사회가 문화물을 포획할 때 그 실체를 드러낸다. ... 문화는 물건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세계의 한 현상이다. 반면에 오락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생활의 한 현상이다. 어떤 물건이 지속되는 한 그것은 문화적이다. -278쪽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의 사물성은 그것의 형체속에 있으며 오직 예술 작품만이 외견이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다. 외견을 판단하는 올바른 기준은 미이다. ... 외견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과 물건 사이의 거리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물의 순수한 외견이 중요할수록 올바른 감상을 위한 거리가 한층 더 요구된다.-281쪽

문화는 행위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확보한 공영역이 본질상 나타나는 것이자 아름답게 되는 것인 사물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가리킨다. ... 말과 행위의 순간적 위대함은 그것에 미가 부여되는 한 세계 속에서 버틸 수 있다. ... 예술과 정치를 연결하는 공통의 요소는 그것들이 공적 세계의 현상이라는 점이다. -292쪽

논리의 건전성은 자아의 현전에 달려있고, 판단의 타당성은 타인의 현전에 달려 있다. ... 판단의 재능은 명확하게 정치적인 능력, 즉 자기자신의 관점뿐 아니라 그곳에 불가피하게 현전하게 된 사람들 모두의 시각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295쪽

모든 사람이 모든 중요한 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곳에서 진실을 말하는 삶은 그가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행동을 개시한 것이고, 또한 정치에 연루된 것이다.-337쪽

거짓말쟁이는 '사실'을 이득과 쾌락, 또는 청중의 단순한 기대치에 들어맞도록 자유롭게 날조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거짓말쟁이는 통상적으로 그럴듯함을 우군으로 가질 것이다.-337쪽

이야기꾼-역사가 또는 소설가-의 정치적 기능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용인하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진실성이라고도 바꿔부를 수 있는 이 용인으로부터 판단 능력이 나온다.-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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