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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 -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연습 ㅣ 푸른숲 필로소피아 13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푸른숲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와 미래 사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이 책은 아렌트의 글 8편이 소개되어 있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이 혼합되어 있는데, 아렌트는 과거를 이야기해도, 미래를 이야기해도 결국은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인 현재를 중시하고 있다.
무한한 미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행위의 순간이 시작되는 점이 바로 현재이며, 이 현재는 인간이 지닌 필멸성으로부터 인간을 무한으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결국 현재는 과거를 통해 결정되지도 않고, 미래로부터 규정당하지 않으며, 이 과거와 미래의 틈새에서 자신의 사유와 행위로 인해 무한을 향해 뻗어나가는 시간-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이를 사유를 통해서 또는 행위를 통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워낙 철학적인 내용이고, 서양의 문화,철학 전통이 이 글들에 녹아 있어서 읽기가 녹록치 않은 책이다. 아렌트의 글들이 대부분 쉽지 않듯이 이 글들도 쉽지 않은데, 서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아렌트의 독특한 현재관이. 카프카를 인용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그 부분이.
권위, 자유, 교육, 문화를 다루고 있는 글들은 그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연결고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 현재 교육의 위기를 말하며, 권위의 상실을 한탄하고, 문화의 상실을 이야기하는 우리 현실에서 이 글들을 곱씹을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교육은 세계를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아렌트의 말, 그리고 권위란 강제도 아니고, 설득도 아니라는 말, 그렇지만 이 권위는 과거에 기대고(로마의 경우), 외부에 의존한다고 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어떤 것에 기대어야 제대로 권위가 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법도, 전통도 많이 상실되었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권위를 찾으려는 노력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권위가 부정이 되었을 때는 아렌트의 말대로 정치행위를 할수밖에 없는데, 이 정치행위를 하는 장소가 공공영역이라면, 우리는 학교라는 공공영역에서 또하나의 규범, 권위를 만들어가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행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 자신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공적 영역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고,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타인과 만남을 가진다는 사실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이런 용기야 말로 행위의 기본 요소라는 생각...
권위, 문화, 교육이 위기에 처한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용기를 가지고 행위를 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럴 때 자유가, 즉 시작으로서의 자유를 우리가 갖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렌트는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그를 자유라고 보았고, 인류의 행위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필멸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았기에, 우리는 이들을 명심하고 용기있게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