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이미지
조셉 캠벨 지음, 홍윤희 옮김 / 살림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신화가 없는 민족이 없다. 아니 어쩌면 민족이란 개념은 신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같은 민족임을 확인하는데 신화만큼 좋은 요소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단군신화도 그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대는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고려시대가 아닌가?

 

나와 남이 구분되기 시작할 때, 나는 나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로 달려간다. 과거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현재의 일부이고, 나의 일부이니, 이 과거로부터 지금의 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신화는 그런 역할을 한다. 먼 옛날 이야기로 그냥 사라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나를 구성하고 있는 바로 내 곁에 있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나를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화를 알아야 한다.

 

아렌트의 말을 빌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현재는 무한한 과거와 미래를 유한한 출발점으로 삼아 무한한 우리를 만들어내는 행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이 발판 중의 하나가 바로 신화이고, 신화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신화들은 남과 구분되는 나를 만드는 요소로만 파악하지 않고, 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즉, 여기서 나를 개인의 나, 민족 구성원인 나로만 국한하지 않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 만드는 요소가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캠벨, 그의 신화 연구는 신화를 특정 민족만의 신화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신화는 우리 인간의 원형일 수 있다는 점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전혀 다른 곳에서 비슷한 심상이 나타나는 문제를 그는 추적하고 있다.

 

멧돼지, 뱀, 희생제의, 부활 등 세계 곳곳에 있는 신화들이 비슷한 점들을 지니고 있고, 이런 점이 우리를 공통인간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이 책에는 방대한 그림(사진)들이 나온다. 정말로 다양하고 많은 도상자료들이 읽는 재미를 더햊고 있다. 여기에 읽기 편하게(번역을 잘해서인지) 쓴 글도 어렵지 않게 이 책을 넘길 수 있게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한정되어 있던 우리들에게 오히려 인도신화부터 불교까지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더 친숙할 수도 있다.

 

그림들을 보면서, 글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꿈꾸어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까? 어느 특정한 종교에, 어느 특정한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의 관점에서 신화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첨예화되는 정보화시대, 신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하는 수가 있으나,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류가 과거로부터 지녀왔던 것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바로 지금 우리를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고,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가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로 첨단화되어도 신화와 같은 아날로그적인 요소들도 우리는 곁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아날로그적 요소가 더욱 첨단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를 인간이게끔 할테니 말이다.

 

분량도 많고, 다양한 신화들을 살피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실려 있는 그림들과 우리에게 친숙한 동양적 이야기 때문에 읽기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오히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꿈꾸는 자, 행복한 사람이다. 신화는 우리를 그런 행복한 꿈으로 인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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