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된 시를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밤의 분명한 사실들이라는데, 무엇이 밤의 분명한 사실일까?


  '염해 줘 / 제발 / 잠의 붕대로 / 하얗게 이 밤'으로 시작하는 이 시집 제목이 된 시 '밤의 분명한 사실들'


  '까만 밤 / 사막 / 휙 지나갔다 // 분명히 / 라고 누군가는 /또,'라는 구절로 끝난다. 


  밤은 지나간다. 분명한 사실은 밤은 왔다가 또 사라진다는 것. 시집 뒤 해설을 본다. 음유시인... 이 시집에서는 '소리'를 강조하고 있단다. 시는 눈이 아닌 입으로 읽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시를 읽어주는 사람. 얼핏 그럴 듯하다. 시집에 실린 시 중에 영어 표기를 발음기호로만 제목을 표기한 시도 있으니...


읽어라,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읽기 위해서는 언어가 읽기에 적합해야 한다. 낭송하기에 적합해야 한다. 물론 '봄의 히라프'라는 시는 읽기에 좋다. 읽으면서 가락도 느낄 수 있고.


하지만 이 시집 대부분의 시들은 시의 소리내기를 쓰고 있다지만 소리내어 읽기 힘든 시들이다. 먼저 눈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발음기호로 제목을 썼다고 하지만, 발음기호를 생각하기 전에 사람들은 발음기호를 눈으로 보고 의미를 생각한다. 


발음기호 역시 하나의 문자니, 문자를 눈으로 읽고 입으로 소리를 낸다. 소리를 낸 다음에야 비로소 의미가 머리 속에 들어온다. 아, 이 제목은 이것이구나 하게 된다.


그러니 낭송하기 좋은 시를 쓰려면 읽기에 편해야 한다. 남들이 모르는 언어를 써서는 안 된다. 영어 발음기호는 사실, 중고등교육을 배운 사람이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역시 착각.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발음기호만으로 되어 있으면 한참을 더듬거리게 된다. 여기서 소리가 중심인 시가 보자마자 입을 통해서 소리로 나오지 않고, 머리를 통해서 한창 궁리가 된 뒤에 소리가 된다.


읽기는 이만큼 다양한 과정이 있다. 한 과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인은 읽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를 통해서 우리는 읽기의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밤을 생각한다. 어둠이다. 보이지 않는다. 시각이 작동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 시간. 그러나 청각은 잠을 들지 않는다. 잠들더라도 시각보다는 한참 뒤에 잠든다. 밤은 시각보다는 청각이 활동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밤의 분명한 사실은 시각보다는 청각이 더 많이 작동한다는 사실. 이때 우리들은 온갖 소리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는 사실 아닐까 한다.


이 시집에서 읽기에 관한 시 한 편 인용하고 끝맺고자 한다.


비인칭 독서


  읽어라. 무엇을?

  멀리 닭 한 마리, 형체 없는 새벽을 운다.


  읽어라. 누구를? 먼동이 트는구나

  텅 빈 페이지 한 장 바람도 없이 일어서고 있다.


  읽으오.

  읽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청각장애인이 하도 떠드는 통에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암사역에 하차하면

  점자도서관에 가까워지니?


  분쇄된 활자를 백지 위에 쏟아 놓습니다. 흑색의 마취 혹은 각성의 가루들. 외눈박이처럼 한쪽 콧구멍을 막으면 더 황홀해질까요. 10분 뒤 당신은 죽은 새가 놓은 두 갈래 자갈길에 서 있게 된다. 흙을 주세요. 가엾은 새들. 어느 방향을 택해도 황무지, 황무지, 황무지가 펼쳐질 터.


  이름 감춘 자의 머릿속을 저벅저벅 걸을 수 있다. 소리는 멋대로 커지고 또 작아진다. 작가는 아무것도 돼서는 안 돼. 그녀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이름을 바꾼 자가 등장하지요. 그들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아무거나 돼 버리기 위해 당신의 맷돌은 짜르락짜르락 바람 위에 한 톨의 모래를 얹고 있습니까. 


진수미, 밤의 분명한 사실들. 민음사. 2012년 1판 2쇄. 5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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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8-25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인칭독서. 특이한 시네요. 좋은 페이퍼에 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점자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들과 시 낭송 수업을 했어요. 그 생각이 납니다. 그분들은 사실 24시간 밤에 살지요. 청각이 예민해진다고 일반적으로 여기지만 그만큼 둔해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항시 주어지는 시각이 오히려 무디어지듯이요. 시각장애인 중에 청력장애까지 겹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우리의 밤에 곤두서는 청각도 그런 의미로 무디어지진 않을지 경계해야겠네요. ^^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보고 듣는 것에 대하여.

kinye91 2022-08-25 13:18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 님 글을 읽고 청각장애인들도 청각이 둔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맞습니다. 항시 주어지는 것,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네요. 익숙함은 편안함과도 통하지만, 그만큼 예민성을 잃는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청각도, 시각도 무디어지지 않게 민감성을 지니면서 살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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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소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보다 더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하다. 그만큼 현실에서는 우연이 겹치고 겹치고 무어라 앞뒤가 연결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지만 이유는 모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 일이 생긴 건지,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이와 반대로 일이 술술 잘 풀릴 때가 있다. '어? 왜 이러지?' 하지만 이유는 딱히 찾을 수가 없다. 그냥 잘된다.


이게 인생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데도 소설에서는 복선이다 암시다 뭐다 해서 인과관계가 명확하길 바란다. 잘 밝혀지지 않으면 개연성이 부족한 소설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할 때가 많은데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세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내용이 전혀 다르고, 한 곳은 서점이고, 한 곳은 편의점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좋은 쪽으로. 요즘같이 팍팍한 세상에서 소설마저도 팍팍하다면 삶은 더 견디기 힘들텐데, 다행히 이 두 소설은 팍팍한 삶을 위로해주고 있다.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부드럽게 우리들을 감싸준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이 소설의 공간인 편의점 밖 야외 테이블처럼... 이곳은 겨울에도 야외 테이블을 없애지 않는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앉았다가 갈 수 있는 장소. 동네 느티나무 아래 평상처럼, 그렇게 편의점 앞에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겨울이면 온풍기도 갖다주기도 하니, 그야말로 사람들 마음 쉼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니, 이 편의점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하나하나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꼬인 관계들을 풀어나간다.


풀어나가기 전에 먼저 자신을 열어야 하는데, 자신을 열 수 있는 공간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또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있고, 들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들어줄 사람, 이 편의점에 전직 노숙자인 '독고'씨가 들어온다. 곰과 같은 외양의 그.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사람들 말을 들어준다. 사람들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조건, 자신의 말을 적게 한다. 다행히 소설 설정으로 노숙 생활을 하면서 그는 말을 하는 법을 잊었다가 다시 회복하는 중으로 말을 더듬는다. 


그러니 말을 할 때는 상대보다 느릴 수밖에 없고 상대는 그보다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응어리를 토해내는 일. 그것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편의점과 관계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간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다. 당연하게도 모든 관계가 다 좋아지지는 않는다.


이때 관계를 맺을 때 주의할 사항은 바로 '편의점'이라는 곳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편의점은 이용하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편의점이다. 그렇다면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편하게 가게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


손님이 편리할 수 있도록 자신들이 조금 불편해지는 일, 그것이 편의점이 잘 되는 일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해나간다면 관계가 파탄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가족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듣기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기. 들으면서 상대에게 공감하기. 그러면 상대도 마음을 열게 된다. 


열린 마음들이 관계를 맺으면 그 관계를 더 좋아진다. 처음에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해 감수했던 내 불편이 곧 편리함으로 바뀐다. 편의점도 마찬가지다. 주인(점원)이 조금 불편해지면서 손님들의 편의를 살린다면, 다음에는 주인(점원)도 편리해지는 상호 편리의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주인과 점원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왜 이 편의점이 주인과 점원이 가족같은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는지는 소설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불편한 편의점]은 노숙인 출신 점원을 중심으로 불편이 어떻게 편리로 바뀌어 가는지, 관계를 맺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이 따스하게 전개되고 있어서 더 좋고... 물론 소설 결말이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우연은 우리 현실에서는 더 잘 일어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불편한 시대, 이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면서 어떤 자세가 관계를 편리하게 하는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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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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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이다. 그러나 책에 실린 세월은 30년을 넘나든다. 긴 세월이 이 작은 책에 담겼다고 보면 되는데, 시인 최승자가 쓴 첫 산문집에다가 최근에 발표한 글을 합쳐 출판하였다.


몇 권의 시집을 읽었다. 시를 통해서 시인을 알 수도 있지만, 시인이 쓴 글을 통해서 시인을 알 수도 있다. 시인이 어떤 한 면만으로 규정되지 않기에 시인의 여러 모습을 산문을 통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시인이 되는 과정을 담은 글도 있고,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 글도 있고, 최근에 어째서 시집을 내지 못했는지, 본인이 정신질환을 앓아서 그랬단 이야기도 이 산문집에 있다.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시를 쓴다는 시인. 어쩌면 시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쪽이 더 울림이 클 수 있다.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아도, 의미 이전에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시. 마음 속에 자리잡고서 나가지 않는 시. 그런 시들이 있다.


어느 순간 팍 마음에 꽂히는 시. 그런 시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시인 자신도 잘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승자 시인이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에서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게 시인이 쓴 글을 통해 시인을 만나면서, 그가 쓴 시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직 외우고 있는 최승자 시는 없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들어하는 시는 제법 있었는데...


이 산문집에서 친구, 맹희(이름은 명희라고 한다)라고 하는 친구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다른 눈을 가진 아이. 어쩌면 바로 시인들이 그 맹희와 같이 다른 눈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으니...


반에서 분실사고가 생긴다. 범인에게 벌 주고 싶다. 아이들은 미꾸라지를 잡아 눈을 찌르면 범인도 미꾸라지처럼 눈이 멀 거라고 그렇게 하자고 한다. 많은 아이들이 그러자고 할 때 맹희는 반대했단다. 왜? 그럼 눈이 멀고, 눈이 멀면 보지 못하게 된다고. 그럼 슬픈 사람이 된다고. 좋지 못한 일이라고 했단다.(43쪽)


남들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 당하는 사람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을 지녔던 맹희만큼이나 시인들 역시 그러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시인들은 시를 통해서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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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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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일이 떠올랐다.


하나는 미국이 7월에 한국은 인신매매 방지 2등급(2류)국가라고 분류했다는 기사.


또 하나는 장애인차별쳘폐연대에서 벌인 지하철 타기 운동과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과의 토론.


왜? 이 책의 주인공 주디스 휴먼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고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장애인이었기 때문.


그가 살아온 환경이 우리나라와 겹치는 장면도 많았고, 그가 하는 말 중에 지금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 많지만, 우리가 민주주의의 선도국가라고 여기고 있는 미국이 장애인에 대해서 차별을 하는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특히 미국이 지니고 있는 오만함이 이 책에 잘 나와 있어서 다른 나라들을 인권 후진국이니 인신매매 방지 2등급 또는 3등급 국가니 규정짓는 그들 정부의 행태를 인식할 수 있어서.


유엔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을 제정해서 각 나라에서 비준을 해서 실행을 하는데 미국은 오만하게도 비준을 하지 않는다. 이 책 저자인 주디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비준을 실행하도록 움직였지만 결국 비준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은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자신들 나라에는 장애인이 없는 것처럼. 


미국은 일반적으로 유엔의 협약을 비준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 없이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84쪽)


현재까지 177개국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2022년 2월 현재 184개국이 비준했다-옮긴이) 우리도 머지 않아 비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때 저자가 말하는 현재는 2017년이다. )(291쪽)


이런 나라가, 수많은 총기사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나라가, 경찰이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총을 쏘아 죽이는 나라가, 성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많은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둥, 인신매매 방지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재단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겠다고 하니,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나라다.


이런 태도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첫번째 말한 기사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주디스 휴먼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교육, 이동, 생활을 위해서 투쟁했던 과정때문에 떠올랐다. 


지하철 타기 운동이 과격하다고, 왜 출근시간에 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방식은 비문명적(비문명이라는 말은 불법이라는 말을 에둘러 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불법보다는 비문명이 더 안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그렇다면 문명은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고, 또 그들을 보지 않으려 해도 소리내지 않고, 보이지도 말아야 하는 걸까. 법적인 행동, 그들 말대로 문명적인, 문화적인 행동을 아무리 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으니, 소리를 들으라고, 좀 보라고 하는 행동 아닌가)이라고 몰아세운 전 국민의힘 당대표도 있었다. 그가 토론에 참여하기 전에 그들이 우상으로 삼는 미국에서 벌어진, 그리고 그런 운동을 이끌었던 사람이 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읽었다면 비문명 운운하는 말을 할 수 없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애인들이 자신들만을 위해서 무엇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다른 사람과 같이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인데... 그 목소리가 전달이 안 되니 눈에 보이는 운동을 하는 것 아닌가.


이 책에서 주디와 그를 비롯한 사람들이 권리를 얻기 위해서 하는 일도 그것이다. 이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 눈 앞에 나타나야 한다.


한데 나타날 수 있는 방법이? 당시로서는 불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눈 앞에 나타날 수가 없으니... 도로를 점거하는 일, 차를 세우고 휠체어에서 내려 버스에 기어올라가는 일, 연방정부 건물을 점거하여 자신들과 대화하게 하는 일, 의사당 건물까지 80여 개 되는 계단을 온몸으로, 남들은 오래 걸려야 몇 분 걸리는 그 계단을 몇 시간씩 온몸을 써가며, 다쳐가며 올라가는 일. 그렇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런 보여줌, 나타남에 불법(비문명) 운운하면, 그건 아예 눈에 띠지 말라는 말이다.


당신들은 장애인이니까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장애인이기 이전에 그들도 사람이다. 주디가 어렸을 때 휠체어를 타고 친구 집에 가서 벨을 누르지 못하고(계단이 있기 때문에) 문 앞에서 친구를 불러 함께 놀 때, 그때 어린아이들은 편견이 없었다. 주디는 본래 그런 애다. 그냥 함께 놀아준다. 못 하는 놀이가 없다. 그런 주디에게 낯선 남자애가 '너 어디 아프니?'라고 묻는다. 


자신 앞에 나타난 낯선 존재, 다름을 아픔으로 치환해서 묻는다. 다르다와 아프다. 아픈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나하고 함께 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때 받은 충격. 주디는 그러나 이 충격을 이겨나간다. 학교 입학을 거부 당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교사 자격증 수여를 거부당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꾸 그들 눈 앞에 나타난다. 혼자 힘들면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함께 그런 상황을 바꿔 나간다. 그렇다. 자꾸 보이게 해야 한다. 보게 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혼자만 끙끙 앓지 말고, 외쳐야 한다. 보여야 한다. 그러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기에.


장애인들만 그렇게 모이지 않는다. 비장애인들도 함께 한다. 장애인이 잘살 수 있는 사회는 비장애인도 잘살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힘들게 사는 사회는 장애인들에게도 힘든 사회이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한다. 이게 바로 문명이다.


또 장애인이라고 한 범주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장애인에도 청각, 시각, 지체, 인종, 성적지향성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래서 장애인 운동은 그런 스펙트럼을 존중하고 함께 해야 한다. 그들이 지닌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게.


연방정부 건물을 점거했을 때 장면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장애인들이 그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는 장면.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자기 말을 하는 장면.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 소통의 길을 열어가는 장면들. 여기에 비장애인들까지 함께 해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그런 모습.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들은 불법을 저질렀어. 그런 방식은 비문명적이야. 그러면 안 돼. 아무리 의견이 정당해도 방법이 불법(비문명)이면 안 되는 거야. 하면 될까? 그렇게 하기까지 들어주기나 했나? 그들의 존재를 보아주기나 했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저자는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오마바 행정부에서도 일했다. 정책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실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한 번에 되지 않는다고, 먼 길, 오랜 시간이 걸리 거라고. 그러나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기에.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포함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미국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이 모든 것은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양한 토론과 회의를 거치며, 시간이 걸리는 견제와 균형의 방식을 따르기를 민주주의에 요구한다. 의사 결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실을 검증하고, 납득할 만한 객관성을 보이며, 내 말을 듣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정부를 원한다. (298쪽)


이 말,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해주고 싶다. 특히 집권을 한 사람,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불통 또는 자신의 주장을 밀고나가는 것이 소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글에서 미국을 우리나라로 바꾸면 지금 우리나라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민주주의를 시민의 힘으로 이룬 나라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정부를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꾸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디의 다음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사회 안에서 전체 집단이 다른 사람들부터 분리될 때 민주주의의 구조는 약화된다. 서로 거리를 두고 분리되다 보면 이해와 공감에 실패하고, 궁극적으로 불의를 초래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상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나라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차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면 불평등과 가난의 책임을 사회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게로 쉽게 돌리게 된다. 서로를 비난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행동을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300쪽)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장애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나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디가 한 말, 혹 앞이 안 보인다고 희망을 놓으려는 사람에게, 솔닛의 말처럼 희망은 어둠일 수도 있으니..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종종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300쪽)는 주디의 말도 마음 속에 새겨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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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머리는 지끈거리고, 날씨는 더욱 몸을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박성준 시집을 읽었다.


  '잘 모르는 사이' 


  현대인을 이렇게 표현하면 딱 맞겠단 생각을 하던 찰나에 수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반지하 사람들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그래도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올라왔는데... 그 주인공들의 삶이 얼마나 신산한지, 고지대 넓은 잔디를 지니고 집에 윗층, 아래층, 지하까지 갖추고 사는 사람들과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삶의 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비가 쏟어지는 날, 하염없이 반지하 방으로 가던 내리막길... 인생이 그렇게 내리막길로 향하는구나 하면서 안타까워하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래도 그들은 살았는데... 이번 비로 인해 반지하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대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인데... 책임이 그들에게 있지 않고 우리 사회에 있는데... 누구는 비로 인해 침수가 되어도 '아, 이거 심각하구나'하는 말뿐일 때,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달린 침수가 되고 있는데, 그 거리를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멀다. 정말 멀다. 단순히 높고 낮은 곳에 산다는 차이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가난하다는 문제를 넘어선다. 부유와 가난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가 공동체 아닌가. 그렇다면 가난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하지 않나.


옛날 최부잣집 가훈에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이 있었다는데, 한 개인도 그렇게 행동하는데, 나라를 책임진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 재난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피해를, 가장 심한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어야 하지 않나.


절대적 평등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나? 하긴 법에는 그런 말들이 없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법 적용은 문구대로 된다. 그것이 평등일까? 요즘 평등과 공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자는 말이 나온다.


무엇이 공정한 제도일지, 무엇이 진정한 공정이고 평등일지, 과연 공정과 평등은 자유와 배척이 되는지...


비로 인해 박성준 시집에서 눈에 들어온 시가 있다. 제목이 살벌하다. '대학살'이다.   


대학살


  공정한 제도 속에서 공정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 공정하지 않던 날씨는 어김없이 비를 뿌렸다 장마였다 뻔뻔스럽게도 불변하는 것들은 요점 정리가 쉬웠고 그럴 만하겠다고 생각한 건강은 조합원들을 몸을 몹시 공격했다


  병은 본래 숨기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근대적인 교육이 처음 이런 작업장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잊어버린 것들이 순해 보였다


  불이 꺼진다


  최후의 목적은 농성이 되었다


박성준, 잘 모르는 사이. 문학과지성사. 2016년. 79쪽


'대학살'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여기에서도 이 시집 제목이 된 '잘 모르는 사이'라는 말을 적용하고 싶어졌다.


잘 모르면 이것이 왜 대학살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죽어갔는지... 폭우가 쏟아지는 현장에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을 잘 모른다. 인식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를 낳고, 마음의 거리는 행동의 거리를 낳는다. 거리는 결국 알려고 하지 않는 무심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다. 그렇게 모르는 사이로, 무심함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사회는 공동체에서 멀어진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기계가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관심을... 타인에 대한 공감을... 그래서 잘 모르는 사이라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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