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
노한동 지음 / 사이드웨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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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렬하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일을 안 한다고? 무능하다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아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참 열심히 일한다. 다만 그것이 국민들의 생활 향상과 별 관계가 없어서 그렇지. 또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참 유능하다. 그것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발휘되어서 그렇지.


공무원들의 안위를 위해서 발휘되는 부지런함과 능력은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해야할 일,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실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필요한 일은 미루고, 하지 않아도 될 일, 이 책에서 말하는 가짜 노동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관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관료라는 말을 자기 집단의 정체성에 빠져 다른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오로지 시키는 일만 하는, 그런 집단을 의미하는 쪽으로 쓴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관료였다. 철저한 관료 사회. 무사안일. 아니 복지부동이라고 해야 한다. 그들은 창의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


저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책임은 큰데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일을 잘못했다가는 철밥통이라는 공무원들도 법원에 가기 일쑤다. 그러니 누가 나서려 하겠는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온갖 조항을 들이대어 미적미적 일을 미룬다. 그러다 보면 자신은 다른 자리로 가게 된다.


고위 공무원들이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동한다는 사실, 그래서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길러지기 힘든 구조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는데... 그것이 비리를 막기 위한 방법이고, 승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겠지만 공무원들을 전문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관료로 남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장,차관들이 겨우 1,2년하고 물러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눈에 띄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 일이 눈에 띈다기보다는 국민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고려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전문성이 있으면 일회성 정책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왜냐고? 결말이 뻔히 보이니까. 그러니 선심성 정책이 아닌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공무원 사회의 구조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여 말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구조가 그런 쪽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공무원 개개인의 품성을 문제삼기보다는 이러한 구조를 개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지금처럼 가면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는 관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변화 없이 하는 일만 하는,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 맞춰갈 수 없는, 그러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을 낸다고 문서로는 늘 보여주는 그런 사회. 


정말 국민을 위하는 공무원들이라면 그들을 우리는 관료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 사회 역시 관료 사회가 아니라 공직 사회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공적으로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 국민들의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유능한 사람들이 모인 곳, 공직 사회.


이 책의 저자는 소위 고위 공무원이었다. 안정된 직장이었다. 게다가 4급 서기관으로 승진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었다. 자신의 삶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문제를 이 책에 풀어냈다.


자신도 몸담았던 공직 사회가 관료 사회로 지속되면 안 된다는 생각. 그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게 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이대로 가다가는 공무원 사회는 공직 사회가 아니라 관료 사회로 굳어질 수 있다고, 하여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이 책에서 솔직하게 풀어냈다. 왜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지를.


사실 유능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하여 제도와 구조 개편부터 시작하여 공무원들에게 적절한 책임과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무엇보다 이제 새정부의 장차관들이 취임할 것이다. 그들이 먼저 이 책을 읽으면 어떨까? 한 부서의 장들이 공무원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래야 그들 역시 선심성 정책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고 공무원들이 무능하다는 생각, 일을 열심히 안 한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들은 유능하다. 또 열심히 일한다. 다만 방향이 잘못되었다. 그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유능한 열심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발휘된다는 사실. 그러면 공무원 사회는 강고한 관료 사회가 될 수밖에 없음을... 


공무원 사회는 관료 사회가 아니라 공직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 역시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서만 유능하고 부지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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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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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7월이 시작하자 무더위도 함께 왔고, 그냥 참을 만하다가 아니라 체온보다도 높은 온도가 되어 일하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목숨을 잃기도 한다. 덥다, 참아라. 이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더위를 참으라고 하는 사람은, 그런 더위를 겪지 않은 사람이다. 자신은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폭염 속 노동 시간 중에 휴식 시간을 더 많이 주라는 말에도 반박하는 사람은, 정말, 그런 더위에 나가서 일해봐야 한다. 자신이 과연 그 더위 속에서 한 시간이라도, 아니 십 분이라도 견딜 수 있는지...


이런 폭염이 자연스러울까? 자연이라는 말과 같이 이런 폭염은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인간이 지구를 변화시켰으니까. 기후 위기, 기후 재앙이라는 말 또는 인류세라는 말이 통용이 될 정도로 기후 변화에 인간이 끼친 영향이 크니까.


이렇게 기후 변화에 인간도 고통을 받는데, 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생물들은 어떨까?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면 바다 생물이 살아가는 서식지가 변하게 되고,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바다 생물들이 폐사하는 경우도 많은데...


기후 변화는 인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구에 사는 생물들도 함께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문제까지 고민할 수 없다고, 내 코가 석 자라고. 아니, 그건 나만이 아니라 함께 겪는 문제니까.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겪는 문제는 곧 인간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정보라 소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처음 제목만 보고는 외계인 침공을 다룬 소설인가 했다. 그런데 아니다. 바로 지구 환경 문제다. 물론 외계 생물도 등장한다. 말하는 문어, 대게 등이 등장하니까. 이들을 외계의 권력자가 지구의 권력자와 결탁해서 팔아넘기고 있다는 설정이기도 하니까.


이는 지구라는 생태계에서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들, 또 다른 존재들을 이용하는 것에 빗대었다고 봐도 좋은데...


이런 생명체들을 등장시켜 지구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 이 소설이다. 그러니 외계 침공이 아니라, 인간이 지구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는지, 또한 소수의 권력자가 다수의 사람들을 어려움 속으로 빠뜨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설정도 참신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참으로 경쾌하다. 무거운 주제인데 가볍게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너무 진지하게만 접근하면 사람들이 외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방식으로 소설을 쓴 것은 읽기에도 좋고, 그래 이건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니 좋은 서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먼저 읽은 [아무튼, 데모]가 이 소설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책이 머리 속에서 겹쳐지면서 이 소설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고나 할까. 


소설은 허구라고 작가의 삶과 일대일로 연결지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튼, 데모]에서 읽었던 작가의 삶이 떠올라서 싱긋 웃음이 떠오르기도 한다. 대게들에게 연대해서 저항하라는 남편의 말. 그렇지. 약자들은 연대해야지. 저항하지 않으면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지. 그래서 '고래'에서는 우리나라 현실 문제가 나오게 되지. 고래들이 다시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우리가 바다를 생물들이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문제는 바다를 오염시키는 존재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모습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 


이 연작소설들은 그런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약자라고 해서 권력자에게 길들여지지만은 않는다는 것. 약자들은 연대하고 저항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그리고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야 함을.


내용은 무겁지만 전개는 가볍다. 이 가벼움이 오히려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물론 환경 문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가 함께 나온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바다 생물들을 통해서 보여주며, 각 소설들이 모두 행복하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이는 비록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음을,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을 조금 바꾼다. 지구 생물체는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 지금 조건이 나쁘더라도 웃으며 이 환경을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저항할 것이다. 권력을 비판하는 데는 진지함도 좋지만, 때로는 웃음이 더 큰 역할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웃음은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고, 우리를 하나로 엮어줄 것이니. 


그래서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웃음이 결국 세상을 바꿀 때까지. 이 소설의 웃음도 그런 역할을 하겠단 생각을 한다.


혹시 이 소설을 읽고 아직 [아무튼, 데모]를 읽지 않았다면 그 책을 꼭 읽길 바란다. 그러면 이 소설을 더 재미있게 느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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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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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관한 한 편의 서정시같다. 서정시? 마음에 와닿기는 하는데, 무어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나는 감동받았어. 하지만 어떻게 설명은 하지 못하겠네. 그냥 좋아. 이 정도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


로벨리 책을 몇 권 읽었다. 최근 과학계에서도 한참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있는데, 고전물리학도 잘 모르는 처지에, 양자물리학의 첨단에 서 있는 학자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해한다고? 그렇지도 않다. 무언가가 잡힐 듯한데, 개념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로벨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흐릿하다.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라고 해야 하나. 엔트로피가 낮으면 단순하니, 명확할 수 있겠다. 바로 과거가 그렇다고 한다.


복잡한 일들을 정리해서 단순화한 것. 그것이 과거 아닌가. 그래서 과거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쉽다고 한다. 반면 미래는?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혼란 상태다. 혼란 상태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 엔트로피는 증가하지 감소는 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는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계속 복잡하고 혼란한 상태. 그러니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 할 수밖에. 과거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과는 달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번역했는데, 이는 시간이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절대적인 시간은 없다고 하는 것. 따라서 시간은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선을 따라 곧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고 하는 것. 이렇게 혼란한 지점에 있는 것들을 자신과의 관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시간이라고 나는 이해했는데...


시간은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라고... 관계라고. 그러니 언제든 변할 수밖에 없고, 고정될 수가 없다고. 따라서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은 없다고. 다만 다양하게 맺어진 시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알기 위해서이지 않은가. 우리를 알기 위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데, 시간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이 관계가 사건이고, 이러한 사건들이 시간이라고 하면 될 테니까. 이 책에서 음악을 예로 들고 있기도 한데, 음악에서 각 음표들을 생각한다. 음표들이 실체인가? 그 음표가 홀로 존재할 때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아니다. 각 음표들이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음표들은 각자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음표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특성을 발현한다. 즉 음표들의 관계가 선율을 만들어낸다. 같은 음표는 없다. 관계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시간도 그렇지 않은가. 음표들의 관계를 사건이라고 하면, 시간은 사건이고, 인간은 이러한 사건들의 총체인 것이다. 사건이라는 말이 좀 마음에 걸린다면 관계라고 하자. 사건이 바로 관계니까. 따라서 이 책은 시간을 통해 인간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주 속 인간...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피상적으로 그렇게 그냥,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관계가 없다면 나란 존재는 의식도 하지 못할 것이다. 뇌의 작용 역시 관계니까. 그러니 관계가 끊기는 순간이 죽음이고, 이는 내게는 사건의 끝이니 시간의 끝이기도 하겠다. 그 이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여기까지 나아가면 좀 지나친가? 


아무튼 이 책은 한 편의 서정시와 같다. 마음에 드는데,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고, 또 무어라 설명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울린다. 좋다. 


기억해 둘 만한 문장들...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 - P17

눈으로 보기 전에 이해하는 능력은 과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 P19

모든 물체는 자기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지구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평지에서 시간이 더 많이 지연되고, 산에서는 덜 지연되는 이유는 산이 지구의 중심과 좀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P20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해 있는 물체보다 더 짧은 기간을 경험한다. 시계의 초침이 덜 이동하고 식물이 덜 자라며, 아이들은 꿈도 덜 꾼다. 움직이는 물체에서 시간은 줄어든다. - P49

시공간이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시공간이다. - P83

양자역학 덕분에 얻은 발견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인데,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granularity과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이다.

- P 89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P105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 P106

‘물리적‘인 세상이 사물로, 존재자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한다. - P107

양자중력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 P127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 P161

세상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것은 에너지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낮은 엔트로피다. - P 167

우주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무질서해지는 과정이다. - P172

미래가 아닌 ‘과거의 흔적만‘ 있는 이유는 과거에 엔트로피가 낮았기 때문이다. ...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엔트로피가 낮았다는 것뿐이다. - P173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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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오즈마 공주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3
L. 프랭크 바움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세계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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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를 계속 읽으려 했다가, 어느 순간 끊겼다. 다시, 시작. 서두르지 말자. 그냥 천천히 생각날 때마다 읽는 것도 좋다. 한 권 한 권의 내용이 독립적이니까. 물론 등장인물들이 겹치기도 하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다시 찾아보면 된다.


이번에는 도로시가 등장한다. 2권에서 도로시 없이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아마도 당시의 어린 독자들은 도로시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어린이들은 나에게 이런 의견을 보내 왔습니다. "도로시를 다시 오즈의 나라로 가게 해주세요."라는 작가의 말이 있으니.


그렇다. 오즈의 마법사에 도로시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어린 독자들은 실망하고 말리라. 게다가 역시 어린이였던 오즈마 공주가 2권에 나왔으니 오즈마 공주와 도로시가 만나는 장면도 보고 싶어할 테고.


이런 독자들의 바람을 작가는 무시할 수가 없다. 작가와 독자의 교감을 통해 다음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아무 이유도 없이 도로시를 다시 오즈로 보낼 수는 없다. 무언가 사건이, 1권에서처럼 토네이도와 같은 강한 바람이 분다든지 해야 하니, 이번에는 바다에서 표류하게 한다.


바다, 파도, 표류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설정을 할 수도 있고. 이렇게 도로시는 헨리 아저씨가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길에 함께 가다가 폭풍우가 몰아칠 때 다시 모험에 나서게 된다. 이번에는 암탉과 함께다.


이 암탉이 큰 역할을 하는데, 작은 존재가 커다란 역할을 하니, 이 책을 읽은 어린 독자들은 작은 생명체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달을 것이다. 암탉의 이름을 '빌'이라고 한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암탉인데 '빌'이다. 빌은 주로 남자 이름이니, 당시 남녀가 분리되고 서로 다른 이름을 지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암탉 '빌'은 이상에게 보일 수 있다. 도로시가 그 점을 지적하는데, 암탉 자신은 그게 뭐 어떠냐는 식이다.


도로시는 '빌리나'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지만, 빌리나든 빌이든 암탉은 암탉일 뿐이다. 하니, 성별에 따른 고정 관념에 대해서 토론할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할 수 있고... 여기에 양철나무꾼과 비슷한 기계를 만나기도 한다. 태엽을 감아줘야만 움직이는 기계 틱톡.


이들이 만나 모험을 하는데, 여기에 오즈마 공주가 위기에 처한 이브 왕국을 구하기 위해 오고, 1권에서 만났던 도로시 친구들이 모두 등장한다. 그러니 작가는 어린이들의 바람을 3권에서 이뤄주고 있다.


이들이 만나 마법을 부리는 놈 왕국으로 간다. 이브 왕국의 왕비와 왕자, 공주를 구하러. 여기서 펼쳐지는 모험, 그리고 해결책.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도로시. 


이 소설을 읽은 어린 독자들이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할 수 있을까? 아니다.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환상 속 모험들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환상 속 모험을 즐기는 이유는 바로 현실 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자신들의 바람을 상상 속에서 이루려는 것, 이것이 어린 시절에 지니는 자세 아닌가. 그렇다고 상상 속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된다. 현실에서는 현실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놈 왕국에서 도로시가 얻은 마법의 허리띠가 오즈의 세계에서는 작동하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명확하게 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현실의 법칙을 따라야 하지만, 때로는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다시 만들어내는 시기. 그러한 시기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 작가. 하여 동심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자. 


가끔은 현실을 떠나 환상 속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도로시와 함께하는 여행을 하는 것도 현실을 더욱 풍요롭게 살기 위한 디딤돌이 될 테니까. 다음에 4권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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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을 읽다가 왜 시인이 이런 말을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검색을 해보니 시인이 병으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랬구나,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구나. 병으로 고생을 한 것이 이 시집에 영향을 주기도 했겠구나 하는 생각.


 '서른살 무렵,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카프카가 죽은 나이까지는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내 소원을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다. 카프카가 쓴 것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살게 해달라는 이야기로. 그리하여 나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고, 어쩌면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시인의 말'에서. 114쪽) 


  하아, 이렇게 해서 또 카프카를 만나는구나. 시집에 실린 시 중에 '단식하는 광대'라는 시가 있는데,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카프카의 '단식 광대'가 떠올랐으니... 


카프카가 쓴 것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라는 말, 카프카 작품은 대부분 미완성이다. 과정이다. 그러니 시인은 영원히 살게 될지 모른다고 했는지도. 이는 자신의 작품을 딱 떨어지게 완결하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상태로 놓아두겠다는 것.


시인은 고정된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미정형을 정형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고 싶다는 바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시집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현실에 마음 아파하는 시들도 꽤 있으니, 현실을 생각하면서 읽어도 좋다. 그러다 이 시 '어떤 보병'을 읽으며 시인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


  어떤 보병


글자들의 사막을 지나

도시들의 시궁창을 지나

별과 얼음 녹은 진창길을 지나


  여름

    가을


너덜거리고 찢어진 마음의 끝단이

어느 검고 부드러운 가죽 장화 속으로

몰래 

기어들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벗기 싫어

밤새 알지 못하는 어느 주홍빛 막사 앞에서

나는 보초를 섰습니다


흠뻑 젖은 외투 위로

가벼운 밤눈이 또다시 내리고 있습니다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창비. 특별한정판 1쇄. 2023년. 57쪽.


시인은 이렇게 보초를 서는 존재. 너덜거리고 찢어진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과 함께 하는 존재. 그러한 존재인 시인은 세상을 가장 낮은 곳에서 본다.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곳까지 자신의 눈을 낮춰 이제 그 눈으로 세상을 본다.


하여 시인의 눈은 높고 크고 아름다운 것들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낮고 작고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존재들도 본다. 그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훔쳐가지 못하게 지키는 보초가 된다. 자신은 흠뻑 젖을지라도...


이 시를 읽고 'Bucket List -시인 김남주가 김진숙에게'를 읽으면,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가장 낮은 곳에서 보는 눈을 가진 시인이 높은 곳에 올라 있는 김진숙을 본다. 그 거리를 메울 수 있다면, 시인은 기꺼이 그를 지키는 보초가 되리라. 그래서 시인 김남주를 통해 김진숙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많은 시들이 가슴에 와닿았는데... 좋다. 시인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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