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편지 -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카프카 전집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세훈 외 옮김 / 솔출판사 / 2002년 11월
구판절판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억제하기엔 외부 세계는 너무 작고 너무 솔직하고 너무 정직합니다.-83쪽

얻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이 회전하는 지구 위에서 더 많이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84쪽

임의적인 것도 필연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93쪽

갈망은 절망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106쪽

평온함과 강함은 불안과 허약함이 필요로 하는 곳에 머물러야 할 운명인 것 같습니다.-124쪽

최고의 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135쪽

낯선 사람들과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만족스런 첫 결과는 - 순간적인 만족이긴 하지만 - 영원히 강요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손가락 끝까지 부여받은 책임감의 대부분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156쪽

그대가 있다 해도 나는 내 소설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글쓰기를 통해 나는 삶을 붙들고 있고 그대가 서 있는 배를 붙들고 있으니까요.-279쪽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과도하게 열어놓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적인 교제에서 마음을 극도로 열어놓거나 헌신을 할 때는 자신이 그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다고 느끼게 됩니다. -311쪽

기호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지요. 모든 것은 기호로 채워져 있지만, 우리는 기호와 마주칠 때에만 알아차릴 수 있지요.-338쪽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녀와 함께도 살 수 없다."-500쪽

결혼이 요구하는 것은 인간적인 일치, 즉 모든 의견들의 근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입니다. 이러한 일치는 검증할 수 없고 느낄 수만 있으며, 따라서 인간적인 결합의 필연성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는 조금도 방해받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우리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필연성이 없는 인간적인 결합에 의해서만 방해받습니다.-530쪽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595쪽

나를 방해하는 것은 실제적인 사실이 아니라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 즉 행복에 대한 두려움이며 더 높은 목적을 위해 나를 괴롭히는 욕망과 명령입니다.-615쪽

손실을 뚜렷이 의식하면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결혼생활에서는 아내와 남편이 인간적인 본질에서 서로 동등해야 통일성 속에서 자립적이 될 수 있습니다. -641쪽

인간은 그 현재 모습을 받아들이거나 현재의 모습대로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인간을 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본질을 방해할 뿐이지요.인간은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 만큼 개별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은 하나의 전체입니다. 그대가 한쪽 끝을 잡아당기면 그대의 의지와는 달리 다른 쪽 끝도 움찔하고 움직입니다. -643쪽

직접적인 경험은 전체적인 조망을 방해합니다. -658쪽

칼은 단지 앞쪽만 찌르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서 뒤쪽을 찌르기도 합니다.-9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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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주는 학교 우리 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찾아 2
커스틴 올슨 지음, 노승영 옮김 / 한울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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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겨울방학 중.예전 같으면 학생들이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비비꼬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할 때인데...집에서 몇 발짝만 나가면 학원가가 있고, 학생들은 오전에서 오후 또 밤까지

이 학원 거리에서 쏟어져 나온다.

 

방학맞이 특강이란다. 학교에 다닐 때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뒤떨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관념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다. 이런 모습에 학교는 책임이 없을까?

 

오히려 아이들이 학원에 목매달고 있는 이 현실은 학교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원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잔다고는 해도 아직도 학교가 삶에서 중심이고, 학원은 학교를 보조하는 곳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면, 이런 학원 문화에 대한 책임에서 학교가 벗어날 수는 없지 않을까.

 

즉, 학교에서 받은 상처를, 특히 학습면에서 받은 상처를, 학원을 통해서 치유하려고 하지 않나 하지만, 학교에서 학습으로 상처를 받은 학생은 학원에서는 오히려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강화하고 만다. 학교보다도 더 심하게 우열반으로 나누어 학생들을 편가르는 쪽이 학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역시 학생들에게 상처를 준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학원이 성업을 이루고 있겠지. 만약 학교가 학습만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학생들을 평가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학생들을 줄세우고 편가르지 않았다면 이렇게 학원이, 그것도 보충학습 학원이(말이 보충학습이지 사실은 선행학습 학원이다. 아이들은 미리 한 학기, 한 학년, 심하게는 두세 학년 분을 미리 배운다.) 이렇게 성행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상처를 사람들은 쉽사리 외면한다. 상처는 있는데, 없는 척한다. 또는 별 것 아닌 척 한다. 분명히 별거인데 말이다. 그래서 상처를 직시하지 못하기에 치유를 하지 못한다. 상처는 세대를 통해서 계속 덧나고 있다.  곪아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세계 최장의 공부시간을 자랑하면서 세계에서 우수한 학업능력을 뽐내고 있지만, 학업에 대한 만족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속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은, 미국의 학교 교육 실상을 그려내고 있는 이 책보다도 심하다.  

 

이 책에서도 상당히 심하다는, 이런 교육이 앞으로 몇 십 년만 지속되면, 아니 몇 년만 지속되어도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보다 더 심한 우리나라 교육은?

 

하여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학교가 상처를 주는 것,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제일 먼저 학생들, 자신의 처지를 판단해야 한다. 남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그 다음 부모들. 자신들이 겪었던 학교 생활을 철저하게 다시 검증해봐야 한다. 반추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학교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한 판단이 선 다음에 아이륻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이 보인다.

 

학생과 학부모가 이렇게 변해도 최종적인 열쇠는 교사가 쥐고 있다. 아무리 사방에서 교사를 쥐고 흔들어도 학생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교사다. 학교의 구조가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구조라 하여도,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도 역시 교사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교의 구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방법에 대해서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언제까지 외면만 할 거냐고. 이제는 학교를 제대로 보자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자고... 그래,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온 말처럼, '변화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학부모는 학부모로서(우리나라 어떤 광고에서는 학부모와 부모를 대조하면서 학부모가 되겠느냐 부모가 되겠느냐 하지만, 학부모가 제대로 교육에 대해서 바라본다면 학부모와 부모는 분리되지 않는다), 또 교사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

 

이 책이 상처주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이 상처가 삶에서 아름다운 무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함을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교사의 자세, 모습에 대해서 쓴 시들이다. 교사들, 다들 이런 교사가 되고 싶어한다. 이 시에 나온 선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고 싶어한다.

 

어릴 때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 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나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엇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해직교사 신작시집, 몸은 비록 떠나지만, 실천문학사, 1989년. 9-10쪽,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전문

 

그래서 이런 선생님은 아이들을 하나로 보지 않고, 하나하나로 본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바라보는 선생님, 이 책에서 말하는 상처주는 학교에서 치유자로서 존재하는 선생님일 것이다.

 

개학 첫날

 

여름방학 끝낙 다시 출근했더니

등꽃이 먼저 반겨주더군

다른 놈들은 이미 서너 달 전에 피었다 졌고

휘감아 올라간 넝쿨마다

기다란 씨앗주머니들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어쩌자고 뒤늦게 몇 놈

수줍게 고개 내밀고 있더군

 

늦된 게 부끄러운 줄 알기는 아는 모양

무성한 이파리 틈새에 숨어 있는

보랏빛 꽃송이를 보고 있자니

꼭 그런 놈들이 떠오르더군

 

수업시간 내내 졸다가 끝날 무렵

엉뚱한 질문이나 해 대는 놈

남들 다 해오는 숙제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내는 놈

몇 박자씩 꼭 늦는 놈

 

하지만 그런 놈들도 꽃은 꽃 아니냐

남들보다 서너 걸음 뒤졌지만

언젠가 한번은 꽃 피는 인생 아니냐

 

개학 첫날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군

선생 노릇 다시 돌아보게 되더군

( 박일환, 푸른 삼각뿔, 내일을여는책, 2001년. 94-95쪽. '개학 첫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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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주는 학교 우리 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찾아 2
커스틴 올슨 지음, 노승영 옮김 / 한울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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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주는 상처란 무엇인가

. 일상에서 배움의 기쁨을 잃어버린다.
. 자신이 똑똑하지 않고 배움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 자신의 능력이 정해져 있으며, 노력과 조언, 자기 이해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자신이 그저 그런 보통 아이라고 생각하여 낙담한다.
. 학교에서 창피스러웠던 기억이 아프게 남아서 매사에 불안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 과거에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관심을 못 받아서 교사에게 만성적이고 습관적으로 분노를 느낀다.
. 학교에서의 경험 때문에 자신이 지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남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 도전을 꺼리고 주어진 과제만 간신히 끝내고 싶어한다.
. 정답에 집착한다.
. '똑똑하다/멍청하다', '재능이 있다/없다'와 같은 이분법적 범주로 자신과 남들을 나누려 한다.
. 어른이 되어서도 자녀나 학생을 대할 때 교육과 학습에 대해 극단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44쪽

학교가 주는 상처는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자신이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학교생활을 잘하는 데 필요한, 따라서 삶을 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한다.
. 자신의 생각이 가치가 없거나 타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평균을 밑돌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자신이 결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노력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다.
. 배움에 대한 기쁨과 용기를 잃는다.
. 자신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자제력을 잃고, 어려움을 이겨낼 끈기를 발휘하지 못한다.-54쪽

배우고 싶게 하는 세 종류의 기쁨은 무엇일까?

. 저절로 샘솟는 기쁨 : 배움의 행위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이상적인 기쁨이다. 이 기쁨은 배움의 경험 자체에 내재하며 기쁨이 기쁨을 낳아 무한 증식한다.

. 사회적 보상 : 학습자가 무언가를 숙달하거나 달성하여 사회적 보상을 얻었을 때 생기는 기쁨이다. 칭찬 스티커, A+학점, 현장학습 혜택, 장학금, 발표가 끝난 뒤에 받는 박수갈채, 친구들의 존중 따위가 이에 속한다.

. 긴장과 이완 : 까다로운 과제를 완수한 뒤에 느끼는 기쁨이다. 비슷한 것으로 프로이트의 성적 흥분과 만족 모형이 있다. 논문을 끝냈거나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을 치렀을 때도 이처럼 긴장에서 풀려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세 가지 형태의 기쁨이 모두 중요하지만, 교육자들은 흔히 '저절로 샘솟는 기쁨'을 과소평가하고 연구를 등한시한다.-65쪽

창의성을 잃어버린 상처

. 남다른 생각과 능력에 대해 가치가 없거나 별나거나 괴상하다고 생각한다.
.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유용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 "네가 뭔데 감히 그런 걸 시도하니." "넌 소질 없어." "성공하지 못해."라는 식으로 자체 검열을 한다.
. "너는 그 일이 가치나 의미가 있을 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어."라는 식으로 자기비판을 한다.
. 자신이 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일이 아닌 사회가 관습적으로 기대하는 일을 하려 한다.
.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슴속 나침반을 부정한다.-70쪽

순종을 강요당한 상처

. 학교에서 인정받고 받아들여지려면 규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규칙이 불공정하거나 부당하거나 해롭더라도 지켜야만 보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남들보다 튄다는 이유로 처벌받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 학교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규칙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지키는 수밖에 없었어요."
. 외적 보상이 없으면 동기가 유발되지 않는다. "이 과목을 수강 신청한 이유는 오로지 성적이 잘 나올 것 같아서예요."-75쪽

반항하는 상처

. 자신을 지키려면 방항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해서 교사와 다투고 말썽을 피우고 성질을 부린다.
. 다른 사람의 견해를 용납하지 못하고 분노와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다.
. 싸움이나 문제 행동을 학습한다.(이러한 행동은 고착되고 부적응을 일으키며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77쪽

무감각해지는 상처

. 배움과 연관된 감정을 잃어버린다. (무감각, 흥미 상실, 배움의 활력 상실)
. 배움이라는 사건과 분리된 느낌을 받는다.(주어진 순서를 따라가기만 한다)
. 배움의 경험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다.
. 배우려는 욕구를 상실한다.(배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용기를 내지 못한다)-80쪽

과소평가로 인한 상처

. 계급, 인종, 민족, 문화적 배경, 성별 때문에 학교에서 자신을 몰라준다고 생각한다.
. 학교에서 신상 정보를 토대로 자신을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 학습 결과도 이러한 판단을 '확증'한다.
. 학습자에 대한 판단 때문에 학습 기회를 얻지 못한다.-86쪽

완벽주의로 인한 상처

. 학교에서 자기가 아무리 잘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 항상 다음 목표를 생각하고 언제나 최고, 최선을 이루고 싶어한다.
. 실패에 대해 취약하고, 실패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며,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영영 오점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 남이 정해준 목표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정작 자신의 배움과는 단절된다.
. 실수를 저지를까 봐 두려워서 배움에서의 도전을 꺼린다.
. 실패가 두려워 배움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90쪽

평범해서 받는 상처

. 적절하지 못한 시험이나 우열반 편성 때문에, 자신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능력은 고정되어 있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낮아서 꿈과 열정을 억누른다.
. 자신의 능력을 부인한다.
. 학교에서 자신을 주목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자신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94쪽

학교가 주는 상처들의 공통점

. 학생의 인지 능력, 정서 상태, 정체성의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교육환경에서 생겨난다.
.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 순응의 압박 속에서 교육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때, 또는 너무 잘 적응할 때 생긴다.
. 학습자로서의 자기 자신에게서 소외된다.
. 배움의 기쁨을 잃어간다.-97쪽

학교가 준 상처를 부인하면,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과소평가하고 상처를 남의 일로 돌리게 된다. 이러한 부인의 밑바탕에는 깊은 수치심과 후회가 깔려 있다.-138쪽

치유 과정의 공통점

. "진흙에서 꽃이 핀다."라는 조너선 무니의 좌우명.
. 나의 단점은 뛰어난 재능의 그림자다.
. 나는 실수로부터 배우는 데 능하다. 실수는 나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말해준다.
. 나는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다. 나는 높은 기대를 품고 있다.
. 실수를 저지른다고 해서 세상이 끝장나는 것은 아니다!(화가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좌우명은 "망치는 게 좋은 것이다."였다!)
. 도전은 분명 근사한 일이지만, "넌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달갑지 않다.
. 나를 규정하는 것은 남들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 나는 자신에게 관대하다.
. 내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안다. 내 감정을 활용하고 약점을 현명하고도 전략적으로 보완한다.-140쪽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것

. 학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와중에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고 지지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도움이 된다. 조너선에게는 어머니가, 토드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 아이들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분류하지 않는 학교 환경
. 평범하지 않은 학습자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학교 환경(이들의 고유한 학습 재능을 존중하고 끌어낸다.)
. 경험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하는 것
.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인식-174쪽

학부모,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하라

. 학교의 신화를 벗겨내라.
. 자신의 교육관이 어떠한지, 이것이 학교의 교육관과 다를 수 있음을 자녀에게 솔직히 이야기하라.
. 학교의 교육관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자녀의 학문적 성과를 격려하고 칭찬하라.
. 자녀가 스스로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실질적 전략을 함께 고민하라.
. 현실적으로 대처하라.
. 부모 자신의 삶에서 배움의 기쁨과 즐거움을 실천하라.
. 자녀가 강인하고 현명하다고 믿으라.
. 결코 자녀를 포기하지 말라.-198쪽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의 잘못된 관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학교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변화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날카롭게 의문을 제기하고 관습에 저항하는 동료를 돕고, 학교는 원래 이런 곳이라는 대답을 거부하라. 사소한 변화가 거대한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변화는 이렇게 시작된다.-237-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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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공정하고 짝을 이루는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법 하면 어려움, 불공정을 떠올릴까?

 

헌법재판소라는 법 위의 법기관이 있는데, 그 헌법재판소장 청문회에서 나온 온갖 소문들, 진실들, 그런데 참, 법 위의 법을 판결하는 기관인데, 그런 기관의 수장에게 좋지 못한 소문들이 또는 사실들이 나오고 있으니... 법이란?

 

악, 법이라고?

 

이건 좋아하는 말이 아니다. 경탄의 말이 아니라, 경악의 말이다.

 

법의 잣대로 힘없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할 때 힘없는 사람들이 외칠 수 있는 말이다. 악! 법이라고?

 

제길, 법은 세상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오직 힘에 의해 지배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법은 힘있는 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으니...

 

법이라는 한자어가 기가 막히다. 물이(水) 가는 데(去). 물이 가는 곳, 그곳은 낮은 곳이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평형을 이룬다. 즉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법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를 바꾸면 물은 꼭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낮은 곳에 모인다. 낮은 곳에 넘친다. 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법은 앞의 의미가 아니라 뒤의 의미인가?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온갖 소송으로, 온갖 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힘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로지 힘없는 사람들이 법 때문에 힘들어 한다.

 

그런 법, 요즘 더 자꾸 생각이 난다. 그러면 안되는데... 우리에겐 그런 법은 필요 없는데...

 

오래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이 책이 요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만큼 이 놈의 법이란 놈이 내게는 공정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다가왔나 보다. 법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없어져야 하겠지.

 

그래야 법도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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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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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두 개.

 

죽음이란 무엇인가?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결국 사람들은 탄생과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이 질문들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질문의 최대치이지만 반대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우리들은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탄생이나 세상의 시작에 대해서도 많은 책이 나와 있지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정답은 있지만, 아직 우리 능력으로는 정답에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이 질문이면서도 대답을 할 수 없는, 또는 누구나 대답하려고 도전하고 있는 질문,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왔던가.

 

이 책은 죽음이 아니라 탄생에 대한 탐구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우주까지 포함하여-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최근에 나온 과학이론을 총동원하여 알려주고 있다.

 

세상의 시작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도 많은 수학, 물리학, 천문학 지식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런 과학지식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뭔 얘기를 하는가 하고 읽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고, 또한 약간의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도 이 책은 어렵다.

 

아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리학이나, 수학이나 천문학이나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누가 다시 공부하겠는가. 얄팍하게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지식으로 버티든지, 아니면 뭔 소리야 하면서 책을 덮든지 할 수밖에 없다.

 

교양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국민공통과정이라 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편중된 교육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과생들은 과학분야에서는 문맹이 되며, 이과생들은 인문학 분야에서 문맹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런 반성 속에서 책을 끝까지 밀고 간다. 어짜피 딸리는 과학지식으로 이 책을 비판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책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야지 하면서 읽는다.

 

우주로의 여행이 세상의 시작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말에서 이 책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주는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데, 이런 우주 여행이 우리의 근원으로 가는 길이라니...

 

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겠다 싶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빛 때문이다. 빛의 속도가 대략 일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간다고 하니, 빛의 속도로 계산을 하면 100억광년 떨어져 있는 별을 우리가 관측한다는 사실은 100억년 전의 별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우주의 역사를 137억년 정도라고 하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에서 우리는 우주의 시작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그러한 연구가 진척되고 있다는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직접 가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빛보다 빠른 물질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주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말 것을 은연 중에 강조하고 있다고나 할까.

 

엄청나다. 정말로 방대한 스케일이 책 속에 펼쳐지고 있다. 이 자그마한 나라에서, 그것도 서로 아웅다웅하면서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좀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단위 자체도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크거나 작고. 우주의 크기는 무한대에 가깝다고 하고, 어떤 은하들은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우리 은하로부터 멀어져 가, 나중에는 우리 은하밖에는 관측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올 정도니...

 

하늘을 본다는 것, 천문학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방대한 우주에서 나란 존재는, 우리란 존재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리라.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을 과학지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채워나가려는 노력. 이것이 천문학자, 물리학자, 수학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고, 이러한 과학과 종교가 결코 배타적이 아님을 저자의 생활에서(그는 티벳 스님들에게 천문학을 강의한다고도 하고, 마찬가지로 스님에게 배운다고도 한다) 또 저자가 예를 든 목사이자 천문학자인 사람의 이야기에서도 배우게 된다.

 

과학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책은 좀더 나를 좀더 낮춰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 조금 더 겸손하게 이 세상의 존재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 좀더 커다란 세상을 꿈꿀 수도 있어야 한다는 점, 우리의 눈에는 너무 큰 것도, 너무 작은 것도 보이지 않으니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이 책이 우주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면, 적어도 일반인들이 읽어야 한다고 한다면 이 책의 부록에 천문학이나 물리학의 전문 용어들을 해설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켈빈 온도라는 말이나, 그밖의 다른 용어들에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참고자료를 뒤적거리는 일은 책에 집중하는 시간을 뺏어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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