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이던가? 아니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라면 그 사회성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회 속에서 제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웃을 좀더 확장하면 다른 마을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들, 다른 대륙 사람들이 된다. 그들을 사랑하라. 그것이 인류가 살아남을 길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그래서 인류의 생존이 달려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이 말이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증오의 세기"라고도 하고 "극단의 세기"라고도 하는 그런 세기를 우리는 거쳐오지 않았던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증오와 공포와 탄압과 전쟁이 있었던가?

 

그런 파국을 맞지 말자고 유엔이라는 국제기구까지 설립했지만, 인류의 평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여기에 한 나라로 지내다 각 민족들로 분열되어 온갖 갈등을 겪는 나라가 있다. 옛날 유고슬라비아.

 

한 때 이웃으로서 얼굴을 맞대고 미소를 짓던 그들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던 나날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에는 온갖 학살들이, 온갖 증오들이 나온다. 바로 이웃들에게서.

 

어쩌면 이런 증오는 이웃이기에 더 잘 드러나는지도 모르지만, 이웃이기에 사랑으로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이 책의 도처에서 나온다. 그리고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도 그렇게 살래?"

 

아니,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건 과거에 그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회적인 일일 뿐이라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심상치 않다. 언론에서는 연일 전쟁 위험을 언급하고 있다. 전면전이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북한에서는 매일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고...

 

이게 무언가? 남북 정상이 만나 합의를 하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도 우린 엄청난 비극을 겪었는데, 그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다른 민족도 아니고 같은 민족인데, 같은 언어를 쓰고, 갈라져 있는 기간보다는 함께 했던 기간이 더 많았던 민족인데, 왜 서로를 돕지 못하고 서로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리는지...

 

그걸 현명하게 해결할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니, 지도자가 나서지 않으면 국민이 지도자로 하여금 움직이게 해야 한다.

 

우린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우린 이런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상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그러한 평화를 바탕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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