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 진짜 사랑을 잊은 한국 사회, 더 나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 진짜 가짜가 있을까마는 굳이 제목을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라고 붙인 이유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해서~" 한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하는데, 그 사랑이 상대를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만족을 위해서 발현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그러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학대 또는 파괴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문제를 개인에게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에서 문제는 개인보다는 사회에 있는데, 그렇다고 사회 문제를 사회가 해결할 수는 없는 법. 사회는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이니, 사회 문제 또한 개인이 풀 수밖에 없는데, 이 때 개인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여야 하고, 이 함께 풀 수 있는 문제를 파악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다.


물론 답은 없다. 답이 있다고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적어도 문제만이라도 잘 파악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는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저자가 뽑고 있는 것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31쪽)이다. 이 둘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작동하는데, 생존 불안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그래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준비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만든다. 존중 불안 역시 돈과 연결이 되어 있다. 


"돈을 못 벌면 굶어 죽는다."라는 생존 불안과 "돈 많이 못 벌면 무시당한다."는 존중 불안에 시달려서 정신이 황폐해져 있다(31쪽)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인기 있는 직업을 생각해 보라. 다 돈과 관련이 있다. 


큰소리 치는 직업, 부모가 밖에 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깨 펴고 자식들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식들 성적이 좋아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 진학했을 때, 또 돈을 잘 버는 직업이나 권력을 지닌 직업(권력도 결국은 돈과 연결이 된다)을 가졌을 때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부모 역시 밖에서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자식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라는 강요로 이어지게 된다. 다 자식을 사랑해서 한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자신의 존중 불안을 메우려는 행위에 불과할 때가 많다.


이런 일들을 저자는 '사랑받기'라고 하는데, 이는 이미 아동기에 졸업했어야 할 마음이다. 어른은 사랑받기에서 '사랑하기(주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는 가짜 사랑이 판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랑하기, 이는 대상을 중심에 두고 마음을 주는 행위다. 나를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을 중심에 놓는 것. 그 대상의 행복과 발전을 우선하는 것.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주는 행위에서 행복을 지니는 것. 이것이 사랑하기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너무나 귀중하여 그 대상을 우선시하고 앞세우는 것이 진짜 사랑'(166쪽)이라고 하니, 이런 사랑을 하면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 사랑하는 대상이 살아갈 세상이 변하지 않고는 그 대상이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그 대상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 대상이 만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 변화를 위해서 행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평등한 세상을 원하게 된다.'(173쪽)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차별 받는 세상을 원하지 않을 테니.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남들을 차별하는 등의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테니.


사랑은 그 대상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과는 다르다. 맹목적인 추종은 사랑하기가 아니라 사랑받기다. 그 대상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즉 존중 불안이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기는 그 대상이 잘못 행동을 했을 때 바로잡으려는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바르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살아야 서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기는 평등을 추구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즉, 사랑하기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국한된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에서 모든 사람에게로 뻗어가는 사랑이 바로 사랑하기다. 그러므로 진짜 사랑은 '사랑하기'이고 가짜 사랑은 '사랑받기'다. 물론 사랑받기 시절을 거쳤다는 것을 전제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이 어쩌면 사랑하기가 아니라 사랑받기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여 이제는 사랑받기를 넘어서 사랑하기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회는 생존 불안을 우선 해소시켜야 한다. 적어도 생존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하는 것, 생존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면 존중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할까. 저자는 우선 기본사회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기본사회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며 보장하는 사회'(235쪽)라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본소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다양한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나라가 국민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게 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회로 좀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의 문제를 개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로 확장한 점이 좋았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의 드라마 - 너무 가까워 낯설게 만난 당신 인생의 이야기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후마니타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뒤에 있던 삶을 앞으로. 앞으로 나온 삶들이 다시 뒤의 삶에게 손을 내밉니다. 서로 함께하자고. 고 노회찬 의원의 뜻이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 버린 비밀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 시리즈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에드거란 소년이 사건을 겪으면서 어린 시절을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소설. 그 사건이란 바로 어른들의 일이다. 어른들의 일? 아마도 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그런 감정들의 교류, 고민, 행동들.


열두 살의 에드거. 엄마와 함께 왔다가 엄마를 유혹하려는 남작의 꾀임에 빠지게 된다. 남작은 에드거에게 접근해 자연스레 에드거의 엄마를 유혹하려 한 것.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되어가려는 에드거의 엄마에게는 선택지가 둘이다. 평생을 한 사람의 부인으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든지, 사랑의 모험에 빠지든지.


이성보다 먼저 작동하는 것이 감정 아니던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접근해오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데, 이때 방해가 되는 것은 에드거. 이들은 에드거를 떼어놓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한다.


이 여러가지 일이 에드거에게는 낯설다.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남작이 엄마와만 이야기하는 것에 불만이 생긴다. 그래서 에드거는 둘 사이에 어떻게든 끼려고 한다. 이러면 어른들은 더더욱 에드거를 떼어놓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 거짓말, 에드거는 아직 이해할 수가 없다. 남작이 엄마를 유혹해 나쁜 짓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복도에서 엄마를 껴안고 있던 남작을 공격한다. 이 공격에 놀란 엄마와 남작. 남작은 결국 휴양지를 떠나고 엄마는 에드거에게 남작에게 사과 편지를 쓰라고 하지만 거절하는 에드거. 결국 엄마와 갈등을 일으킨 에드거는 호텔을 나와 할머니의 집으로 향하고... 


결말이야 뭐, 성장 소설답게 행복한 결말이고, 이런 사건으로 인해서 에드거가 성장했다고 할 수 있지만.


어른들의 은밀한 세계를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면서 거기에 끼어들 때, 아이는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여기지만 아직은 한참인 때. 이때 홀로 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더욱 아이를 성장시킨다.


호텔에서 나와 할머니의 집까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에드거는 어린 시절과 이별하고 있음을 깨닫고,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화초처럼 지내던 자신의 삶이 진정한 삶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도.


이 소설에서 에드거가 겪는 일은 많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른들과 겪을 수 있는 갈등들이다. 그들의 세계는 아이들의 세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다 안다는 듯이 행동하는 아이의 비밀. 이 비밀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이를 아이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 점을 에드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읽으면서 열두 살이면 그때는 그렇게 순진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 하여 원문에 열두 살로 되어 있어도 번역할 때 현대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조금 나이를 낮추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오해할 때가 많다. 또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고. 자신들만큼 어른들도 고민이 있고 괴로워할 때가 많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그런 어른들의 감정에 조금 다가갈 때 그때부터 아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엄마와 남작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고 어린 시절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에드거의 모습. 그리고 그런 일들을 통해서 에드거는 어른들의 세계를 조금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이해하게 되는데...


짧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한 아이의 고민과 성장이 잘 담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즈로 가는 길 - 완역본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5
L. 프랭크 바움 지음, 존 R. 닐 그림, 최인자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 이번에는 어떻게 도로시가 오즈에 가게 될까? 바람도 바다 폭풍우도 지진도 겪었으니, 이제 작가가 도로시를 어떤 방법으로 오즈로 보낼지 궁금해 진다. 또 새로운 등장인물들은 누구이고...


털북숭이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가 길을 묻는데 알려줘도 이해를 잘 하지 못하니 도로시가 할아버지에게 갈림길까지 직접 안내를 한다. 그런데! 갈림길에 갔더니 도로시가 알던 길이 아니다. 길이 더 있다. 또한 집에 돌아가는 길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할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설 수밖에 없게 된 도로시.


그렇군 이번에는 미로같은 길을 통해 오즈로 가게 하는군. 가다가 빛나는 단추를 만난다.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아이. 또 무지개 딸도 만나는데, 이 셋이 도로시의 새로운 친구가 된다.


이들과 함께 여러 모험을 거쳐 오즈에 도착해 오즈마 공주의 생일 잔치에 참석하는 도로시. 그 과정에서 여우 나라, 당나귀 나라를 비롯해 일행을 위협하는 곳을 거치게 되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위험을 겪게 될 텐데, 그러한 위험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모두 제거한다면 어떻게 될까? 흔히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이를 키우지 말라고 하는데, 지금 어른들의 모습은 어떨까? 아이들이 스스로 모험을 하게 내버려두는가? 


아니라는 답이 더 맞을 듯하다. 조금만 눈에 띄지 않아도 안달복달하면서 잠시도 아이들이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위치를 알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에도 또 아이들이 있는 어린이집, 학교에도 감시카메라나 또 스마트폰과 연동이 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위험이 될 것 같은 요소는 아예 다 없애버리고 있지 않은가. '안전한 놀이터'라는 말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 때, 오즈의 마법사는 그런 현대인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여기저기 모험을 하면서 친구를 만나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 그래서 도로시는 낯선 존재를 만나도 거부하지 않고 그 존재의 장점을 보려고 한다. 친구가 되려 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 먼저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도로시가 보여주고 있다.


이 편에서는 다른 것을 떠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여우 나라에서는 여우 머리가 가장 아름답고, 당나귀 나라에서는 당나귀 머리가 가장 아름답다. 그렇다고 다른 존재들에게 자신들의 머리를 선물이랍시고 달아주면 되는가. 그것이 아름답다고, 네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그러면 안 된다. 여우 머리를 달게 된 빛나는 단추도, 당나귀 머리를 달게 된 털북숭이 할아버지도 자신의 본래 머리를 좋아하지 새로 단 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즉 내가 좋다고 남에게도 좋다는 생각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이 편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런 것을 깨달아간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해야지 남의 것을 가져와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


오즈에 있는 '진실의 연못'에 들어가자 이들은 본래의 머리를 되찾는다. 그렇다. 본래 자신의 모습을 지니고, 그것을 가꾸는 것이 '진실'이다. 이렇게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찾은 사람은 다른 단계로 나갈 수가 있다.


털북숭이 할아버지가 오즈에 남을 수 있게 된 것도, 빛나는 단추가 자신의 부모 집으로 갈 수 있게 된 것도 이러한 진실의 힘인 것이다.


이 편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오즈로 가기까지의 모험과 오즈에 도착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게 지내다 헤어지는 장면이다. 즉 즐거움,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모험을 해야 한다는 것. 모험을 회피해서는 그러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는 환상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현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뤼미에르 피플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제목에 있는 뤼미에르라는 말을 보고, 영화를 떠올렸다. 영화적 인간인가? 하는 생각.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 역사에서 맨 처음에 나오는 사람들이니... 빛을 떠올리기 보다 영화를 먼저 떠올렸는데... 


그런데 영화라고 하면 옴니버스식 영화가 되어야 하나? 연작소설이니, 각 등장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기보다는 독립적으로 등장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무언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제목에서 답을 얻어야 할 것 같은데... 뤼미에르를 빛이라고 하면 빛 사람들이다. 빛의 사람인지, 빛과 사람인지, 빛에 비춰지는 사람인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사실 읽다보면 제목을 쉽게 정리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뤼미에르 빌딩이기 때문이고, 이 뤼미에르 빌딩 8층에 사는 사람들(? 사람이 아닌 쥐나 고양이가 주인공이 된 경우도 있는데, 이들을 그냥 동물의 의인화라고 생각한다면)의 이야기니, 뤼미에르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하면 된다.


여러가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제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이 소설의 인물들이 뤼미에르 빌딩 8층에 살고 있으니 뤼미에르 피플이라고 하면 된다.


그럼에도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왜 뤼미에르인가? 왜 빛인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 결코 빛나는 삶을 살지 않는다. 빛나는 삶은커녕 중간보다도 못한 삶을 산다. 그런데 사는 곳 이름은 빛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조가 된다.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빛의 물결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살아가는 길거리의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하겠지만, 이들 역시 대도시의 삶에서 소외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이들을 통해서 작가는 대도시 삶의 이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빛을 보지만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삶들이 있다고. 그 삶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즉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빛 속에서 어둠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그 눈을 지니고 그들에게 한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소설집에서 그래도 가장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 소설이 마지막에 실린 '810호 I 되살아나는 섬'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하는 말, 어쩌면 이 소설 전체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절대선이나 구원자 같은 게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그보다는 체계는 없더라도 사람 사이의 인정이나 연민 같은 게 오히려 우리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328쪽) 


이것이다. 세계적인 종교보다도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 거창한 이념보다는 실제로 함께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종교가 빛이라면 그 빛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너무도 강렬한 빛이기에 빛 뒤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않게 되고, 오로지 빛만 향해 나아가게 할 수도 있음을... 


하여 작가는 이 빛의 뒤에 있는 존재들을 보여준다. 그들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어둠 속의 삶에 대해 연민을 지니게 한다. 


가출 청소년, 혼전 임신, 일중독자, 미래를 잃어가는 청소년들, 빛의 굴레에 빠진 신용불량자, 돈으로 만족을 사는 사람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문제 등등이 각 거주자들을 통해 보여지고 있는데... 이 중에는 장강명의 다른 소설에서 더 발전되는 것들도 있다.


그 소설은 '806호 I 삶어녀 죽이기'인데, 이 소설은 나중에 [댓글부대]로 더욱 범위가 확장된다. 인터넷 댓글, 조작, 그리고 매크로를 이용한 여론 조작까지, 그 전조를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에 실린 810호의 이야기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현수동이 등장하니 이 작가의 [아무튼, 현수동]과 관련이 있을 듯하고, 이런 모든 것들, 소설이 허구라고 하지만  804호 이야기에서 나오는 작가와 작품을 통해서 다른 작품들을 연결지을 수도 있다.


다양한 기법이 이 소설집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그러한 기법은 채무자와 채권자(돈으로 채권을 샀겠지만)를 둘로 나누어 한 쪽에 나란히 병치한 '805호 I 돈다발로 때려라'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물론 804호의 이야기에서도 작가와 기자가 인터뷰한 내용이 중간 중간에 박스 형식으로 나오고 있어서 일반적인 소설과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고... 이 소설들을 읽다보면 황지우 시의 기법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양한 기법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현대 사회의 기술발전에 따른 문제점 등을 연작소설을 통해 담아내고 있으니 빛을 받아 반짝이는 삶들도 있지만 빛에 의해 가려진 삶들도 있음을 이 소설집이 잘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