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까지 다섯 걸음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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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설들. 이 길이를 지구의 종말에 비유한다면 어떨까? 그만큼 지구의 종말까지 남은 기간도 짧지 않을까?


우주가 탄생한 지가 약 138억 년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지구는 한참 뒤에 태어났고, 그 지구에 인간이 나온 것은 더 얼마 되지 않는 시간.


우주의 나이로 보면 갓 태어난 아이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우주에 늦게 온 자가 우주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는 현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가 하고 있는 일 아닐까.


그런데도 종말을 부정한다. 지구에서 살아갈 날이 무한하다고 여기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점점 지구는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데... 그래서 우주에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개척하자고 하는데... 화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키자고 하고도 있는데...


[종말까지 다섯 걸음]이란 소설 제목을 봤을 때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떠올렸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 과정을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인류의 종말 앞에서도 과연 이 과정을 밟을까. 비슷할 거라는 생각은 하는데... 소설집은 이 과정을 약간 다르게 표현했다.


'부정-절망-타협-수용-사랑'


이러한 다섯 단계를 통해 다른 내용의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이 주제들의 맨 앞에 실린 소설은 연결이 된다. 연작소설로 봐도 된다. 그렇지만 나머지 소설들은 딱히 연결이 된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종말이라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냥 각 주제의 처음에 실린 소설 제목을 보면 '종말을 부정하고 - 종말에 절망하고 - 종말과 타협하고 - 종말을 수용하고 - 마침내, 종말을 사랑하고'로 되어 있다. 이 소설들에서 각 장의 주제가 만들어졌다고 보면 되는데...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예정이란다. 그때 지구는 파괴될 것이고, 모두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 소행성을 폭파한다는 영화 '아마겟돈'과 같은 일은 불가능하니, 인류가 지구에서 벗어나는 길밖에는 생존의 방법이 없다.


우주선을 만든다. 방주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를 보라. 모든 생명체가 탈 수 있는가? 아니다. 선택받은 소수만이 탈 수 있다.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다면 우주선에 탈 수 있는 존재와 타지 못하는 존재를 어떻게 가를까?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배제된 사람들은 이판사판이 된다. 어차피 이들은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그러니 물귀신 작전을 쓰기도 한다. 나만 죽을 순 없다가 된다. 그럼 선택받은 사람들은? 우린 살 수 있다. 그러니 살아야 한다가 된다. 저들과 다른 우리가 생겨난다.


이때 죽기살기로 덤비는 사람들이 우주선을 파괴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인간은 또다른 우주선을 만들어낸다. 물론 탑승 정원은 대폭 줄어든다. 이 줄어든 인원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이미 첫 선발 때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우주선 기지로 왔다. 그 다음에는 제비뽑기다. 추첨으로 결정하면 된다. 그 전에 자발적으로 남을 사람을 모집한다. 그리고 추첨. 과연 추첨은 공정한가?


과학기술의 발전 앞에서 추첨 역시 조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서도 권력과 이익이 개입하지 않을까? 작가는 그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 우주로 나아가는 사람들. 남은 사람들. 이제 남은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마지막 소설에서 남아 있는 사람의 '사랑과 행복'이 펼쳐진다. 그렇다. 무엇인가를 욕망하지 않을 때 그 자체로 사랑을 찾고 행복할 수 있음을...


종말까지 남은 시간의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하루하루가 충만했고 행복했으며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아직도 우리에게 삼 일이나 있다는 거야.'(208쪽)라는 말에서 이들은 종말까지 충만한 나날들을, 사랑으로 넘치는 나날들을 보낼 테니, 그 나날들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아니다. 어차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 그 끝을 거부할 수는 없다. 끝을 거부할 수 없다면 현재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현재에 살아야 한다.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존재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한 사랑으로 현재를 채워야 한다. 그러면 종말까지 다섯 걸음이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 다섯 걸음이나 남았으니까. 그동안 사랑할 일이 너무도 많으니까. 


하여 이 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지구의 종말이 다가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인류세라는 시대 개념을 만들자고 할 정도로 인간이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는데, 지구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데, 이때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할까? 마지막 소설에서 그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연결되는 다섯 소설말고도 마음을 울리는 소설들이 있으니, 찬찬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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