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 왕국 - 연산군부터 윤석열까지, 권력은 왜 신을 빌리는가 카이로스총서 117
김가현 지음 / 갈무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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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부터 윤석열까지 권력은 왜 신을 빌리는가'라는 작은 제목.


조선시대 몇몇 왕들을 살피면서 윤석열까지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주술이라는 사적인 영역이 정치라는 공적인 영역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파국에 이르는지를 잘 살피고 있다. 아니 이미 파국에 접어들 징조가 보이는 정권이 주술을 활용한다고 해야 할까.


주술은 예방적 차원이 아니라 결과를 옹호하기 위해서 끌어들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합리적이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할 때, 그렇지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싶을 때 동원하는 것이 바로 주술이다.


주술은 합리와 이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차원이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과학적 합리성이라든지, 논리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하면 좋대 이것이 바로 주술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해 하는 것. 


이분법이다. 따르든지 따르지 않든지. 여기에 이성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주술은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이다.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를 하든, 굿을 하든 그것이 개인에 국한될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남과 엮이면, 남을 저주하는 데 쓰이거나 (이 저주의 효과가 있든 없든 이것은 남을 해코지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니 이미 좋지 않다)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오면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볼 때 주술이 공적인 영역에 들어온 경우가 많았겠지만 이 책에서는 세 명의 왕을 대상으로 이야기한다.


연산군, 광해군, 고종. 두 명의 왕은 조나 종이 붙지 못하고 군이 되었는데, 이는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뜻이고, 고종은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한 역할을 한 왕이니, 이 세 왕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그들에게는 부정적인 면이 많음은 인정해야 한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주술을 권력 행사에 활용했고, 결국 권력이 붕괴되었다는 것인데, 저자는 '주술 의존형 권력 붕괴 모델'이라고 4단계를 제시한다. (38-41쪽, 239쪽)


1단계 : 권력 기반의 취약성과 불안의 발현 (취약한 정통성을 가진 권력의 불안)

2단계 : 공적 시스템의 붕괴와 고립 (소통을 거부하는 고립)

3단계 : 비합리적 대안의 부상과 도구화 (이성적 근거가 결여된 대안에의 의존)

4단계 : 자기 파괴적 악순환과 몰락 (자기 파괴적 몰락)


이 단계를 보면, 앞에서 언급한 세 왕에게 모두 해당이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안 속에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주술에 빠져 결국 권력을 잃게 되고 만다.


하지만 이들은 조선시대라는 시대 상황 속에 있었다. 왕국이었다. 절대 권력으로 존재한 왕은 신하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지만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전할 수도 있었다. 비록 조선시대에 삼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라고 해서 왕을 견제하는 기관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이 지닌 한계는 명확했다. 


그럼에도 유교를 표방한 조선에서 주술에 의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하여 주술에 의존하는 왕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신하들은 수시로 상소를 통해 바로잡을 것을 건의했다. 그럼에도 그것을 굽히지 않고 밀어붙였던 왕들의 최후는 결국 몰락이었다. 주술을 정치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주요 수단으로 활용했던 왕들의 최후.


연산군 때의 무당이나 광해군이 풍수지리를 신봉해 궁궐을 짓고 천도를 하려 했던 이유, 또 고종이 비선 특히 흥선대원군과 민비(명성황후라고 해야 하나 - 이 둘 역시 강력하게 주술을 이용했으니)에게 휘둘린(?) 모습들은 위의 네 단계에 맞아떨어진다.


이런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절대로 이들과 같이 하면 안 된다는... 그래서 역사의 기록을 살피고 미래를 예측해 현재를 살아가고자 하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래야 한다. 그 권력이 자신의 사적인 영달을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발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말과 행동은 사적이지 않고 공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실시하려 하는 정책은 공개되어야 하고 토론되어야 하며, 합리적이어야 한다. 즉 공개되어야 하고 많은 논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의 비판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다양한 의견들을 통해 공적인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모습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의견을 막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며,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정치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그런 자격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하지 못하게 할 의무가 국민들에게 있기도 하고. 그러니 이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술적 언어가 정치를 잠식하려 할 때 그것을 한낱 가십으로 소비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명백한 위험 신호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퇴보한 역사의 민낯 앞에서 우리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시대적 책무다.'(240쪽)


이런 민주주의 나라에서, 선진국이 되었다는 대한민국에서 세상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왔는데, 그런 사람을 지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왕국이 아니라 민국인데... 민국에는 왕이 없는데, 있어서는 안 되는데...  그런데도 대통령의 부인을 '국모'(222쪽 주 참조)라고 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기도 하는데... 이건 그냥 가십으로 취급할 문제가 아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다.


왕(王)처럼 군림하는 사람이 대통령인 민주주의 국가는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대통령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그러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이 책에서 언급한 권력 붕괴 4단계를 밟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했고.


읽으면서 연산군, 광해군, 고종의 실패를 모두 합친 실패를 한 권력자가 현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사실. 세 왕들이 행했던 것들을 모두, 마치 선물 종합세트처럼 다 행한 그러한 인물이 존재했다니... 이 책에는 그러한 모습이 잘 분석되어 있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왕국이 아닌데, 왜 여전히 왕국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지...


이런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맺는다.


'주술에 빠진 권력은 단순히 세상을 잘못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기어코 파괴하고야 마는 것이다.' (226-227쪽)

'무속은 그 자체로 현세의 이익과 복을 추구할 뿐,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지향하는 윤리적 체계나 공공성이 결여되어 있다.'(235쪽)


무속을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자는 것이다. 사적인 것이 공적인 영역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고. 


명쾌한 분석,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주술이 어떻게 권력에 이용되었고, 그들이 어떻게 몰락해 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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