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다 이런, 이런 하는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이거 완전 '꺼삐딴 리'네.

 

일제시대엔 일본에, 해방직후 북쪽에선 소련에, 전쟁 이후엔 미국에 잘보이는, 그래서 시대를 막론하고 잘 사는, 또 힘없는 사람은 무시하고, 힘있는 사람에겐 잘 보이는, 그런 인물. 이인국 박사. 그가 바로 '꺼삐딴 리'였다.

 

그런데 21세기에. 최첨단 과학 시대에, 정보화시대에, 자기에 대해서 다 알려지는시대에, 정부의 최고위직에 이런 관료도, 이런 '꺼삐딴 리'도 여전히 살아남아 고위직에 임명이 되는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

 

아니, 본래 관료란 이런 것이구나... 관료들이란 본래 '꺼삐딴 리'구나.

 

하여 이 땅의 '꺼삐딴 리'들을, 그런 관료들을 시로서 이야기한 사람. 김남주. 그리고 그의 시. 완전. 이런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관료들은 영혼을 내어놓고 살고 있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이렇게 이 시에 딱 들어맞을 줄이야.

 

시인은 시대를 꿰뚫어보고, 또 시대를 앞서가기도 하고, 시대를 변혁하기도 하는데, 전사 시인이었던 김남주가 보기에 이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

 

헛웃음이 아니라, 우리가 참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하여 전광용의 "꺼삐딴 리"와  김남주의 두 시가 떠오른 날.

 

참고로 한겨레 신문 2013년 7얼 27일자 4면에는 

 

"김대중 땐 햇별정책에 편승하고

 노무현 땐 육군참모총장 됐다

 박근혜 땐 국정원장임명받았다"

 

는 내용이 들어 있는 작은 제목을 단 기사가 나와 있다. 한 번 읽어보기를...

 

그리고 김남주의 이 시, '어떤 관료'. 이런 관료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공화국에서는 주권이 관료에게 있지 않고 국민에게 있는데, 그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어떤 관료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김남주, 저 창살에 햇살이2, 창작과비평사, 1992년. 152-153쪽

 

이런 관료들을 통제하려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을 제대로 뽑아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우리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들이 혹시 이렇게 해서 뽑히지는 않았는가. 아니, 우리가 이렇게 해서 그들을 뽑지 않았는가. 영혼이 없는 관료나 '꺼삐딴 리'들은 깨어있지 않은 국민이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반성해 보는 날.

 

선거에 대하여

 

개가 나와도 그 지방 사람들은

우리 개 우리 후보 하면서 그 개를 국민의 대표로 뽑아 국회로 보낼것입니다

개가 그 꼬랑지에 OO당의 깃발을 달고

개가 그 주둥이를 놀려 그 지방 사투리도

멍멍멍 지방유세를 하고 다니기만 하면

 

김남주, 선거에 대하여 부분.

 

시와사회사 편집위원회 엮음, "피여 꽃이여 이름이여", 시와사회사, 1994 1판 2쇄. 312쪽에서 재인용

 

적어도 이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김남주의 시가 과거에만 존재했던 일이 되게, '꺼삐딴 리'들이 존재하지 않게 우리가 깨어있어야지. 암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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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여 꽃이여 이름이여
시와사회 편집부 엮음 / 시와사회 / 1994년 5월
평점 :
품절


김남주.

 

새삼 그를 그리워한다.

 

전사로서 시인으로서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데...

 

그의 문학이 한 때의 문학이 아니라 지금의 문학도 될 수 있다는 사실.

 

그의 문학이 지금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그만큼 우리가 이룬 일들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김남주와 같은 시인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지만.

 

그에 관해서 쓴 책이다.

 

여러 평론가들이 김남주의 문학에 대해서, 그의 인간에 대해서 쓴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아마도 김남주가 이 세상을 뜬 해, 그의 문학을 총결산하는 의미로,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만들어낸 책이리라.

 

벌써 20년이 되어가는 책이기에, 지금은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하겠지만, 김남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김남주란 시인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책의 편집도 시간 순서대로 해서, 순서대로 읽어가다보면 김남주에 대해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예전에는 김남주의 시가 너무 선동적이지 않나, 너무 직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김남주의 시가 이렇게 가슴에 와닿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그가 쓴 시들이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니, 우리는 도대체 무얼 한 거지 하는 생각도 들고.

 

슬프지만,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김남주가 원하던 세상,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바쁘게 그렇게 가버려지만, 우리에게는 그를 이어서 아직도 할 일이 많다. 그러니 한탄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 그것은 김남주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을테니까.

 

민중시인, 전사시인... 김남주.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시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그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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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카프카에 빠져 있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환상성.

 

끝모를 절망감.

 

우울한 분위기가 나를 그의 작품으로 이끌어갔는데...

 

지금...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어가는지, 장마가 아니라, 이젠 우기라고 해야 맞다.

 

칙칙하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집어들었던 책.

 

카프카연구

 

오래된 책이다.

 

그만큼 카프카에 관한 논의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다시피 한 논의들이기도 하고, 또 한 단계 뛰어넘은 논의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카프카에 관한 초기 논의라서 그런지, 지금 이 책을 읽으니, 이해가 잘된다.

 

좋다.

 

우울한 때.

 

절망과 좌절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고, 또 문학 활동에 전 존재를 걸었던 카프카.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그가 앞으로 올 세계를 작품을 통해서 예지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도 그런 작가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상과 카프카를 비교하고 있는데, 그럴 수도 있다. 아니, 한 번 해볼만한 작업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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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벅차다 - 꽃그늘 속 피어오르는 설렘처럼
정우영 지음 / 우리학교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시는 벅차다.  그 짧은 시행에 엄청난 것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시는 지도다. 세상의 그 많은 일들이 다 들어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지도제작자가 지도에 다 넣지 않듯이 시인 역시 시에 다 넣지 않는다.

 

하지만 지도에는 다 들어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한.

 

시도 마찬가지다. 시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찾을 수 있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구의, 우주의 그 광활함을 지도 한 장에 압축해서 넣을 수 있듯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사람의 모든 일들을, 시 한 편에 모두 담을 수 있다.

 

하여 시 한 편에는 우주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가, 인간의 삶이 오롯이 들어가 있다.

 

어떻게 읽어내냐에 따라 시는 나에게 축복을 주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시는 벅차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정희성의 시가 시를 읽는데 도움을 준다.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정희성, '희망' 전문. 정우영, 시는 벅차다, 우리학교. 2012년 277쪽에서 재인용

 

나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은 지금 세계화의 시대에서, 지구촌이라는 시대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 세상에서, 그 시간의 빠름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길게 늘여야 한다. 속도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을 길게 늘여 바라보아야 한다. 시 속에 들어 있는 그 길고 김을 짧음 속에서 인지해야 한다.

 

시를 들여다봐야 한다. 시 속의 장구한 시간을, 광활한 공간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 시가 보인다. 시가 내 속으로 들어온다.

 

지도를 보고도 지도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겐 지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시를 읽되, 시를 느낄 줄 모르는 사람에게도 시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 그래서 시는 우리에게 필요해. 이래서 시가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또 읽으면서 많은 시를, 좋은 시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시평 에세이라고 하니, 이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좋은 시도 만나고, 또 시를 보는 눈도 기르게 된다.

 

읽다보면 어느새 마음에 작은 문이 생긴 것을 깨닫게 된다. 시로 통하는 문!

 

이 책에 나와 있는 시인들.

 

백무산, 이상국, 황규관, 이은규, 권덕하, 김선우, 손병걸, 임희구, 송진권, 박승민, 이민호, 하종오, 정군칠, 김응수, 안현미, 김사이, 정끝별, 안명옥, 김해자, 복효근, 이중기, 이덕규, 문   신, 박일환, 장성혜, 강병길, 조   정, 이정원, 이문재, 문인수, 도종환, 송찬호, 최두석, 김사인, 정희성, 천양희, 강형철, 박남준, 박성우

 

고마운 시인들이다. 아직도 세상은 살만함을, 세상은 좋아질 수 있음을 이 시인들이 쓴 시들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이런 시인들, 우리의 생에서 한 번쯤 만나야 할 시인들 아니겠는가. 시들을 통하여 그들과 통하고, 세상과 통하는, 그래서 함께 공감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런 만남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신자유주의, 이제는 너무도 당연해서 쓰지 않는 말. 개발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 이제는 쓰지 않아도 이미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말. 그런 말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시들. 그런 시들 이제는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지도는 간략하다. 그러나 지도가 있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있는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시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갈 길을 알려준다. 따뜻하고 밝은 빛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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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우울하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힘있는 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이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친다. 이들에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그보다 높은 곳에 있지만 보통 사람들, 그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나 보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아도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하더니...

 

정작 누구로 인해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역설적인 표현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또는 노래 가사였던가, "별일 없이 산다"

 

별일이 없지도 않고, 아무 일도 없지도 않은데, 아무 일도 없는 척, 별일이 아닌 척,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 현실...

 

마음이 어지럽다. 그래서 시집을 펼친다. 제목부터 따뜻하다. 이기철의 "가장 따뜻한 책"

 

시인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다. 사람 사랑하는 일도 연습을 해야 한다. 슬프게도 이제는 이런 사실을 시인해야 하리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람이 싫어진다는 것보다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는가.(중략) 사람의 귀중함을 노래처럼 뇌면서 사람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중략) 시를 읽고 산문을 읽고 한 줄의 편지를 쓰는 일은 마침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간 마음의 실 꾸러미를 내게로 팽팽히 당겨오는 일이니... (이기철,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년. 107-108쪽)

 

그래, 사람이 미워짐에도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미움이 증오로, 증오가 분노로, 분노가 파괴로 가서는 안된다. 오히려 미움이 사랑으로, 사랑이 창조로, 건설로 가야 한다. 그러기에 시를 읽는다. 더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에서 따뜻한 책, 그러한 책. 그것이 바로 시집이다. 이 시집은 아주 따뜻하다.

 

따뜻한 책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의 숨 쉬는 소리가 피 속을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깨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이기철,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 16쪽

 

하여 시는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는 그런 창조된 세계에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세상을 만끽한다.

 

시법

 

시는 말의 피다

한 방울 수혈로 꽃피는 언어들

시는 언어에 피를 돌게 한다

필통마다 담겨 있는 연필처럼

갈피마다 담겨 있는 마음의 모세혈관들

언어를 켜는 것은 마음을 켜는 것이다

어둠을 밝히는 성냥불처럼

나는 언어를 켜고 시를 쓴다

잠든 책이 언어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의 쌀독 여는 소리가 세상을 깨운다

언어를 찾아가는 나의 발걸음이여

그것은 신도 눈치 채서는 안 된다

핏줄의 막힌 곳을 뚫고 선혈이 돌 때

없던 세계가 탄생한다

 

이기철,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년. 21쪽

 

 

말은 피다. 말은 우리를 살게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도 역시 우리를 살게 한다. 그러나 이들이 잘못 쓰였을 때, 이들은 무서운 흉기가 된다. 무기가 된다. 무서운 것이 어디 핵폭탄뿐이랴. 오히려 이러한 말들이 잘못 쓰였을 때, 제 이익만을 위해 쓰였을 때 말은 핵폭탄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그 말을 힘있는 자들이 의도적으로 잘못 썼을 때 그것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가 된다.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시인이 시로써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시로써 없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러한 세계를 힘있는 자들의 말이 파괴하고 있다. 우리의 따뜻한 세상을. 시를 읽을 낭력이 없는 사람, 시에 마음 한 귀퉁이를 떼어줄 줄 모르는 사람, 그들이 정치를 하면... 참...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주어진 것이 희망이라면, 그것이 바로 삶의 의미라면 우리는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 어둠은 곧 밝음을 예비하고 있으니, 이 어둠, 이 혼란, 이 막막함이 다시 밝음으로, 안녕으로, 우리의 행복함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조금만 더 희망을 노래하자

 

미래는 저녁 창문처럼 금세 어두워지지만

작별해 버린 어제가 모두 탕진은 아니다

모래의 시간 속으로 걸어온 구두

밑창의 진흙은 숙명을 넘어온 기록이다

내 손은 모든 명사의 사물을 다 만졌다

추상이 지배하는 인생은 불행하다

명백한 것은 햇빛밖에 없다

죄마저 꽃으로 피워둘 날 기다려

삶을 받아쓸 종이를 마련하자

가벼워지고 싶어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모든 노래를 받기 위해서 입 다무는 침묵처럼

오늘은 단추 한 칸의 가슴을 열자

오늘은 조금만 더 희망을 노래하자

 

이기철,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년. 51쪽

 

이런 희망이 시인으로 하여금 '슬프다고만 하지 말자'고 하고, 또 '삶은 헌 신발을 신고 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 우울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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