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활 - 창간호 - 2013 7-8월호
말과활 편집부 지음 / 일곱번째숲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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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활'이다. 말을 활에 비유를 한 것인지, 말과 활이 다른 존재지만, 함께 존재해야 한다고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목을 보고 우선 든 생각은 말이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겠군이었다.

 

고은의 시 '화살'이 떠오르기도 했고... 무수히 많은 말들 중에 활의 역할을 하는 말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런데 말과 활이 아니라 왜 말과 화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활은 화살을 실어 나르는 도구다. 활이 없으면 화살은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고도, 실천도 말이 없으면 힘들어진다. 우리의 실천이 말을 통해 매개되기 때문이다.

 

맑스가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철학자는 세상을 해석만 해왔다고, 이제는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 때 철학자들은 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말은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한 방법이지,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수단에 불과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말은 '화살'이 아니라 '활'에 비유된다.

 

화살을 담아서 세상을 향해, 목표를 향해 쏘는 활.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염원과 실천을 담아서 세상을 향해,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말.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말'이다. 일회용으로 처분되는 말이 아니라, 언제든지 사용이 가능한 '말'이다. 그런 '말'이 바로 '활'이 된다.

 

그러니 제목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죽 읽어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방식으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가면서(이런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사성이 있는 책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는데)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는데...

 

온갖 생각이라기보다는 '말과 활'인데... 그 활에서 나간 말이 상대를 향해 꽂히지 않고, 왜 내 가슴으로 날아와 박히는지... 그것도 정확하게 쏙쏙.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한 우울과 좌절과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고 할까. 무언가 희망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희망은 저 멀리 멀어지고, 암담함이 자꾸 앞으로 다가와 나를 끌어가고 있었다.

 

조금 나아지려나 하고 계속 읽어가는데... 그래,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뒤로 가면서 느끼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더 많은 과제들이, 더 많은 불안들이, 더 많은 좌절들이 앞으로 죽 늘어서 있다.

 

그래서 '말과 활'을 읽으면서 봄날 이 땅 여기저기 수없이 날아다니는 민들레씨앗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이 많은 말들은 그 민들레씨앗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는데, 이런 말들이 '활'에서 떠난 '화살'처럼 무언가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지 않고,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게 이렇게 날아다녀도 되나 하는 생각.

 

참, 많은 사람들의 말이 실려 있다. 주제를 몇 가지로 압축해 말들을 실어놓았지만, 그 주제 속에서도 온갖 말들은 서로 관계를 맺기도 하고, 홀로 날아가기도 한다. 이 책이 '활' 역할을 해서 '말'을 세상 속으로 쏘아 놓았는데... 이 '말'들은 민들레씨앗처럼 공중에서 흩날리고 있다.

 

이게 내 느낌이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본다. 민들레씨앗. 이것은 결국 어디엔가 떨어진다. 어디엔가 정착한다. 그리고 자신의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그곳에 어디라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민들레씨앗이다. 아무런 목적없이 날아다니는 것 같지만, 민들레씨앗은 자신이 있을 곳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 책도 그랬으면 좋겠다. '활'이 한 방향을 향해 '화살'을 날리지만... 이 책은 그런 한 방향 '활'이 아니라, 사방으로, 어디든지, 언제든지 날아가는, 날아가서 설혹 빗맞더라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는 그런 '민들레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척박한 시대... 그런 척박한 땅에서도 민들레는 자라니까...

 

읽다가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것은 이 많은 '말'들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 말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비정규직 노조원은 진보당(특정 정당의 이름이 아니라, 진보를 추구하는 정당 모두를 통칭하는 말이다) 의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함께 하지도 않았음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또 읽다보면 이번에는 진보당 관계자의 글이 있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서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글들이 함께 실려 있는데, 서로 의견교환이 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꼼꼼하게 읽지 않아서 그런가?) 다음 호에서는 약간은 다른 의견이 실리면 거기에 대한 편집자나 또는 상대방의 의견이 실렸으면 좋겠다.

 

또 독일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김상봉의 글에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 부분과 뒷부분에 나오는 글인 박노자의 글에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 부분은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의견교환을 다뤄주었으면 좋겠다.

 

대체로 진보의 위기라고 한다. 작금의 세태는 진보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럴 때,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일리치에 빗대면 래디컬하다고,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진보가 근본으로 돌아가(결코 부정적인 의미의 근본주의가 아닌, 자신들의 정체성,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등을 근본적으로 성찰한다는 뜻으로) 다시 시작하는 화살을 쏘는 '활'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의 '말'들이 그런 '활'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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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롤링,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 줘 - 수업 시간마다 떠들어서 지적 받는다고?, 작가 내가 꿈꾸는 사람 5
최가영 지음 / 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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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나타났다고 해야 하나? 어느 순간 조앤 롤링은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그가 쓴 소설인 "해리 포터"시리즈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고, 무명 작가이던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많이 팔린다고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세계적으로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조차도 열광하는 소설이라면 말이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은 아무리 흥미로워도 작품성이 없으면 어느 정도 열광하다가 시들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7부까지 나오는 동안 점점 더 사람들을 열광 속으로 끌어들였으니, 세계적인 작가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게다가 최근에는 다른 이름으로 쓴 추리소설조차도 롤링의 작품임이 밝혀져 롤링이 다시 한 번 대단한 작가임을 드러내주었으니.

 

그런데, 이런 롤링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롤링이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려운 시절을 겪고, 그 시절을 이겨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이 어떻게 주인공인 해리의 고초를 알겠는가. 그 고초를 극복했을 때의 성취감을 알겠는가. 따라서 롤링의 삶은 해리 포터의 이야기를 완성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롤링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롤링 자신이 쓴 자서전이면 더 좋겠지만, 롤링이라는 사람을 잘 모르던 사람에게는, 이렇게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내용을 전개해나가는 형식을 취한 이 책이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롤링 인생의 초창기는 행복에 가득찬 시기였고, 중반기는 고초로 가득한 시대, 그리고 지금은 영광이 넘치는 시대라고 한다면, 롤링 자신의 말로 앞 시기를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제3자의 입장에서 롤링의 삶을 풀어주고 있기에 우리는 지나친 감정이입을 막으면서 롤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다. (반면에 롤링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위험도 있긴 하지만)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는 꼭 명심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 이 말은 우리는 언제든지 성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롤링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었던가.

 

해리 포터 이야기도 우연히 어느 순간 롤링의 머리에 떠오른 것 같지만, 이는 롤링이 꾸준히 준비해온 것이 어떤 계기로 인해 좀더 구체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만들어낸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렇게 기나긴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을 했다는 사실.

 

하여 롤링은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더라'는 바이런의 말과 같이 우리에게 혜성처럼 나타났지만, 혜성은 이미 자신이 갈 길을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눈에 띄었을 뿐이다.

 

롤링을 다룬 이 책은 작가(그와 비슷한 직업)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한 번 한 번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꾸준히 길게 보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들이 롤링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서 읽어도 좋고,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우리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고 할 수 있는 롤링의 이야기를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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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다.

 

예전에 이성선, 송수권과 함께 3인 시집을 낸 적이 있었는데...

 

"별 아래 잠든 시인"이라는 시집이었다. 세 시인이 모두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삶을 노래하는, 자연친화적인 시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런 경향을 잘 드러내는 시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인데...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시. 작은 것 하나도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 시인의 모습을 이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번엔 나태주 시인이 병고를 치를 때 쓴 시를 모아놓은 시집이다.

 

점점 어지러워지는 시대, 꽃과 새를 멀리하는 시대에 시인이 노래하는 이것들은 사라져버리고 있다.

 

우리가 잃어야 하더라도 잃지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시인이 시를 통해 그것들을 살려내는 일은 좋은 일이다.

 

이 시집에 있는 "시"라는 시를 보자.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나태주,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문학사상사. 2007년 초판 2쇄. 59쪽 '시' 전문

 

이것이 바로 시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재발견해내는 사람.

 

결코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

 

나태주 시집.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치고 있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 세상 잘 살아온 사람이 여유있게 삶을 관조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들이 모여 있다.

 

하여 시를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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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또는 이주 노동자.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꽤 됐다.

 

매양 단일민족이라고 그걸 무슨 자랑거리인양 떠들어대는 우리나라에서 힘든일을 하지 않으려는 풍습이 생기니, 그 일자리를 우리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노동자들을 수입(?)해 와서 그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핀 적이 있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온갖 힘든 일은 다 했지만, 그만큼 대우는 받지 못했던 사람들.

 

이것도 그들 나라보다는 돈벌이가 더 된다고 브로커들에게 목돈을 주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 돈을 갚지 못하면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었던 노동자들.

 

일자리도 힘든데, 그래서 산업재해도 많이 당하는데, 더 억울한 일은 임금을 떼이는 일. 사장이 공장이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다달이 꼬박꼬박 다 주고 / 동남아인 노동자들에게는 다달이 절반씩 미루면서 / 한국인 노동자들은 처자식에 부모 있고 / 동남아인 노동자들은 혼자이기 때문이라고'(하종오, 국경 없는 공장, 삶이보이는창. 2007년. 20쪽. '체불'에서) 하면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일.

 

같은 노동자인데도, 그들도 자기들 나라엔 부모들이 다 있는데, 왜 혼자라고 그런 핑계를 대면서 돈을 주지 않는지, 은연 중에 한국인 노동자와 동남아 노동자를 편가르는 자본의 술수를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시에서만 나타나는 일이었으면 좋으련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이었으니.

 

이 시집은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에(특히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 대한 차별과 박해(?)를 시에다 담고 있다.

 

어쩜 우리는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또 더 오래 전에는 하와이에 노동자로 돈을 벌러 떠나갔던 일들을 잊고 있는지도, 하다못해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가서 받았던 그 차별들도 다 잊었는지도 모른다.

 

조금 살게 되었다고, 돈이 조금 있다고 인간성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동남아 노동자들을 지금처럼 대할 때 그들은 '외국인노동자병원에 입원하기 전 / 외국인노동자들은 하나같이 / 고국에 돌아가서 한국인을 만나면 / 발길질하겠다고 별렀다'(하종오, 국경 없는 공장, 삶이보이는창, 2007년. 124쪽. '무료진료'에서)는 자세를 갖게 된다.

 

이런 생각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만연할 때 과연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 결국 국적을 떠나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한국인을 달리 봐야겠다고 / 외국인노동자들은 마음을 바꿔먹'(하종오 시집 . 125쪽. '무료 진료'에서)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슬프고 안타깝고, 그럼에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삶의 치열함을 느낄 수도 있는 그런 시들이 실려 있다.

 

시들이 전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시라고 볼 수 있는 이 시집은 우리나라 공장이 이제는 '국경 없는 공장'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국경 없는 공장'에서 사람들을 국경으로, 아니 국가의 경제력으로 나누는 그런 모습은 사라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시집은 마지막 4부 '컨테이너 신혼집'은 일종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데, 영웅적인 주인공이 나오지 않아 서사시라고 하기 그렇다면 이야기시라고 해도 좋을 이 시는 날염공장의 컨테이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한 편의 소설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 컨테이너에서 벌어지는 슬픈 일들. 자본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이것이 한 때 우리나라의 모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07년에 나온 이 시집이 2013년이 된 지금도 유효하다면 그건 정말 비극이다.

 

그런 비극, 이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자본은 국경이 없다. 자본은 어디에 가나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아직도 국경이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환영을 받든지, 천대를 받든지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자본에게 국경이 없듯이 노동자에게도 국경이 없게 만드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지니는 기본 예의이지 않을까 싶다.

 

이 시집의 대표적인 시. 제목이 되는 '국경 없는 공장' 슬프지만 훈훈하다.

 

국경 없는 공장

내 친구는 직장생활 이십 년 / 퇴직금 받아 시골에다 / 이슬람국가로 수출하는

날염 하청공장 차린 지 / 삼 년도 채 안되어 / 이라크전이 터져 망했다

 

역사 선생 하다 왔다는 파키스탄 청년은 / 시간외수당 주지 않으면

잔업하지 않겠다고 늘 버티더니만 / 저축한 돈 가지고 귀국하면

사장보다 부자라며 빈둥거린다고 했다 / 대학 다니다가 왔다는 스리랑카 청년은

체류기간 넘어서 함부로 나다니지 못해 / 사장한테 일자리 알선해 달라며

기숙사에 박혀 지낸다고 했다 / 막일 하다가 왔다는 미얀마 청년은

사장이 손 내젓는데도 / 날마다 작업대 닦으며

체불임금 달라는 눈치 보낸다고 했다 / 야크 기르다가 왔다는 네팔 청년은

흙먼지 이는 앞마당에서 먼산바라기하고 / 벌목 하다 왔다는 인도네시아 청년은

소나무 우거진 뒷산 오르내리고 / 담배 농사짓다 온 필리핀 청년은

열무 심은 텃밭 맨다고 했다 / 눈치 빨랐던 베트남 청년과

손발 빨랐던 인도 청년은 몸이 아픈지 / 종일 담벼락에 기대 햇볕 쬔다고 했다

 

내 친구는 군대 간 아들이 / 봉급 더 받으려고 지원하여

이라크전에 참전한 뒤 / 기계 팔고 임대차보증금 빼내어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퇴직금 주곤 / 날염 하청공장 문 닫았다

 

하종오, 국경 없는 공장, 삶이보이는창, 2007년. '국경 없는 공장' 전문. 9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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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 사유의 스승이 된 철학자들의 이야기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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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에 하늘을 쳐다본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 별이 존재하지 않지는 않을텐데... 도심에서는 웬만해서는 별을 볼 수가 없다.

 

별보다도 더 밝은 빛들이 이 땅에 너무도 많이 있다. 저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옛시대를 지나 이제는 별보다도 더 밝은 빛들이 우리를 현혹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빛나는 별들을 보며 우리는 길을 잃기 일쑤다. 길을 잃지 않고 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길잡이 별을 찾아야 하는데...

 

루카치가 말했던 창공의 별을 보고 길을 갈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감상은 이제 옛말이고, 우리 자신이 이 땅의 별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 때 길잡이 별 노릇을 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철학자다.

 

시대를 통해 변함없이 철학자들은 자신의 세계를 해석하려 했으며, 또한 변혁하려고도 했고,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 끝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이다.

 

현대에 들어서 세상은 급변하고, 과학기술은 더없이 발전해서 철학자들의 역할이 없어질 것 같았으나, 이런 시대일수록 길을 잃기가 쉽기 때문에, 길잡이 별 노릇을 하려는 철학자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자신의 전존재를 걸고 사유의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 그 모험을 통해 우리에게 길을 보여준 사람들.

 

이 책은 그런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처음 시작하는 철학"이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철학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 책은 현대, 즉 20세기의 주요 철학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 철학의 핵심과 그들 삶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서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기보다는 철학에 대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 또 자신의 삶에 대해서 사유하기 시작하고, 자신을 밝혀줄 길잡이 별을 찾는 사람에게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철학자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고, 현대 철학자 중에서 현대철학의 한 기점을 마련한 사람들과 또 글쓴이가 좋아하는 철학자를 중심으로 20명을 뽑아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처음 나온 책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철학자들의 사유와 삶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자신에게 길잡이 역할을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 철학자에 대해서 소개되어 있는 책들을 더 찾아 읽으면 된다.

 

그런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책이다.

 

참고로 여기서 다룬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베르그송, 제임스, 프로이트, 러셀, 후설,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아렌트, 콰인,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카뮈, 간디, 알튀세르, 레비스트로스, 들뢰즈, 푸코, 레비나스, 데리다, 하버마스

 

이 중에 이름을 들어본 철학자도 있고, 처음 듣는 철학자도 있는데, 그리고 철학자라기보다는 정치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 문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의 사유가 우리에게 빛으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고, 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 다를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마음에 와닿는 사람은 한 번쯤은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게 바로 이 책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그것은 내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순간이고, 내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잡이 별을 찾는 순간이다. 이 땅의 수많은 가짜 별들에게 길을 잃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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