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게 말을 걸다 - 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이소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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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음악은 쉽게 누구나 이야기하면서 왜 미술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할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음악은 자신의 취향이라고 당당히 밝히면서 이야기를 쉽게 하는데, 미술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전문가가 아닌 자신이 이야기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미술을 잘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 말란 법은 없다. 또 전문가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법도 없다.


자기 취향에 따라 미술도 감상할 수 있고, 내 해석과 전문가의 해석이 다르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냥 자연스럽게 미술에 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 된다. 자기 검열을 할 필요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음악보다는 미술에서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된다.


어쩌면 이는 음악과 미술을 향유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음악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만나게 된다. 그냥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면 된다. 또 미술보다는 비교적 싼 가격으로 음반을 구할 수가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음악은 사람들 곁에 있다.


반면에 미술은 음악보다는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된다. 시간도 그렇고. 미술관이나 화랑, 전시회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미술작품들이 있다. 그런 연유로 미술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만나기 힘든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술을 이렇게 특정 장소에서 시간을 내어 감상하기도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도 미술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요즘은 광고에 명화를 이용하기도 하고, 또 건물을 지을 때 미술작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꼭 전시회가 아니더라도, 미술작품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수많은 책이나 잡지의 표지들에서 또 길거리에서 미술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미술에 대해서 전문가들만이 특정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이 책은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모두 미술을 만나고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그렇게 자기만의 미술 감상을 이야기하면 여러 감상들이 모여 미술에 대한 더 많은 감상들이 나올 수 있다고. 한 면이 아닌 다양한 면들이 이야기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섞어서, 미술 작품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 감상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고 있다.


아무렴 어때? 난 이 작품이 이렇게 보여. 이렇다고 생각해 하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한다. 그래서 미술에 대해서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다. 미술과 친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꼭 이대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일상-작가-스토리-시선-취향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 있는 존재들에 관심을 가지면 미술이 보일 수 있다. 우리 일상에는 그만큼 미술이 많고, 미술은 일상과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무엇보다도 미술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관심이 아닐까 한다. 그 관심을 일상이든, 작가든, 스토리든, 취향이든 자신이 가지면 된다. 


관심이 있으면 찾게 되고, 보게 되고, 자주 보다 보면 알게 되고, 즐기게 된다. 즐기게 되면 미술에 대해서도 음악처럼 부담 갖지 않고 이야기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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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중이 존중을 부르고, 배려가 배려를 부른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은 일방적이지 않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더 그렇다. 학교에서 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 그들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기 보다는 가르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가.

 

  그래서 학생들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니까, 그들을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훈육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왜? 나이에 따라서 성숙, 미성숙을 따질까? 학생들이 과연 미성숙하기만 할까? 어쩌면 학생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이장근 청소년 시집을 읽다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 꼭 학생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대하는 태도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함함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예뻐해주는 존재에게 가시를 들이대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슴도치

 

살살 쓰다듬는 손에는

털이 되고

 

덥석 잡으려는 손에는

가시가 되고

 

이장근, 불불 뿔, 창비. 2021년. 14쪽.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만, 이들을 어떤 자세로 대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살살 쓰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덥석 잡으려고 하지 말고.

 

어디 이런 일이 청소년들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고 있으니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짧은 시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살살 쓰다듬어 주는 그런 사회가 되는 그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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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 동서 미스터리 북스 3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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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추측하는 재미. 추리소설은 그러한 면에서 독자가 예상하는 결말을 넘어서야 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탐정과 범인이 머리 싸움을 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서 독자와 치열한 머리 싸움을 한다.

 

작품 곳곳에 단서를 심어놓아야 하지만, 그 단서를 독자들이 너무 쉽게 알아채서는 안 된다. 또한 결말이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야 하지만, 너무 벗어나서도 안 된다. 그러면 독자의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소설 속에 단서가 있고, 그 단서들이 결말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추리소설이 좋은 추리소설이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이 점에서 좋은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쥐덫'은 장편소설이 아니고 단편소설이다. 여러 소설이 한 권으로 묶여 있는데, 탐정도 세 명이 나온다. 포아로와 마플, 그리고 해리 퀸.

 

해리 퀸은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서 어떠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탐정인지 모르겠는데, 이 책 '연애를 탐정한다'에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총 10편의 소설이 묶여 있는데, 해리 퀸이 나오는 소설은 이 중에 한 편이니, 그를 제외하자.

 

그렇다면 포아로와 마플이 남아 있는데, 둘의 추리 솜씨가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기대를 지니고 이 책을 읽었는데, '쥐덫'에는 둘 다 나오지 않는다. 포아로도, 마플도 없다.

 

다만,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고립된 하숙집, 그곳에서 범인은 누구인가? 하숙집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의심가는 사람을 추측하면서 읽어가는데... 범인은?

 

그런 재미가 있다.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 되는데, 결말을 보면 납득이 된다. 이것이 좋은 추리소설의 조건이기도 하겠지만.

 

이 소설집에서 미소를 짓게 하는 추리는 마플의 추리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것을 단서로 삼아 범인을 찾아내는 솜씨. 그런 과정을 읽어가면서 주의력, 집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포아로 역시 아주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추리소설을 읽으면 추리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지만,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생각하게 해서 좋다.

 

여기에 인과응보라는 말과 돈에 현혹되어 살인을 저지르지만, 결과는 돈도 자신의 명예도, 또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음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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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 제목은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다. 학교에는 고래가 살까? 살지 않는다. 고래는 멀리 멀리 떠나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학교에서 고래를 찾을 수 있다고, 아이들은 고래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멀리 쫓아버린 고래를 아이들에게 찾으라고 한다.


  고래, 바다 생물을 넘어 우리가 꿈꾸는 그 어떤 모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이 교사였던 만큼 학교에 관한 시들이 이 시집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교사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교육에 관한 이야기 등을 시로 썼다. 마지막 5부에는 너무도 슬픈 아직도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 두 편의 시를 보면서, '이런 농담'은 이런 상황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손에 흙 안 묻히고 깔끔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심어주는 학교. 그런 학교에서 우등생이란 결점 없는 학생일 터.


  장래 희망


아이들의 꿈에는

도무지 땀 흘리는 게 없다.

땡볕에서 얼굴이 시꺼멓게 타는 건

도무지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손에 물을 묻히거나 기름밥 먹는 건

작업복 걸치고 먼지 뒤집어쓰는 건

도무지 격에 맞지 않는다고

농부가 되고 어부가 되고 화부가 되는 꿈

석공이 되고 목수가 되고 잡역부가 되는 꿈

도무지 돈이 되지 않는다고

그래도

의사가 되거나 법관이 되거나

책상에 앉아서 펜대를 굴리거나

아이들의 꿈에는

도무지 흙을 묻히는 게 없다

밑바닥이 되는 꿈

다리가 되고 허리가 되는 꿈

세상을 눈물로 색칠하는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최기종,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 삶창. 2015년. 66-67쪽.


  이런 농담


이런 아이가 있었다

너무 착실하다고나 할까

정도가 지나치다고나 할까

1년 내내 결석 지각 조퇴 한 번 안 하고

교칙도 칼같이 지키고

지시 한 번 어긴 적도 없는

이런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보고

내일은 10분만 지각하라고 하니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쯤 결석해도 좋다고 하니까

그 아이 하는 말이

"선생님! 선생 맞아요?"


최기종,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 삶창. 2015년. 71쪽.


'이런 농담'에 나오는 아이는 흙을 묻히는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 그는 펜대를 굴리거나, 의사가 되거나 판, 검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잘살 것이다. 다만, 그는 도무지 흙을 묻히고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렇게 사는지...


그래서 '이런 농담'은 '장래 희망'을 비튼 시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어떤 장래 희망을 갖게 해야 할까? 아니,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도록 해야 할까? 장래 희망을 직업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으로 만들어가는 일. 큰일이 아니라 작은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렇다면 '이런 농담'에 나온 학생은 학교라는 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칭찬을 받아도 마땅한데, 씁쓸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무언가 인간적인, 실수를 하면서 또 실수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지내는 인간적인 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선생이 지각하라고 하면 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지각하라고ㅡ, 결석해도 된다고 하는 말은 사람은 빈틈이 있어야 다른 사람과 더 잘 연결된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야 흙을 묻히는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흙을 묻히고 사는 사람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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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시선
김태현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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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교사만큼 애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에 관해서는 전국민이 전문가를 자처한다고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는 누구에게도 욕을 먹을 수 있는 집단이고, 또 누구에게도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집단이다. 최근에는 칭찬보다는 욕을 많이 먹고 있기는 하지만.


교사들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지는데 그 중 많은 비난은 터무니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터무니없는 비난이라도 비난을 받는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된다.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교사들이 큰 상처를 받고 힘들어한다면, 그 여파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갈 수밖에 없다. 사방에서 비난을 당하는 교사들이 어떻게 자존감을 갖고 자신만의 교육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정말 자기 자식을 생각한다면 교사에 대한 비난은 삼가해야 한다. 물론 비난은 삼가해야 하지만 비판까지 삼가해서는 안된다. 


도식적으로 이야기하면 비난은 상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하는 말이고, 비판은 상대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말 속에 들어있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사들을 비판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이런 비판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 좋은 쪽으로 만들어가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사들에게 가해지는 말들을 비판으로 봐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교사들은 놀면서도 돈을 받는 신이 내린 직업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또 원격 수업 대충하고 시간만 때우는 직업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교육에 관한 정책들을 교육부나 교육청을 통해서 알게 되지 않고,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교사들보다 다른 사람들이 학교 운영이 어떻게 될지를 먼저 알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저자가 말한 대로 학교에서 교사들은 먼저 움직이려 하지 않으려 하겠다. 어떻게 될지 예측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하겠는가.


그럼에도 이상하게 교사들은 교육부에서, 또 교육청에서 시키는 대로 잘해낸다. 잘해냈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전국의 학교들이 원격 수업을 하는데도 멈춤 없이 운영이 된 데에는 교사들의 능력이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이렇게 능력있는 교사들인데, 자기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위축된 생활을 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관리자들과 학생들에게 치이고, 밖에서는 학부모들과 교육관료들에게 치이는 상황.


그냥 시키는 일만 하겠다는 교사들, 너무 앞서 나가지 않겠다는 교사들. 내 할 일만 하고 나머지는 안 하겠다는 교사들에게 저자는 아니라고, 교사는 가능성이 있다고, 잠재력이 있다고, 충분히 우수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섞어 가면서, 그림과 시를 곁들이면서 이렇게 교사들을 다독이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교사들이 주체적인 교육자로 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여섯 개의 낱말로 글을 이끌어간다. 시선(보기), 심미안(느끼기), 메시지(생각하기), 커뮤니티(관계맺기), 콘텐츠(표현하기), 디자인(상상하기)가 그 낱말들이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교육의 전문가로 대우받아야 하며, 교육정책도 관료들과 대학교수들만이 좌지우지하지 않고 교사들이 함께 참여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 여섯 단어들에서 제시한 그런 활동들을 하면 된다.


아니, 이 책에 제시된 활동들을 해도 좋지만, 자신에게 맞는 활동들을 찾아 하라고 권한다. 교사들 개개인이 모두 하나의 학교이기 때문에 자부심을 지니고 자신의 교육활동을 주체적으로 하라고, 그리고 함께 하자고 하고 있다.


많은 실천들을 그냥 묵히지 말고 공개하고, 그때그때로만 여기지 말고 모으고 정리하고 공유하는 활동들을 하고, 그런 활동들을 여럿이 함께 하면 힘도 덜 들고 좋은 성과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교직 생활을 하다보면 비난보다는 비판이 많아질 테고, 비판은 교육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테니, 그런 비판으로 교사들이 위축되어 움츠러드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글을 읽으면서 이 글이 꼭 교사들에게 해당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교사들이 읽으면 좋다. 마음을 다독거리면서 더 나은 교육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교사라는 말을 빼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넣어도 된다.


그렇게 자기 일에서 이 여섯 낱말을 명심하고 나아간다면 훨씬 좋은 성과를 얻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 책 표지에 있는 '교사의 눈으로 나 자신과 교육과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기'라는 글이 있지 싶다.


적어도 이 책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교사들은 왜 교사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으니, 법조인의 눈, 자본가의 눈, 경찰의 눈, 정치가의 눈이 아닌 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 다음 그런 질문이 실현되는 과정으로서의 사회를 만들어가려 노력해야 하니, 교사의 눈은 코로나19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지금, 우리가 지녀야 할 눈(시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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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29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태현선생님 신간이군요! 읽어보겠습니다!^^

kinye91 2021-09-29 11:20   좋아요 1 | URL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