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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평점 :
이 용어로 시작해야 한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장했던 철인 정치... 거의 완벽한 사람인 철인이 정치를 해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이런 철인 정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는 철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그 중 가장 낫다는, 또는 가장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실행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세계에서 민주주의가 대세인 지금은 철인 정치는 해서는 안 될 정치다. 전체주의는 당연히 철인 정치가 불가능한데, 민주주의에서도 철인 정치를 이야기하면 안 된다. 특정한 개인에게 우리들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이 있다고 해도.
하지만 지금 세상에 그런 철인이 있을까? 철인은 없다고 봐야 한다. 급변하는, 엄청나게 분기된 분야가 편재한 현대 사회에서 철인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래야만 하는 세상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느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도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삼권분립이라고, 권력이 분산되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라고 물으면, 답을 그렇다라고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권한을 십분 활용하는 사람은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자신을 제왕이라고 하지 않고 민주적 운영자라고 생각하면? 대책이 없다. 이를 유시민은 주관적 철인왕이라고 부른다. 아니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완성형 권력자라고도 하고.
주관적 철인왕이든, 완성현 권력자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런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민주주의 국가다. 이런 말에 비추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고, 그것에 대한 비평을 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유시민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담아서. 그가 '정치 잡문'이라고 해야 좋을 글이 되었다(6쪽)고 하고, '인상 비평'이 많다(7쪽)고 할 정도이니.
이렇게 이 책은 유시민의 주관적인 생각을 쓴 책이니 받아들여도 그만, 안 받아들여도 그만이다. 다만 끝까지 읽어볼 필요는 있다. 그런 태도가 백가쟁명을 이루는 민주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유시민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를 살펴보자.
그는 말한다.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7쪽)고. 그가 잘못된 장소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러니 잘못을 윤석열에게만 전가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그랬다고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그런 분위기를 바꾸지 못한 책임이 있다. 어느 정도는.
그래서 박물관에 코끼리가 들어가면 내보내야 한다. 빨리. 내보내기 전에 조용하게 더 큰 사고를 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유시민의 말을 빌리면 '민주주의는 선을 최대화하는 제도가 아니라 악을 최소화하는 제도'(23쪽)라고 하니, 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코끼리가 박물관에서 사고를 치지 않게 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최소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현명하고 유능한 권력자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받고 야당과 대화해 가면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최대한 실현하는 민주주의를 '최대 민주주의', 선과 미덕을 실현하지는 못해도 사악하고 무능한 권력자가 마음껏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민주주의를 '최소 민주주의'라고 하자.'(26-27쪽)
이런 최소민주주의나마 유지해야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치가와 정치업자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구분할 수 없으면 적어도 정치가들이 정치를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유시민의 생각이다.
유시민은 정치가와 정치업자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과 '정치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 편의상 전자를 '정치가', 후자를 '정치업자'라고 하자. 정치인은 누구나 '대의(大義)'에 헌신하는 동시에 '소리(小利)'를 추구한다. '대의'는 정치적 이상과 사회적 선을 실현하는 것이고, '소리'는 공직과 당직 등 이익과 지위를 챙기는 일이다. '대의'와 '소리'가 충돌할 때 대의를 앞세우면 '정치가', '소리'를 먼저 챙기면 정치업자가 된다. (197쪽)
그렇지만 정치가는 대의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다. 그도 실수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한다. 악인이 이득을 취하는 행동을 하면 위선이라고 안 한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 사람이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하면 위선이라고 비난한다. 그에게 수모를 준다. 이때 유시민은 정치가는 그런 수모를 견뎌내야 한다고 한다.
오직 정치를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이상을 품었거니, 정치 말고는 달리 충족할 수단이 없는 욕망에 사로잡혔거나, 둘 중 하나라야 정치의 남루한 일상을 감내할 수 있다. (36-37쪽)
대중에게 정치가로 인정받으려면 대의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정치판에서 오래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수모를 견디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다 (199쪽)
정치가들에게 수모를 견뎌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정치가들이 어느 정도 수모를 이겨내고 계속 대의를 위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제도다. 대의와 소리(小利 ). 정치가가 취한 소리만을 보고, 그를 재단하고, 그를 몰아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철인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는 더한 도덕적 잣대를 스스로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 정치는 '전쟁의 문명적 버전'이다. 권력투쟁을 할 때도 정책경쟁을 내세운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선거에서 이기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 (264쪽)
이런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대통령에 대한 유시민의 개인적인 생각을 알 수 있다. 철인이 아닌데 철인인양 정치하는 사람. 국민보다는, 대의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정치를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판단한다. 그러니 지금대로 나가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래봤자 3년 뒤면 바뀌겠지만...
3년이 짧은가? 길다면 엄청 긴 시간이다. 우리나라가 거꾸로, 과거로 돌아가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무리 퇴행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최소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절대로 독재 사회가 아니다. 전제 왕정도 아니다. 제도가 살아 있고, 시민의식이 살아 있다. 유시민은 거기에 기대를 건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한번 읽어볼 필요는 있다. 적어도 우리 사회를 보는 다른 눈을 가질 수는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