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
도브 왁스만 지음,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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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곧 다가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AI에 전쟁을 맡기는 시대는 아니겠지만, 그와 비슷한 드론이나 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왜 AI시대를 추구하는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아닌가? 서로가 협력하면서 더 큰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자, 이 지구, 태양계를 벗어나 광활한 우주로 나아가고자 AI를 개발하고 그런 시대를 앞당기려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구라는 좁은 행성에서 한정된 자원을 나눠먹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도 우주로 보면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데, 지구에서도 중동의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에서는 여전히 분쟁(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무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 일방적인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 AI시대에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하지 못해 소아마비에 걸리는 아이들이 생기게 된다는 가자지구. 그런 의약품조차 반입이 되지 않도록 막고 있는 이스라엘 정권.


오랜 갈등이다. 인간의 역사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근대에 들어와서 발생한 갈등이지만,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힘의 균형이 맞춰지지 않아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테러로 이스라엘도 피해를 입긴 하지만, 그 규모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인명 피해에 대해서 규모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이런 분쟁이 어떻게 발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살펴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간략간략하게 제목을 달고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다. 가령 결론을 보면 이렇다. '두 국가 해법, 가능한가?'라고 제목을 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은 지금의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동예루살렘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많이 논의되어 왔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왜냐하면 팔레스타인도 통일이 되어 있지 않으며, 늘 안보를 우선시하는 이스라엘이 적대국이 될지도 모르는 국가를 바로 곁에 두고 싶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한 국가 해법은 가능한가?'라고 다음 대안을 검토한다. 지금까지의 갈등, 그리고 종족과 종교가 다른 집단이 한 국가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서로를 존중하고 민주적 사회가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또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그냥 같은 국민으로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었을 경우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테러는? 이런 생각으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이런 해법은 불가능하다. 양쪽 모두에게 불가능한 해법일 수 있다.


둘 다 안 되면 '두 가지 해결책이 모두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갈등을 해결하거나 줄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한다. 연방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한다. 이것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겠지만...


이렇게 해서 결론은 좀 암담하다. 저자 역시 '안타깝게도 분쟁과 점령, 폭력은 계속될 것 같고, 평화는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일 뿐이다'(380쪽)고 한다.


맞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주로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번엔 레바논에 있는 헤즈볼라와의 분쟁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 책은 왜 헤즈볼라와도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들의 분쟁 역사. 이 책은 간략하고 명료하게 잘 살피고 있다.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고 있다.


왜 아직도 이들은 이렇게 분쟁 중일까를 궁금해 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대치 중인 우리나라의 경우에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 분쟁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국민들을 힘겹게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책의 뒷부분에서 한 말,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다. 명심하자.


어떤 해법이든 양측 모두 수용할 수 있고 실제로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대중의 태도와 인식이 변해야 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374쪽)


이스라엘 국민의 약 21%는 아랍인이다.(총 180만 명) - 생각하지 않았던 인구 분포! - P36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아랍인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다른 학교에 다니며, 서로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분열은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골이 깊은 사회적 분열이다. - P38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이 비유대인과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다. - P41

팔레스타인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아랍 공동체 아에 있는 별개의 민족이다. - P5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 땅, 또는 적어도 이 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민족적 열망을 실현하고 나아가 민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 P53

팔레스타인의 자유에 대한 욕구와 이스라엘의 안보에 대한 욕구를 조화시키는 것이 이 장기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열쇠일 것이다. - P55

이스라엘 자체가 경상북도보다 약간 큰 정도의 작은 나라라면, 서안지구는 경기도의 절반 크기이고 가자지구는 강화도와 거의 같은 크기다. 따라서 이 땅조차 모두 가지려는 이스라엘의 욕심에서 비롯된 영토 요구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보기에는 서안지구에 건설되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가뜩이나 빈약한 영토를 계속 잠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P64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부느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유전자가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두 민족이 유전적으로 서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 침략과 점령, 정착과 이주의 오랜 역사와 그에 수반된 인구 혼합을 고려할 때 누가 진짜 원주민이고 이 따이 누구의 소유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 이 땅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 P68

1882년부터 시작된 유대인 이민자들의 팔레스타인 유입이 바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 1946년이 되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했다. - P75

시온주의는 19세기 유럽에서 당시 유럽 유대인이 직면한 두 가지 문제, 즉 반유대주의와 동화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 전자는 유대인의 물리적 생존을 위협했고, 후자는 문화적 생존을 위협했다. ... 시온주의의 부상은 반유대주의, 민족주의, 세속주의라는 세 가지 주요 사상이 합쳐진 결과다. 그중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반유대주의였다. - P86

아랍인의 눈에 유대인 정착민은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외부 침략자 중 가장 최근에 등장한 존재이자,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중동에서 벌어진 유럽 제국주의의 일부일 뿐이었다. - P97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작용했고, 이는 이스라엘의 위협에 대한 인식, 외교 및 안보 정책, 심지어 이스라엘 방위군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홀로코스트가 있기 훨씬 전에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P119

아랍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연합을 이루었으나 비조직적으로 행동했다. - P132

전쟁이 끝나자 이 분쟁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에서 여기저기 흩어진 무국적 민족과의 갈등이 되었다. - P137

팔레스타인인 추방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공식적인 종족 청소 정책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 P143

1948년 6월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난민 귀환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버려진 마을 수백 곳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들의 집과 땅을 빼앗았다. - P144

1967년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더욱 악화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팽창주의도 그 중 하나다. - P163

이스라엘의 영토 점령(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과 정착촌 확장은 1967년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 P165

오슬로 평화 프로세스가 붕괴된 이유는 극단주의자들의 폭력과 대중의 불신, 그리고 정치권의 관리 부실과 악행이 모두 작용한 탓이었다. - P230

포괄적인 평화 협정에 도달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네 가지 주요 이슈는...

(1) 분쟁 도시인 예루살렘의 미래 (2) 팔레스타인 난민의 운명 (3)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국경 (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 간의 안보 협정 ... 그리고 물 공유... - P231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정착촌의 존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에 큰 타격을 입혔다.

자결의 자유, 차별 금지, 이동의 자유, 평등, 정당한 법적 절차, 공정한 재판, 자의적 구금 금지, 신체의 자유와 안전, 표현의 자유, 예배 장소에 대한 접근권, 교육, 물, 주거, 적절한 생활 수준, 재산권, 천연자원 접근 및 문제 사항 개선에 대한 이들의 권리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참해당하고 있다. - P301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인정하거나, 이스라엘이 나크바 및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통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면 평화 협정을 지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도자들이 어떻게든 평화 협정을 체결한다면 대중이 이를 지지할 가능성은 높다 하겠다. 그러나 양측 모두 영토 타협과 관련된 모든 합의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소수(약 3분의 1)가 있다. - P356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위한 또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 기존의 ‘한 국가 현실‘을 바꾸려 하는 대신, 사실상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살고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인(특히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거주자)에게 이스라엘 국민과 동일한 권리(특히 이스라엘 총선 투표권)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이스라엘 주권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 동등한 권리, 민주적 대표성을 부여하면 평화적으로 한 국가 해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시나리오에서는 평화협정도 필요하지 않다.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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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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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왜 퓨즈인가? 전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끊어져 전기가 통하지 않게 하는 장치가 퓨즈다. 즉 무엇인가 힘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당하는 존재, 그래서 위험을 알려주는 존재가 퓨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퓨즈에 해당하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사회적 약자들이다. 감염병이 돌아도, 자연 재해가 나도 가장 먼저, 또 가장 심각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이 힘든 지경에 처하면 그 사회 역시 위험하게 된다.


그러니 퓨즈에 해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전기가 계속 통할 것 아닌가?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약자들에 대한 관심, 배려, 정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 퓨즈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퓨즈,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이웃이라고 하자. 사람은 홀로 살기 힘드니,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있으니, 이웃 사랑은 곧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면 퓨즈가 끊길 일이 없을 것이다.


퓨즈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사회비평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주로 의료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가 예방의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환경적으로 힘들어지면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에 문제가 먼저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의료가 필요한가? 지금 의대 정원 증원을 가지고 의사가 되겠다는 의대생들은 휴학을 하고 있기도 하고,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나간 상황이고, 교수들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있는 상황. 응급실에 가지 못하고 소위 뺑뺑이를 돌다가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는 지금, 이런 위급 상황에서 누가 먼저, 심각하게 피해를 보는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의 퓨즈가 먼저 끊어진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공의료다. 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민영화라는 말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유화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야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공공의료 기관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코로나-19 때 공공의료기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면서 여전히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지 못했다.


또한 건강보험으로 모든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 자기 부담이 상당한 경우도 있고, 그래서 전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그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한다. 


한 해 치료비를 100만 원으로 한정하자는 공약도 나왔었다고 하는데, 지켜지지 않은 상황. 저자는 그런 상황을 답답해 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도 모자랄 판국에 의료 민영화를 하고,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되도록 하는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있다.


조금 오래된 내용도 있지만, 그 내용들이 현재도 진행 중이니 그의 말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처럼 의료 대란을 겪고 있을 때, 의료개혁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확충,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무상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료비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이라 대체로 짧다. 그렇지만 공공의료에 관한 생각은 결코 짧지 않다.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긴 시간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뒤로 간 의료 정책들을 비판하고, 우리가 이웃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의료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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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 특집 기사가 '결심했다, 소비와 멀어지기로'다. 소비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소비가 있어야 생산이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자본주의는 반대다.


  생산이 소비를 촉발한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온갖 광고들을 보라. 수요를 창출해내는 생산.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니 좀 생경한 언어를 쓰면, 자본주의는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더 중요한 사회다.


  그러니 주식도 하고, 가상화폐(블록체인)도 나온다. 생산품을 받고 그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나의 생산품이 된다. 돈이 돈을 낳는 세상이 된다.


이런 세상은 소비 진작이 기본이다. 소비가 축소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소비를 권장한다. 교환가치가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만은 없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필요한 소비를 해야 한다. 그것은 생존에,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런 소비에 그치지 않고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내게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소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기회를 준 것이 이번 호 특집 기사다.


소비를 줄이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나타나는데, 이 중에는 주식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으니, 참조할 만하다.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줄인 소비를 다른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투자를 해도 되고, 환경에 투자를 해도 되고,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이제는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점을 [빅이슈]가 보여주고 있다.


이 특집 기사 말고 생각해 볼 글이 바로 '집'에 관한 기사다. '핀란드에서 홈리스가 줄어든 이유'라는 글이 읽을 만하다. 아니 읽어야 한다.


집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정책을 추진했다는 핀란드. 이들에게 홈리스(노숙인)들은 내쳐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주거공간을 마련해주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


전세 사기를 당해 오갈데가 없어진 사람들,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는 언감생심 홈리스에 대한 주거 정책을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


내 돈으로 간신히 마련한 전세집조차도 사기를 당해 전세금을 날리고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도 구제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능력이 없다고,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집을 구해주는 정책을 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길일까? 아니다. 홈리스들도 자신들의 집에서 생활할 수 있을 때 사회는 더 풍요로워지고 사회적 비용도 감소한다. 즉 사회에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줄기 때문에 사회적 행복도는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우리나라 주택 정책에 시사점을 준다.


이밖에도 읽을 만한 많은 글들이 있다. 특히 문화적인 면에서 (음악, 영화, 전시 등)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준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이번 327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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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 J.R.R. 톨킨과 C.S. 루이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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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R. 톨킨, C.S. 루이스. 우리에게는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 둘이 우정으로 뭉친 사이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또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냥 소설가로만 알았지. 그것도 전혀 관계 없는.


이래서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 다양한 책들을 통해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책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문이자 길이됨을 이 책을 통해서 강화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톨킨이 나이가 조금 많지만 세상을 먼저 뜬 것은 루이스이고, 그 둘은 소설가이기 전에 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고 하고, 함께 작품 읽기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환상소설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현대 산업사회보다는 공동체가 살아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사회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드러내놓고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하지 않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둘을 무소유와 무권력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고, 이를 아나키즘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이 작품에 어떻게 나왔는가를 살펴보고 있는데, 우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배경이 산업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게 한다고 한다. 또한 등장인물들 역시 공동체, 우정을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고.


두 사람이 쓴 많은 작품이 나오고 있지만, 대표작만 봐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둘이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신분제를 거부하지 않았다.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반지의 제왕]에서도 신분제 사회는 유지되니까. 하지만 전제군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군주가 등장하고, 신분제라고 하지만 거의 평등하게 지내는 존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함께 지내는, 무권력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고 다른 존재들의 행복을 위해서 행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으니...


이 책은 톨킨과 루이스의 생애를 다루면서,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우정을 어떤 식으로 이어갔으며, 작품 활동은 어떠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 몰랐던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의 작품을 '무소유와 무권력을 향한 것'이라고 정리를 하고 있는 저자는, 이 둘을 통하여, 또 이들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 역시 '자유와 평등, 자유와 자치와 자연에 입각한 우정의 사회, 우정의 공화국을 이 땅에도 세워야 한다'(276쪽)고 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 우정을 통해 맺어진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해준, 그리고 그런 우정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이 탄생했음을 알려준 책이다. [나니아 연대기]나 [반지의 제왕]을 읽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쓴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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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지음 / 얼룩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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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범죄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지만, 한 번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난 예외라고 생각했다. ...... 범죄를 당한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내 일은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진짜 몰랐다. 그게 내가 될 수 있단 걸." (12쪽)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간다. 자신에게 닥치기 전에는. 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남 일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하지만 남 일이 아닐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내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날 피해자가 된다. 이유 없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는 우연이 겹칠 뿐이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묻지마 범죄'라고 하지 않고 '이상동기 범죄'라고 한다. 그렇다. 피해자의 의사와는 관계 없는 가해자의 이상동기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은 피해자다.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더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해자는 사건이 벌어지고 수사와 재판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정보를 차단당한다고 한다.


국가가 대신에서 가해자를 응징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재판 날짜도 모르고, 재판 관련 서류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더 이상한 것은 수사 과정에 대한 정보를 피해자가 얻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피해자 구제에 관한 것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그런 점들을 몰랐다가 직접 경험하면서 알게 되고, 그런 제도를 고치려고 노력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사법제도가 피해자 구제를 기본으로 하고,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고, 가해자가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교정하는 것이 뒤따라야 하는데...


가해자 교정을 중심으로 하고, 피해자는 거기서 소외되고 있는 모습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공론화 한다. 왜? 재판으로 안 되니까. 사회적 압력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게 된다.


공론화가 되면 사법부에서도 관심을 가진다.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방송을 하기 시작하면 많은 것들이 그 전과 달라진다. 이런 모습을 보는 피해자의 심정은 어떨까? 과연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철저하게 피해자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피해자들이 사건이 벌어진 뒤 얼마나 힘든 일들을 겪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법(경찰, 검찰, 판사)이 얼마나 엉성했는지를 발견한다. 


이 엉성함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러면 피해자는 사건의 피해뿐만이 아니라 그 뒤의 과정에서 더한 피해를 입기도 한다. 피해 구제를 받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마음의 상처가 더해지기도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 안 되기 때문에 저자가 나섰다고 한다. 피해의 공포 속에 위축된 삶을 떨치고, 더이상 그런 피해들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또 그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더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다고 한다. 피해자를 돕기 위한 연대 활동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함께해야 고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므로. 함께하면서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고, 불합리한 것들을 개선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본인도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를 껴안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세상이 좋아지는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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