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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지음 / 얼룩소 / 2024년 2월
평점 :
"누구나 범죄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지만, 한 번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난 예외라고 생각했다. ...... 범죄를 당한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내 일은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진짜 몰랐다. 그게 내가 될 수 있단 걸." (12쪽)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간다. 자신에게 닥치기 전에는. 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남 일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하지만 남 일이 아닐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내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날 피해자가 된다. 이유 없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는 우연이 겹칠 뿐이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묻지마 범죄'라고 하지 않고 '이상동기 범죄'라고 한다. 그렇다. 피해자의 의사와는 관계 없는 가해자의 이상동기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은 피해자다.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더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해자는 사건이 벌어지고 수사와 재판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정보를 차단당한다고 한다.
국가가 대신에서 가해자를 응징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재판 날짜도 모르고, 재판 관련 서류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더 이상한 것은 수사 과정에 대한 정보를 피해자가 얻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피해자 구제에 관한 것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그런 점들을 몰랐다가 직접 경험하면서 알게 되고, 그런 제도를 고치려고 노력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사법제도가 피해자 구제를 기본으로 하고,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고, 가해자가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교정하는 것이 뒤따라야 하는데...
가해자 교정을 중심으로 하고, 피해자는 거기서 소외되고 있는 모습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공론화 한다. 왜? 재판으로 안 되니까. 사회적 압력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게 된다.
공론화가 되면 사법부에서도 관심을 가진다.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방송을 하기 시작하면 많은 것들이 그 전과 달라진다. 이런 모습을 보는 피해자의 심정은 어떨까? 과연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철저하게 피해자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피해자들이 사건이 벌어진 뒤 얼마나 힘든 일들을 겪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법(경찰, 검찰, 판사)이 얼마나 엉성했는지를 발견한다.
이 엉성함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러면 피해자는 사건의 피해뿐만이 아니라 그 뒤의 과정에서 더한 피해를 입기도 한다. 피해 구제를 받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마음의 상처가 더해지기도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 안 되기 때문에 저자가 나섰다고 한다. 피해의 공포 속에 위축된 삶을 떨치고, 더이상 그런 피해들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또 그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더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다고 한다. 피해자를 돕기 위한 연대 활동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함께해야 고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므로. 함께하면서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고, 불합리한 것들을 개선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본인도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를 껴안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세상이 좋아지는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려.